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나오자 밖은 어둑어둑 캄캄한 저녁이었다.
솔라가 말했다.
(솔라) "아무것도 못먹어서 배고플텐데 근처에서 뭐 좀 먼저 먹자"
(선정) " 그래, 나 한식이 무지 땡겨"
(솔라) " 이 근처에 한식당이 있으려나.... 잠깐만..."
솔라는 휴대폰으로 한식당을 검색했다.
보스턴 도심 한가운데 한식당이 근처 가까이 있을리 만무했다.
(솔라) " 있기는 있는데 여기서 자동차로 한시간 삼십분 거리인데 그럼 너무 허기져서
다시 되돌아오기도 번거롭고... 짐도 많고..."
솔라와 선정은 한식을 포기하고 나름 근사하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가장 빠르게 나올만한 메뉴를 골랐다.
수박 머리통만한 크기의 햄버거 세트가 패스트푸드답게 재빨리 나왔다.
튀어나올듯 통통한 쉬림프가 사이사이 들어간 햄버거와
단짠단짠하면서도 뭔가 한국의 맛과는 다른 정통 시저 소스로 버무린 각종 야채가 들어간 샐러드와
거인의 손가락처럼 굵은 감자 튀김이 나왔다.
1회용 컵에 담긴 콜라는 일회용 컵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우리나라 1회용 컵 크기의 다섯배는 되었다.
선정은 하루종일 결혼식을 치르고 비행기 안에서도 식사를 걸러 배가 허기졌으나 왠지 햄버거가 입맛에
맞지 않았다. 입안에 넣은 샐러드도 돌처럼 굴러다녔다.
솔라는 제법 큰 크기의 햄버거 한 개를 우걱우걱 단숨에 먹어 버렸다. 허기를 달래고 나서
탁자에 있는 콜라를 후루룩 마시며 고픈 배를 채우는 동안
선정은 햄버거 양의 사분의 일도 채 못먹고 접시에 포크를 내려 놓고 말았다.
(솔라) " 배고프다면서 좀 더 먹지 그러니"
(선정) "아기가 햄버거가 안먹고 싶다는데 어째"
(솔라) " 내일은 한식당 찾아가서 꼭 한식을 먹자 "
(선정) "글쎄... 내일 되어봐야 알지 뭐가 먹고 싶을지... 넌 홀몸이라서 참 잘도 들어가서 좋겠다."
(솔라) "나도 지금 참고 있는데 왜 그렇게 말마다 삐딱하게 굴어?
아까도 사람들 많은 비행기에서 울지를 않나, 결혼 첫날 헤어지자는 소리를 쉽게 담지를 않나
너 완전 미성숙한 애 같아"
(선정)"미성숙한 애라고? 아기 엄마를 배려하는 모습이 일도 없는 넌?"
(솔라)" 아기, 아기 하면서 너야말로 아기를 진정으로 위하는 엄마 태도야?
엄마 자격을 갖추지도 못한 채 엄마가 되겠다고 불쑥 아기부터 가져서 나한테 상의 한마디 없이
임신 오개월 넘어 찾아오면 어쩌자는거야
그래도 난 아기에 대한 책임으로 아빠가 되려고......."
(선정)"아기는 나 혼자 만들었니.... 이 나쁜 자식아... (버럭~~)
넌 그래서 퍽이나 좋은 아빠 자격 갖추어서 좋겠다"
선정이 감정에 북받혀 언성이 높아지자 옆 테이블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솔라는 부담스러운 주위 시선을 피해 얼른 일어나 계산을 마치고 먼저 밖으로 나와 선정을 기다렸다.
선정이 곧바로 뒤따라 나왔다.
두사람은 보스턴에 예약해둔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보스턴 관광을 하다가 그 다음날 저녁 무렵
가까운 뉴욕으로 건너가 맨하탄에 있는 브루클린 브릿지에서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선정은 이미 기분을 망쳐버렸기 때문에 신혼여행 여정을 소화할 마음이 싹 가셨다.
두사람의 냉랭한 공기가 밤바람에 섞여 서늘하게 느껴질때 선정의 휴대폰에서 벨이 울렸다.
(선정어머니) " 오오~~ 우리딸, 잘 도착했니?"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선정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선정) "엄마, 흑흑흑 ㅜㅜ
신혼여행이고 뭐고 나 그냥 돌아가고 싶어, 엉엉엉.."
(선정어머니)" 내 딸아! 왜 그러니.. 울지 말고 솔라 좀 바꿔봐라"
솔라가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선정어머니) " 아니, 이서방
우리 애가 왜 저러나? 자네가 뭘 잘못했나?"
(솔라) "아... 어머니, 제가 뭘 잘못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
정말 아무 일도 없었는데 하루종일 삐져서 정말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정어머니) " 에효~~ 이서방 어쩜 그리 여자의 마음을 모르나
자네가 뭘 잘못한지 모르겠다는 것이 바로 잘못이네 "
선정의 어머니와 솔라 두사람은 동시에 땅이 꺼질듯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