brunch

다시 봄은 오고

by 로즈릴리


마리의 마음은 복잡했다.


생각은 정처 없이 머릿속을 헤매고 발길은 거리를 배회했다.

갈 곳을 잃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과 방향을 알 지 못하는 사람들의 무게를 느끼며 그들 무리 속에 껴서 길 위를 떠돌았다.


공원 벤치가 보였다. 조용히 앉았다.


젊은 여성 한명과 중년의 아주머니 한 명이 마리에게 말을 붙이며 곁에 앉았다.


“인상이 복이 많은데 수심이 깊어 보이네요.

조상님께 재물을 올리고 도를 깨우치면 평화가 와요. 도에 관심이 있나요?”


마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발길을 옮겼다.

두 여자가 마리 뒤를 따라붙었다.


“도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마리는 뛰기 시작했다.



중고등 시절 체육 시간이나 가을 운동회에서 100m 달리기가 있을 때마다 18초 기록을 세워 은상을 받았다. 금상은 자신보다 1초 빠르게 달린 친구가 차지했다.

17초와 18초 1초 차이로 금상과 은상이 갈렸다.

시간이란 그 정도로 1초의 갭이 크고 넓다는 것을 청소년 시절 깨달았다.



마리는 있는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고등학생 이후 20년만 이었다.


두 여자는 더는 따라오지 않았다.

처음 보는 귀찮은 두 여자를 따돌리고

마리가 닿은 곳은 어렸을 때 다니던 성당이었다.


수녀원 뜰에 발길이 닿았다.

어린 시절 등 뒤에 날개라도 돋아서 날아갈 듯 마구마구 빙글빙글 돌던 성당의 뜰이었다.



뜰을 지나 건물 앞에서 원어민 유학생‘디토’와 마주쳤다.

‘디토’는 카톨릭 신자로 여기 성당에서 매주 미사를 드렸다.


오랜만에 디토’의 모습을 보고 반가웠지만 ‘디토’는 그간 힘든 일이 있었는지 얼굴은 핼쓱하고 반쪽이 되었다.


마리와 ‘디토’가 동시에 안부 인사를 건네고 성당 1층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디토’는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디토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울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마리는 ‘디토’의 우는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후, ‘디토’가 슬픈 얼굴로 힘겹게 말을 꺼냈다.



“ 이승후가 죽은 것 같아요.”



“네? 그게 무슨 말이죠?”



마리는 놀라서 동그랗게 눈을 뜨고 물었다.





디토의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다.



‘학교를 떠났던 이승후는 유일하게 ‘디토’와 연락했고, 겨울이 올 무렵 두 사람은 남해안 어느 작은 바닷가 마을에 머물며 체류했다.

하루는 어부 아저씨가 갓 잡아 올린 광어 한 마리를 사서 바닷가 횟집에서 안주 삼아 대낮부터 소주를 두 병 마셨다.

디토는 취해서 잠이 들었고 이승후는 바닷가 산책을 나가서 그 후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 무렵, 마을 몇몇 어른들과 찾아 나섰다가 어둑어둑한 밤이 되어서도 찾지 못했고


다음 날 이승후의 신발이 바닷가 모래 근처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날


기러기 떼 한 무리가 따뜻한 남쪽 고향을 찾아 날아가다가

바닷가 작은 마을이 진동할 정도로 슬피 울었다고 했다.


기러기 울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던 마을 주민들이 굽은 등을 펴고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고.’



디토가 힘겹게 들려 준 이야기는 절망스러웠지만

성당의 뜰에 제법 자라난 연두빛 잔디와 그 위로 고개를 내민 노란 개나리는 절망을 모른 듯 너무 화사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1화우리의 삶은 서사가 있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