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는 반 평생 이상을 돈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었다.
어떻게 해야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벌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산더미같이 쌓인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지 머릿속으로 항상 돈에 대한 생각 밖에 없었다. 아니 돈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항상 모든 일상들이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
그런 사고방식은 어릴 적부터 힘들었던 가정 형편의 영향도 있었다고 본다. 중학생 때부터 엄마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인해 혼자 걷는 모습을 보기 힘들 정도로 몸이 좋지 않으셨다. 항상 끙끙 앓으면서 집에 누워 계시는 엄마와 함께 아버지마저도 고정적인 수입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우리 집의 살림살이가 빠듯할 수밖에 없는 건 누가 봐도 뻔한 사실이었다.
그런 모습을 일상으로 봐왔던 나였기에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무조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스무 살이 되면서는 바로 일을 시작했고, 이때부터 직장을 고르는 선택 기준은 당연히 돈이었다.
무조건 돈을 많이 주는 곳에 가서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이도 어린 데다가 적성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하려고 하니 출근만 하면 몸이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아마 정신이 아팠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매일매일 출근 길이 너무나도 고역이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어디 가서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 말 한마디 못했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일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새내기 직장인에게 중책까지 맡겨져서 일을 해야 하는 것 자체가 죽을 만큼 힘들게 느껴졌다. 회사에서는 계단만 보이면 굴러 떨어져서 다리라도 부숴볼까, 종이를 자르던 커터칼로 손목이라도 그어볼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 보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일을 그만 둘 각오를 하고 출근길에 회사를 바로 눈앞에 두고는 그냥 옆길로 새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이 없었고, 생각할수록 낯부끄러워지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알지도 못하는 길을 따라 몇 시간을 무작정 미친 듯 돌아다니며, 회사와 엄마한테조차 연락두절 상태였던 나는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회사 다니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돈을 많이 주는 곳이라서 딸이 만족하면서 다녔겠다 싶으셨던 엄마는 내 충격 발언에 놀라긴 하셨지만, 이내 너무 힘들면 그만 두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엄마의 위로를 듣고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나는, 회사에는 이제 죽었다 싶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다행히 나의 고충을 아신 상사 분께서도 너그러이 나를 용서해 주시고 달래주셔서 얼마 간은 마음을 고쳐먹고 회사에 잘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돈에 끌려 억지로 하는 일에서 보람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뒤 직장을 그만두고는 또다시 돈을 많이 주는 곳을 찾아다니며 입사와 퇴사를 몇 차례 반복했다.
좋아하는 일이 뭔지, 적성에 맞는 일이 뭔지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돈에만 이끌려 여기저기 헤매고 다닌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돈을 좇아 다녔지만 돈이 모이기는커녕 돈과는 점점 멀어지는 나의 20대가 지나갔다.
30대 이후부터는 다행히 적성에 잘 맞는 일을 찾아서 재밌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전화받고 커피 심부름하는 일들이 너무 수동적인 느낌이라 항상 일에 대한 갈증을 느꼈던 게 나의 20대 시절 직장 생활이었다.
그러나 30대 이후의 직업은 바로바로 성과가 드러나는 일이었다. 만약 외부에 나가서 영업을 통해 물건을 파는 게 주 업무였다면 심리적 부담감으로 또 힘들었겠지만, 내 업무는 매장에 방문한 고객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일이었기에 마음이 한결 편했다. 일에 대한 결과가 바로 나타난다는 점이 성격이 급한 내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렇게 업무 자체는 적성에 잘 맞는 일이라서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도 직장을 그만두어 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아무리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수입이 생기지 않는다면 직장을 다니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월급이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아이들 키우랴, 집 대출이자 내랴 맞벌이를 해도 항상 빠듯한 월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는 방법을 이리저리 알아보았다.
부동산, 주식, 앱테크, 인터넷 쇼핑몰, 블로그 등등 직장인으로서 해볼 수 있는 재테크에는 거의 대부분 도전해 보았다.
하지만 직장인이자 주부였던 내가 제3의 일까지 해내기에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퇴근 후 시간을 아무리 쪼개고 쪼개서 일을 해도 힘에만 부치고 몸만 피곤해질 뿐 재테크로는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성과가 나타났다 해도 그 이후에 다시 본전으로 돌아오는 상황의 반복이었다. 그러니 어느 하나에 집중해서 길게 시도해 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렇게 돈을 더 벌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도 돈은 나에게서 멀어기만 할 뿐, 도무지 내 손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버는 것뿐만 아니라 물건을 사야 때에도 선택 기준은 돈이었다. 특히 내 물건을 살 경우에는 '어차피 내가 쓸건대 제일 싼 것 고르면 되지. 그거 제일 현명한 선택 아냐?' 하는 나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었다. 그렇게 싼 것, 싼 것만 고집했지만 여전히 내 수중에는 돈이 없었다. 더 벌고자 해도 돈이 모이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아낀다 해도 큰돈이 모이는 것은 아니었다.
돈을 더 모으고자 이렇게 발버둥을 쳐 봤지만 왜 돈은 항상 나를 도망 다니기만 할까?
왜 이렇게 실패의 연속일까?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너무나도 절실히 답을 알고 싶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돈에 대해 간절한 마음은 있지만 내게는 직장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기에 절실한 마음이 없어서 그런 거'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 버렸다.
그래서 돈이 안 모이는 거라며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었다.
그러다 고명환 님의 책을 읽다 보니 그것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에서 고명환 님 돈은 버는 게 아니라 저절로 벌리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돈을 좇지 말고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단다.
몇 년 전에도 그 책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냥 책장을 넘겨버렸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때의 나는 그 큰 가르침을 보고도 깨달음을 얻을 만큼의 그릇이 아니었던 것이다.
최근에 그 책을 다시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에 머리를 두드려 맞은 만큼 큰 충격으로 글이 다가왔다.
'아.. 그래서 내가 돈을 벌 수 없었구나. 돈이 나를 따라오게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었구나. 그럼 돈이 나를 따라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그에 대해서도 고명환 님은 책에서 명쾌하게 답을 주셨다. 돈은 가치 있는 곳에 나타난다고 했다. 고로 돈이 나를 따르게 하려면 내가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면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라고 한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하면 돈은 배가 되어 저절로 내게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돈에 이런 심오한 원리가 있다는 것을 모른 체 맹목적으로 잡으려고만 했으니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더 구체적으로는 내 이름으로 된 대출금 상환을 위해 돈을 벌고자 했다. 그러니 돈이 들어올 리가 없지 않은가.
이제부터 나는 생각을 달리 하기로 했다. 돈을 좇는 사람이 아닌, 돈이 따라오게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이다.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고,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작은 도움이 된다면, 그 이상 가치 있는 일이 더 있을까 싶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삶에 작은 빛이 되는 글을 쓴다면 그것이 곧 돈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자 한다. 매일 한 걸음씩, 더 나은 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