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文友) 송산(松山) 선생이 자서전적 수필집 <구름방>을 보내왔다. 발품을 팔아 가슴으로 쓴 감동적인 글들이다. 수려한 문체에 삶의 철학이 녹아 있는 수작(秀作)이다. 이 수필집의 우봉 조희룡 선생 매화서옥도에 관한 글은 지난날 동양화 공부에 심취했던 나의 추억을 회상케 하였다. 많은 눈이 쌓여 소보록한 산기슭에 나지막한 서옥(글방)이 있고 주변은 온통 매화로 둘러싸여 있다. 글방의 휘장을 걷은 둥근 창으로 서책을 층층이 쌓아 놓은 서안(書案)을 마주하고 책을 읽는 선비가 보인다. 창밖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매화도 부족했던지 백매화 한 송이를 화병에 꽂아 서안에 두고 있는 그림이다.
스승 추사(秋史)로부터 받은 냉대와 편애를 우봉은 매화로 승화시켜 초옥을 매화꽃으로 덮는 장관을 화폭에 담았는가.
화단(畫壇)의 질시를 무릅써가며 전통화법에 반하는 파격의 그림은 스승에 대한 섭섭함의 표현인가 아니면 억제할 수 없는 그림에 대한 탐미적 의식의 발호인가.
춤추는듯한 율동적 필치의 점들이 매화꽃이 되어 담채와 어울려 보는 이들을 압도하였고 거기에 고아한 추사체로 스스럼없이 써내린 화제(畫題)가 문기를 더해 불후의 명화가 되었다. 이 파격의 그림은 누구도 이르지 못하는 높은 경지의 대작이었으며 후학들이 다투어 답습하는 교본이 되었다. 만고에 빛나는 절품(絶品)이다.
학문의 깊이가 없으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없다는 이른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가 없다는 서화가로서의 치명적 불명예를 자유분방하고 대담하여 거칠기조차한 필치로 우봉은 맞섰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단의 필치와 화법이었으며 그렇게 탄생한 화려하고도 섬세한 양식의 매화 그림은 우봉만의 독특한 예술세계였다. 그것은 새로운 전통의 시작이었다. 우봉이 열어놓은 문을 통해 수많은 후배 화가들이 대작을 그렸다. 동양화는 사생의 관찰을 넣어 은미한 곳에 작가의 세계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수묵화 병풍이 있는 방에서 태어났고 한시의 제목과 시가 쓰여 있는 동양화 액자, 족자 밑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니 시, 서, 화와의 친숙함은 자연스런 일이었고 그것이 내 문예적 감각과 정서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동양화를 이해하기도 전에 작품과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은 여기서 스스로 배양되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한시를 읽으면 동양화가 그려졌고 동양화를 보면 한시가 읊어졌으니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었다. 시와 그림은 늘 함께했다. 그것들은 서로의 기록 방법이 다를 뿐 내게 감정의 울림을 주는 데는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그 울림에 매료되어 그림 공부를 시작했고 그 공부는 옛사람을 만나게도 했고 내 삶의 폭을 넓게도 했다. 내 문화적 뿌리와 정체성은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레 육성되었고 동양화를 감상하고 이해하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양화의 여백은 나에게는 늘 새로움이었다. 여백에는 나름대로 생각을 넣어서 감상할 수도 있고 나만의 그림을 그려 넣어서 완성할 수 있어서 좋았다. 여백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철학이 꽉 차 있는 공간이다. 동양화를 제대로 감상한다는 것은 그림 속에 응축되어 있는 작가의 삶과 시대정신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림 속 풍정(風情)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숱한 세월을 고뇌하며 고루한 인습과 맞서 싸워야 했던 화가들의 삶에 시나브로 빠져들어 어느덧 그림 속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들의 삶은 궁핍하고 절박했지만 오로지 한 자루 붓을 돛대 삼아 시대의 격랑과 풍파를 헤쳐가며 그림을 그렸다. 그들의 치열한 삶이 그림의 역사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동양화를 대할 때는 숙연해지기도 침잠해지기도 했다.
일상에서 벗어나 명상의 시간과 생활의 여유를 갖는 데는 나에게는 동양화가 특별했다. 부산스러움을 억제하는 데는 고요함보다 나은 것이 없고 그 고요함을 만나는 데는 동양화 만한 것이 없었다. 동양화는 내게 위안과 신선함을 주며 작품을 통해 투영된 그들의 삶이 내 안에 들어와 내 삶이 확충되는 감개와도 만나게 했다. 동양화 공부는 나를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믿고 싶다.
이제 동양화 공부는 잠시 앉아 쉬어가는 내 삶의 그루터기였으면 한다. 그루터기에 앉아 쉬면서 때로는 나의 인생을 반추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선인들의 숨결도 느껴보고 싶다.
고인에게 불던 그 맑은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 바람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