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는 군복무의 의무를 지고 군대에 입대했다.
신병훈련소에서 5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기초 군사훈련이라고 하기에는 극한의 체력단련을 위한 유격훈련과
산악지형에서 이루어지는 각개전투는 죽음 직전의 위기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루나는 훈련 도중 열이 났다. 몸이 으슬으슬 아팠다.
그러나 벌레처럼 배를 땅바닥에 바짝 붙이고 무릎으로 기어서 앞으로 나갔다.
단단한 군복을 입어서 다행히 살은 터지지 않았지만 뒤에서 곧 밀어닥칠 암흑이 자신의 몸을 덮기 전에
해가 떨어지기 전 산기슭을 빠져 나가야 한다. 저 아래로 아래로 앞으로 나아갔다.
철조망에 손이 긁히고 군화가 거친 잡초에 걸렸다. 얼마나 그렇게 기었는지 모른다. 눈 앞에 군 조교가 보였다. 루나는 밀려오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몸에 전율이 일었다. 낡은 껍질이 벗겨져 나가듯 새로운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해는 지붕 위에 걸려 있었고 하늘은 아직 밝았다.
해가 위로 떠오르려는 것인지 서산아래로 기울어 내려가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라운드 벽시계가 오후 여섯시 사십오분을 가리켰다. 시간의 흐름을 보면 일몰이었다.
해가 가라앉아 이제 곧 밤이 오리라 예상했다.
루나는 가라앉으려는 석양을 보며 저 위를 한참 올려다 보았다.
방금 저 산기슭에서 아래로 내려오기를 얼마나 희망했는가... 산악지형에서 각개전투와 유격훈련을 받으며 내려올 때 이 아래로 내려오기를 이 땅을 밟고 서기를 얼마나 고대했는가... 불과 몇십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는 해를 바라보며 저 위를 그리워한다.
이제 해가 졌고 오늘이 끝났다는 사실, 내일 아침이 올지 오지 않을지 모른다.
루나는 그리움의 꼬리를 물고 생각은 어린시절로 이어졌다.
친구들과 고향에서 어린시절 전쟁놀이를 하며 뛰어 놀았다. 그 시절 전쟁놀이는 재미있고 행복했다.
"나는 하늘을 나는 공군이 될거야"
"나는 전진하는 보병이다"
나뭇가지로 가짜 총을 만들거나 문구점에서 사 온 플라스틱 총을 매고 총소리를 흉내내며
"탕 탕 탕 탕 .."
가짜 총을 쏘면 "으악"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가짜는 재밌지만 진짜는 재미가 없다.
무거운 진짜 총을 들러 매고 조교가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는 " 탕! 탕! " 육중한 소리와 무게를 온 몸으로 느끼며
필사적으로 달리는 진짜 전쟁놀이는 불안하고 초조하다.
산기슭을 기어가다가 누군가의 무덤이 보였다. 무덤가에 핀 붉은 꽃이 저물어가는 석양에 더 붉어 보였다. 순간 루나는 그동안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찾지 못해 지금쯤 무덤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5주가 지났다.
혹독했던 신병 훈련이 끝나는 날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부모님들이 모여 들었다.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포옹을 나누며 한사람 한사람 부모님과 외출을 나갔다.
부모님이 안계신 루나는 덩그러니 혼자 남았다. 열두살까지 함께 했던 할머니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셨기 때문에 루나를 면회온 가족은 없었다.
다행이다. 빙 둘러보니 루나와 같은 처지의 젊은 신병들 몇몇이 보였다. 그들도 어느 누구 하나 찾아오는 가족 없이 그 자리에 꼿꼿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