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는 돈을 받으면 안 되나요?
“프로가 별 거야? 한 푼이라도 받으면 프로인 거야.”
이 문장은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차이가 뭘까.’라는 질문에 가장 흔하게 돌아오는 대답일 듯하다. 나는 아마추어 음악가이고 취미 버스커이지만 공연의 성격에 따라 공연료를 받고 무대에 서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프로 음악가인 걸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아마추어 음악가들도 크지 않은 행사나 지역 축제 등에서 대가를 받고 무대에 선다. 하지만 이들을 모두 프로 음악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대가를 받는 공연을 한다는 것을 프로페셔널의 정의라고 하기에는 조금 성급한 면이 있다. 서두의 문장은 ‘대가를 받으니 나는 프로야!’라는 의미라기보다는 ‘대가를 받았으니 프로에 준하는 마음가짐으로 확실한 성과를 보여주도록 노력해야 해!’ 정도의 뜻으로 해석하는 게 맞을 것이다.
공연에 대가를 받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최 측이 납득할 만한 실력이 있다는 것일 테니 그렇다면 실력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나누는 잣대인 걸까? 하지만 이 기준을 충족하는 아마추어 음악가들은 생각보다 많다. 때로는 프로페셔널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아마추어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또한 프로 음악인 입단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니 객관적으로 이 정도 이상이면 이젠 프로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있을 리도 없다. 그러니 실력이 프로와 아마추어를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음악으로 밥을 먹고사는 ‘전업 음악인’ 이 프로의 정의일까? 예전에는 어떤 분야에서 그 일을 업으로 삼는 이를 프로라고 지칭했다. 하지면 요즘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본격적으로 음악 관련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프로라고 불러줘도 되겠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음악만으로 밥 먹고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가 자주 들르는 조그만 라이브 펍에는 매주 전국에서 여러 장르의 뮤지션들이 공연을 하러 온다. 그들 중에는 비록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인기 가수는 아닐지 모르나 각 장르에서 확고한 그들만의 세계를 가진 뛰어난 뮤지션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각자의 씬(Scene)에서 나름의 인지도와 개성을 가진 훌륭한 음악인들이고 프로페셔널이라고 말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실력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중 꽤나 많은 수가 자신의 음악 활동 외에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나마 음악에 관련된 일–레슨이나 강의, 세션 활동–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면 나은 편이지만 그마저도 쉽지는 않아서 음악과 관련 없는 생계수단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취미 음악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훌륭한 그들의 공연을 보면 저런 뛰어난 실력과 독특한 음악 세계를 가지고서도 그 음악만으로 먹고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씁쓸함으로 밀려온다.
프로 뮤지션에 대한 정의는 무엇으로 내려야 할까? 개인적인 생각임을 전제로 해서 말해본다면 내게 프로의 정의는 ‘자칭’이다. 즉, 스스로 프로라고 칭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그는 프로 뮤지션인 것이다.
좀 뜬금없는 의견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스스로를 프로 뮤지션이라고 자칭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 낮에 증권회사를 다니면서 밤에 무대에 서고 음악을 한다 해도 본인을 전문 음악인이라고 자칭할 수 있다면 그는 프로 음악인인 것이고, 입시학원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수준 높은 음악을 연주하고 만드는 이가 스스로를 학원 원장이라고 자칭한다면 그는 아마추어 음악인일 것이다.
이는 본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어느 곳에 놓느냐의 문제이다. 음악을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우선순위에 놓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것이니 스스로 자신의 주 업이 음악이라고 말하는 행위 그 이상의 자격이 필요할 리가 없다. 더욱이 요즘처럼 N잡러가 흔한 시대상에서는 가장 큰 수입을 올리는 업이 본업일 필요도 없다. 객관적인 능력의 검증 따위는 어차피 본인이 프로를 자칭하는 그 순간부터 스스로가 감당할 몫이기에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에 전업 유무를 떠나서 스스로 프로 뮤지션을 자칭하는 모든 이들을 나는 존경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가림막으로 삼고 있는 이 아마추어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안온하고 따듯한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취미의 영역이라고 밝히는 순간부터 나는 응당 받아야 할 냉정한 비판의 잣대와 차가운 평가에서 도망칠 수가 있다. ‘아마추어 치고는 너무 잘하시는데요’ 라거나 ‘취미 수준이 아닌데요’라는 분에 넘치는 호평은 내가 아마추어의 영역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덕담 같은 것들이었다.
취미의 영역을 넘어가는 순간, 평가는 냉정해지고 비판은 잔인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꺼이 그 영역으로 들어갔다. 그 자체로 그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단 한 번이라도 음악을 업으로 삼는 것을 꿈꿔보지 않은 아마추어 음악인이 얼마나 될까. 그 꿈이 어린 시절 달나라 여행이나 과학자를 꿈꾸던 수준의 동경이었든, 진지한 고민 끝에 자신의 능력과 현실을 저울질하던 고민이었든 간에 음악을 좋아하는 이는 한 번 정도는 평생 그 좋아하는 음악만을 하면서 살 수 있기를 꿈꿔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재능의 부재나 현실의 장벽 등으로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취미의 영역에 남는 것을 선택한 이들로서는 한 발짝 더 걸어서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하는 프로의 영역으로 넘어간 이들을 존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프로 음악가들을 존경한다. 그렇기에 나는 비록 프로 뮤지션이 아니지만 공연료를 받을 수 있는 공연이라면 사양치 않고 대가를 받는다. 그것이 오히려 그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대에 서고 싶은 욕심 때문에 정당한 공연료를 받지 않고 무대에 서겠다는 이가 많아진다면 개인적 욕심에 그러한 이들만으로 꾸리는 무대가 많아지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수익을 벌어야 하는 이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적어지게 된다. 거창한 경제논리를 끌어다 설명하지 않아도 쉬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로 인해 저열해지는 공연문화의 수준은 딸려오는 부록 같은 것이 되리라. 음악인들에게 정당하게 돌아갈 몫이 사라진 세상만 남는다면 그것은 비단 전업 음악인들만의 비극은 아닐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