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박스는 놓아도 되는 걸까?

버스킹과 팁박스

by 다크엘

“우리도 다음부터는 팁박스를 놓는 게 어때?”


버스킹이 끝나고 장비를 챙기는 멤버들에게 슬쩍 운을 띄워봤더니 케이블을 감고 있던 J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에이, 형님. 또 그 소리이십니까. 어디서 돈독이 오르셔가지고...”


“아니, 이 자식이. 돈독이라니, 죽어볼텨? 아까 공연 중에 다가오셨던 할머니도 돈통 어디 있냐고 그러셨잖아. 다만 얼마라도 주고 싶다고. 아니, 왜 다들 놓는 팁박스를 싫다는 거야?”


“글쎄요, 흠... 물론 그런 분들은 고맙기는 한데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다지 내키지 않네요. 그리고 형님이 저번에 팁박스 놓는 거 불법이라고 그러셨잖아요.”


“아니, 뭐 엄밀히 따지면 저작권법 위반인 건 맞지만... 그건 원론적인 이야기고. 이런 조그만 버스킹에까지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거든? 팁박스라는 게 수익 문제라기보단 관객들과의 소통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고. 겸해서 연습실 사용료에라도 좀 보탤 수 있으면 나쁠 건 없잖아. 버스킹도 준비하는데 돈이 제법 들어간단 말이다. 뭐, 많이 보태지도 못하겠지만.”


“뭐... 그건 그렇기는 한데 말이죠. 아직 자작곡도 몇 개 없어서 커버곡이 대부분인 공연에서 팁박스를 놓는다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기는 합니다요. 그리고 돈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이게 공연할 때 부담이 왕창 된단 말입니다. 지금 우리 공연이 과연 돈 받을 만한 퀄리티가 되는지... 팁박스 놓으려면 지금처럼 느슨하게 연습하고 대충 연주하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일단, 오늘 형님 카혼 틀린 게 몇 군데더라?”


“아니, 뭐. 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흠흠... 이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꾸나. 자아, 정리 다 해 가나? 배고프다. 빨리 정리하고 밥 먹으러 가자.”




길거리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버스커 앞에 기타 케이스를 열어놓거나 모금함 같이 생긴 통을 놓고 공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리의 관객들은 공연이 마음에 들거나 하면 소정의 금액을 팁으로 넣는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이것을 팁박스라고 부른다. 인디 가수들은 홈레코딩으로 만든 자신의 CD를 같이 판매하거나, 팁을 넣은 분들에게 CD를 드리기도 한다.


목 좋은 관광지에서 하루 종일 버스킹을 해서 몇십만 원을 벌었다거나, 아우디를 타고 온 통 큰 관객이 지갑을 열어 30만 원을 넣고 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어는 보았지만 그런 일은 정말로 어쩌다 생기는 드문 경우일 테고 실제로 대부분 팁박스에는 그리 큰돈이 모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공연과 연주만으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이 있다. 그처럼 버스킹으로 제대로 된 수입을 올린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어렵다. 음악을 업으로 하는 이들은 버스킹에서 본격적인 수입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대중에게 홍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기의 노래를 대중들에게 들려주는 것에 따른 대가를 팁박스의 형태로 받는다. 그렇다면 음악이 업이 아닌 취미 버스커들은 과연 팁박스를 놓아도 되는 걸까?


버스킹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의 나 또한 팁박스를 놓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우선, 내 연주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과연 사람들에게 떳떳이 팁을 요구할 만큼 내 실력이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애써 용기를 내고 좀 더 뻔뻔해지려고 노력해서 거리에 섰지만 공연을 시작하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끝날 시간만 초조하게 기다리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느 정도 자신의 연주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것은 거리에 나가기 시작하고 나서도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서두의 대화 내용에서도 언급했었지만 팁박스가 현행법상으로는 엄밀히 말해서 불법이라는 부분이었다. 초반의 버스킹 공연에서는 당연하게도 모든 곡이 카피곡이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도 모든 공연을 채울 만큼의 자작곡이 있지는 않다. 물론 자작곡 수가 충분히 많다고 하더라도 무명 뮤지션이 모든 곡을 자작곡으로 공연한다는 것은 관객의 호응을 생각해 봤을 때 쉽게 시도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결국 카피곡이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게 되는데, 잘은 모르지만 남의 곡을 연주하는데 몇 푼이라도 돈을 받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가지로 조사를 해 보니 기존 곡을 영리 목적으로 공연하게 되면 저작권법 위반이 된다고 한다.


법조문이라는 게 문장부터 딱딱하고 어려워서 몇 번씩 읽어봐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저작권법의 해당 내용을 조금만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될 듯하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저작권법 제29조를 찾아보자.)


기본적으로 타인의 곡을 공연하는 행위는 저작권법상 지적 재산권 침해이지만 다음의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는다.

-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을 것.

- 청중이나 관중 등 제3자로부터 어떤 명목으로든 반대급부를 받지 않을 것.

- 실연자(공연하는 자)에게 통상의 보수를 지급하지 않을 것.


조금 더 쉬운 말로 바꿔보자면 공연으로 인해서 금전적 이득을 취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될 듯하다. 이 외에도 버스킹 공연을 촬영하여 업로드하는 것에 대한 문제, 기성 반주(MR) 사용에 대한 문제 등 세부적인 여러 가지 조항이 있는 것 같으나 일단 거기까지는 생략하기로 하자.


엄밀히 따지자면 버스킹으로 저작권이 있는 기성 곡을 연주하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께서 좋은 연주 들어서 고맙다고 하시며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주셨다면 저작권법 위반이다. 반대급부-음료-를 받았으니. 하지만 이렇게까지 따지는 것은 좀 너무할 것 같다. (실제로 저렇게 음료 등을 사주시는 감사한 분들은 종종 있다.) 그리고 한두 시간 정도의 버스킹에서 팁박스에 들어오는 금액은 그리 크지 않다.


금액이 크지 않으니 그 정도의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괜찮아.라는 식의 논리를 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저작권은 대부분이 친고죄(피해자가 고소를 하여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죄)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죄)에 가깝지만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저작권을 침해당한 이가 이의를 제기해야만 처벌할 수 있다고 이해한다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원곡의 가수나 작곡자 입장에서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노래가 불려지고 알려진다면 그리 나쁠 것은 없다. 오히려 많은 이가 즐겨준다면 심정적으로도 기쁠 테고 장기적으로 이득이 된다.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거창한 판을 벌려 원 저작자에게 돌아갈 몫을 가로채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에게도 일일이 버스킹에서나 라이브카페에서의 공연까지 규제할 필요를 느끼진 않을 것이고,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들의 건전한 문화 확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저작권법이 친고죄인 것도 그러한 취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 공연에 대한 박수의 많은 부분이 원 저작권자의 몫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암묵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수위는 어디까지나 적절한 규모의 비 상업적인 범위 내 이어야 할 것이고, 정당한 권리를 가진 이에게 그 과실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항상 상기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스스로도 그 권리를 가졌을 때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도.


그렇게 막연히 불법적인 일이 되는 것 같아 꺼림칙했었던 부분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고, 연주 실력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라고 쓰고 뻔뻔함이라고 읽는다.)이 붙을 무렵 나도 팁박스를 놓아보게 되었다. 다이소에서 접을 수 있는 조그만 수납 박스를 구매하고, 포토샵으로 그림을 그려 팁박스 앞에 붙이고는 버스킹을 나가기 시작했다.


공연이 끝난 후 열어본 팁박스에는 어떤 날은 천 원짜리 몇 장이 들어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만 원짜리도 가끔 섞여 있기도 했다. 팁박스의 내용물을 보면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길 가다 우연히 보게 된 거리의 공연에 이런 금액을 선뜻 넣어줄 수 있는 이의 마음씀이 너무도 고마웠다. 액수에 관계없이 그저 나의 노래가, 나의 연주가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그 느낌이 너무도 뿌듯했다. 길을 걷다 잠시 멈춰서 내 음악을 들어주고, 가끔 박수도 쳐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팁박스에 팁을 넣어주는 행위는 조금 더 직접적인 응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만 원짜리 두 장이 들어있는 날보다 천 원짜리 열 장이 들어있는 날이 조금 더 큰 만족감을 주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팁은 부모와 같이 산책 나온 7~8세 정도의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넣어준 500원짜리 동전이었다.


지인 중에 해외를 주로 여행하는 여행작가가 있다. 최근 그가 쓴 책에서 남미 시골 마을을 여행하다가 펍에서 만난 현지 버스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현지에서 만나는 거리의 악사들의 음악을 듣는 것을 즐겨하고, 그럴 때는 꼭 소정의 대가를 지불한다고 했다. 그런 풍토가 문화의 자양분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문화를, 특히 음악을 향유하는 것에 대하여 대가를 치르는 것을 조금은 어색해하는 것 같다. 거창한 콘서트장이나 오페라 극장에서 음악을 듣는 것에만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생활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음악들에도 기꺼이 적절한 대가를 치를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음악은 봉사활동이 아닌데 왜 자신의 연주에 대가를 요구하면 순수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걸까. 내가 좋아서 하는 공연이니 돈을 받으면 안 되는 걸까. 하지만 거리 공연에서 팁은 강제성이 없다. 수준 이하의 공연이라면 누구도 팁을 주지 않을 것이고, 그저 내키면 자기가 만족한 만큼 대가를 지불하면 된다. 그를 위한 노력은 온전히 공연자의 몫이고 그 결과도 공연자가 받아들이게 된다. 애초부터 팁박스를 놓는 행위 자체를 삐딱하게 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예술이 배고픈 것은 우리가 적절한 밥을 주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럴수록 예술은 우리 생활에서 멀리 떨어져 고고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이에게 기꺼이 작은 보답이라도 할 수 있는 세상. 음악이 공짜가 아닌 세상은 우리 주변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조금 더 많이 채워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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