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슨 곡을 해볼까요?

버스킹과 선곡

by 다크엘

그동안 취미로 음악 생활을 하며 수십 회의 공연을 서 봤다. 많은 공연을 했다고 하니 왠지 거창하게 들리지만 그 대부분은 취미 동아리의 공연이거나 지인들의 개인 음악회, 혹은 버스킹 공연들이었으니 그리 대단한 무대들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대를 준비할 때마다 그 무대가 큰 행사의 유료 공연이건 조그만 개인 음악회건 상관없이 고민하게 되는 부분은 공연 곡의 구성이다.


잘하는 곡, 내가 좋아하는 곡만 모아서 연달아 들려주고 싶지만 그러다 보면 공연의 구성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다. 글에도 기승전결이 있고 스토리에도 완급 조절이 있듯이 음악에도 구성의 묘미가 필요하다. 한 곡의 연주에서도 도입부의 서사와 진행의 상승감, 클라이맥스의 느낌과 확실한 맺음의 전달이 있어야 좋은 연주라고 하듯이 여러 곡이 올라가는 무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가 되어야 한다. 여러 명이 올라가는 하나의 공연이 하나의 묶음이 되기도 하고, 그 여러 공연자 중 한 명이라면 내 차례에 소화해야 하는 곡들의 구성이 하나의 묶음이 되기도 한다.


곡의 구성에 흔들림 없는 어떤 대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경쾌한 곡과 서정적인 곡의 적절한 배분이다. 느린 템포의 곡이 너무 많이 연달아 나오면 공연의 분위기가 가라앉게 되고, 반대로 달려가는 느낌의 곡이 연이어지면 관객이 지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빠른 곡, 느린 곡을 퐁당퐁당 섞어 넣으면 공연이 일관된 느낌을 주지 못해 관객들을 혼란하게 만들 수 있다. 서정적인 곡으로 감상에 집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가 바로 다음 곡에서 텐션이 뛰어오르고, 그다음 곡에서 다시 가라앉는다면 공연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공연 전체의 길이를 고려해서 호흡을 공유할 수 있는 적당히 비슷한 느낌의 곡끼리 붙여놓고,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싶은 타이밍에 다른 느낌의 곡을 배치하는 식의 구상이 필요하다.


잔잔하고 차분한 느낌의 곡으로 공연의 오프닝을 시작하고, 진행에 따라 조금씩 텐션을 끌어올려 가다가 가장 신나고 호응이 좋은 곡으로 마무리를 짓는 방식의 구성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고, 공연의 시작 곡에서부터 공연자의 정체성을 규정지을 수 있는 대표곡을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방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상 공연시간이 길다거나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는 공연이라면 그에 따라 호흡을 적당히 섞어 넣는 순서를 취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조합법이 있을 수 있다.


그 외에도 곡 리스트에 고려해야 되는 요소들은 꽤나 많다. 등장과 퇴장에 따른 연주자의 동선이라거나, 사용 악기의 순서들도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들이다. 가끔은 보컬의 목 상태 또한 곡 순서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상태가 좋을때 버거운 곡을 먼저 하기 위해 초반에 배치해 달라는 사람도 있고, 힘든 곡을 부르고 나면 다음 노래를 못 부를 것 같으니 그 곡은 제일 마지막에 넣어달라는 보컬도 있다.


이처럼 공연의 완성도를 위해서 많은 요소들을 고려하고 고민해서 공연곡의 리스트를 짜게 되지만 내가 지금부터 나가야 하는 공연이 거리의 버스킹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게 된다. 거리에서 하는 공연이 공연장과 다른 가장 큰 부분은 관객이 내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체 곡을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하고 적절한 리스트를 만드는 일은 대부분 공연의 처음부터 관객이 관람해 주고, 끝까지 함께 해준다는 전제하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하지만 버스킹은 그렇지 않다, 특히 거리의 무대는. 어쩌다 관심을 가져주는 행인들도 두어 곡을 듣고는 가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애써 만든 리스트의 곡의 흐름이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버스킹을 시작하는 처음 몇 곡은 관객이 없는 경우도 많고 눈앞의 관객들은 공연을 진행하는 동안 유입되고 빠져나가면서 계속 갱신된다.


그러다 보니 버스킹에서의 선곡과 순서는 어느 정도 즉흥적이거나 상황에 따라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고 거리로 나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대략적인 송 리스트는 작성하되, 상황에 따라 즉석에서 순서를 바꾸고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레퍼토리 중에서도 조금 더 자신 있거나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받을만한 곡이 있는데 그 곡을 연주할 때는 들어주는 이가 아무도 없을 때가 있다. 그런데 두어 곡 지난 다음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봐주기 시작했다면 적당한 기회를 봐서 그 곡들을 다시 공연해도 된다. 버스킹 공연은 타이밍이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 줄 때 조금이라도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 하니까. 버스킹에서의 송 리스트 구성은 전체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가 하나의 묶음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할 때부터 그 관객들이 어느 정도 교체될 때까지가 하나의 묶음이 된다.


어렵게 모인 관객들의 반응을 봐 가면서 다음 곡을 결정하기도 한다. 드문드문 서거나 앉아서 지켜봐 주는 관객들이 커플들이고 서정적인 곡을 감상하는 분위기라면 가진 레퍼토리 중에서도 그런 비슷한 분위기의 곡들을 주로 꺼내놓게 된다. 흥겨운 곡들에서 멈춰 서서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많다면 가급적 신나는 분위기의 곡들로 공연을 채워나가면 된다. 관객들의 연령대가 높다면 그에 따라 7080 세대가 알 만한 곡들을, 젊은 분위기라면 가급적 최근의 곡들을 꺼내놓는다. 간혹 꽤 긴 시간을 같이 보아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버스킹 관객들의 호흡은 길지 않다. 그래서 그 한순간마다 호흡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고, 같이 호흡하게 된다.


이처럼 거리에서의 버스킹 공연은 준비되고 세팅된 무대에 비해 즉흥적이고 숨 가쁘다. 잘 짜인 무대의 세련됨은 부족할지 몰라도 날 것이고 투박하지만 조금 더 관객을 쳐다보고 관객의 호흡에 같이 반응하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들은 내 공연을, 내 연주를, 내 노래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공연장에 앉은 이들은 누군가의 공연을 보기 위한 마음을 먹고 온 이들이고, 공연이 시작된 이상, 이번 곡에서 미흡하더라도 다음 곡에서 다시 한번 나의 진심을 들려줄 기회가 남아 있다. 내 차례가 끝나기 전 까지는. (물론 수준 이하의 공연이라면 그대로 객석을 떠나버리는 관객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리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언제든 이번 곡이 그에게 들려주는 첫 곡이자 마지막 곡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니 항상 모든 곡에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이렇게 써 놓고 나니 마치 버스킹 무대가 관객들에게 너무 절실히 목을 매는 처절한 전쟁터와 같은 느낌처럼 표현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를 포함한 많은 버스커들은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공연하는 것에 꽤나 익숙하다. 관객들이 그렇게까지 절실하다면 거리보다는 차라리 기획공연의 무대에 서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설사 그 객석의 대부분이 지인들로 채워진 자리라고 하더라도. 하지만 그런 공연의 무대는 횟수도 장소도 한계가 있기에 조금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은 새로운 관객을 만나기 위해 거리에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대가로 가끔은 관객이 없는 무대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다만, 거리에서 노래하다 보면 그저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순간 나의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들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조금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그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공연에 반영하려 피드백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관객들과 조금 더 가까이, 그리고 실시간으로 소통하게 되는 것, 그리고 내 노래를 들어주는 이에게 감사하게 되는 것. 그것들이 버스킹을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이유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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