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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그 시절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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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목영 Oct 21. 2024

뒷마당

  앞마당과 뒷마당이 있는 집에서 나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앞마당 화단은 담장을 따라 직사각형 모양의 길쭉한 꽤 큰 평수의 화단이었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 무서리 내릴 때까지 철 따라 홀로 때로는 함께 이어져 피어 늘 영롱하고 울긋불긋한 꽃들이 꽃밭을 이루었다. 키와 모양에 따라 정갈히 심겨 있어 보기가 좋아 먼 이웃에서도 구경 왔다. 마루에서 차를 들며 차향(茶香) 화향(花香) 인향(人香)으로 상서로운 기운(瑞氣)이 그득한 집이라 손님들은 찬사를 잊지 않았다.

비에 함초롬하게 젖은 붓꽃을 볼 때나 파초 잎에 빗방울이 구슬이 되어 구르면 운치가 더해졌다. 엄마는 자식 기르듯 정성스레 꽃밭을 가꾸셨다.

뒷마당 화단은 앞마당 화단에 비하면 화단이랄 것이 못 된다. 자갈이 깔려있는 우물가에는 채송화 봉숭아가 울타리를 이루고 있었고 한자 높이의 장독대 옆에는 꽃과 맨드라미 누름돌 옆에는 구절초가 돌확에는 수련이 피었다. 자주색 등꽃이 핀 등나무 아래는 쉬기 편한 널찍한 평상도 있었다.

앞마당 꽃들에 비하면 (매화, 목련, 철쭉, 장미, 수국, 튤립, 꽃창포, 붓꽃, 백합, 홍초, 파초, 국화) 뒷마당 꽃들은 빛깔도 초라하고 향기도 농농하거나 그윽하지 못했다.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꽃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예쁜 꽃이지만 그러나 인간의 탐욕적 심미안에서 보면 분명 차이가 있다. 앞마당 꽃들이 몸단장한 세련되고 우아한 여인이라면 뒷마당 꽃들은 수더분하며 후덕하고 정감 있는 여인이다. 소박한 꽃들이 그득한 뒷마당은 푸근하고 편안한 놀이터라 굴렁쇠를 굴릴 때가 아니면 대부분 뒷마당에서 놀았으니 뒷마당에 대한 나의 감정과 추억은 특별하다.

이 많은 꽃들 중에 뒤 담벼락을 따라 핀 해바라기는 어린 아이 눈에는 신비의 꽃이였다. 해바라기는 별다른 미색(美色)도 그윽한 향기도 없다. 그러나 채송화가 지렁이 같은 줄기로 땅바닥을 뭉갤 때 해바라기는 매일매일 무럭무럭 자라나 키가 담장 밖으로 솟아오르고 상수리에 보름달 같은 꽃판에 노오란 꽃을 피우며 가을바람 불 때까지 큰 잎사귀를 너울거린다. 가뭄이 잔디를 태워도 태풍에 나뭇가지가 부러져도 끄떡없이 옹골차게 독야청청한다. 오로지 태양을 향해 끊임없이 열정을 쏟고 구애하면서 종래에는 빈틈없이 단단한 씨알로 쟁반 같은 화심을 꽉 채운 후 인생을 마무리한다. 백절불굴의 의지를 가진 선비요 충직한 전사의 일생이다. 태양을 향해 불타는 마음으로 밀알만한 씨앗으로 황무지나 척박한 도회지 땅도 아랑곳하지 않고 늠름하게 거인처럼 자라나는 경이로운 꽃이다. 이제 더 이상 고소한 해바라기씨가 우리에게서 간식으로 환영받지 못해서일까. 지천에 피던 해바라기도 요즈음 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미래를 이어갈 젊은이들에게 덕담 대신 나는 해바라기 생태를 전하고 싶다. 슬기롭게 깊이 느껴 얻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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