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어느 곳을 가 볼까요?

행사 찾아 삼만리

by 다크엘

매년 2월쯤부터 버스커들은 열심히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날씨가 풀리면서 드문드문 나오게 될 그 해의 행사와 공연 모집 소식을 찾기 위해서다. 4월쯤, 이르면 3월부터 각 지자체들의 기획 행사나 계절별 축제, 민간단체나 회사들의 행사가 시작된다. 전국 방방곡곡의 버스커 모집 글이나 공연 개최 글들을 보며 지원할 만한 적당한 무대를 찾아본다. 지원한다고 모두 되는 것도 아닌 만큼 최대한 한 군데라도 더 많은 신청 기회를 찾아보려 애쓰게 된다.

무대의 성격은 다양하기에 각 신청 글들의 조건들을 면밀히 살핀다. 우선은 거리를 따져보게 된다. 전남 화순에서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전국 다양한 곳에서 무대가 열린다. 현실적으로 너무 먼 곳은 불가능하다. 시간상으로도 그렇고 비용 면에서도 쉽지 않다. 가까운 곳만 고르고 싶지만 그나마 드문드문 올라오는 공연 모집 글의 빈도를 보다 보면 아까 전 걸렀던 조금 먼 곳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아무래도 수도권에 행사들이 몰려있는 관계로 서울이나 수도권 근교에서 활동하는 버스커들이 유리한 편이다. 지방 거주자는 선택지가 대폭 줄어든다.


참가 조건도 잘 살펴봐야 한다. 요즘의 지역 행사에는 그 지역 거주자로 참가 제한을 두기도 해 아예 신청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 제한이 있기도 하다. ‘청년 버스킹’ 같이 청년이란 단어가 붙으면 39세 이하라야 된다. 가끔씩 ‘실버’라는 단어가 붙는 행사도 있다. 행사마다 다르지만 60세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39세 초과 60세 미만 버스커는 뭔가 억울하다. 젊지도 늙지도 않으니 따로 챙겨주지 않는다는 건가 싶다. 적당한 호칭이 없어 그런 거라면 ‘중장년 버스킹’ 정도면 어떨까. 사실 이 나이면 요즘 트렌드로는 중장년도 아니지만. 사회의 허리가 되는 이 연령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절실한 듯하다. 사람도 허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 않나.


예전에는 지역 제한의 경우 그 지역 거주자 1명 정도만 대표로 신청하는 꼼수도 부릴 수 있었으나, 꼼수가 진화하는 만큼 규정도 진화하는지라 요즘은 참가자 모두의 신원정보를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마찬가지로 나이 제한의 경우 구성인원의 1/2, 혹은 2/3이 해당 나이대여야 된다는 규정이 도입되는 추세다. 나이 제한을 두는 취지를 생각하면 그게 맞기는 하다. 다만 다시 말하지만 낀 세대로서는 아쉽다는 것 뿐.


그다음으로 보는 것은 장비 지원과 페이의 유무이다. 장비 지원의 경우에는 대부분 기본 음향장비만 지원해 준다고 되어 있다. 악기까지 렌털해 주는 경우는 거의 없고 어차피 자기 손에 맞지도 않으니 이건 당연한 듯싶지만 그렇다고 생각 없이 넘어갈 것도 아니다. 정말 기본 음향장비만 지원한다는 뜻은 콘솔(조정석)측에서 라인만 받아주겠다는 것이니 마이크와 마이크 스탠드, 보면대 까지도 본인들이 챙겨야 한다는 뜻이 된다. 가끔씩은 의자도 알아서 준비해야 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행사장에서 쓰는 팔걸이 일체형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기타를 치게 되기도 한다. 기타 칠 때 팔걸이가 있는 의자는 매우 불편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필요한 악기와 장비들을 차곡차곡 챙기다 보면 대중교통은 언감생심 고려할 수도 없고 어찌 되든 개인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데 웬만큼 적재공간이 큰 차가 아니고서야 짐을 다 싣고 나면 4명이 한 차에 탈 수가 없다. 그렇다고 두 대가 움직이면 기름값, 톨게이트비가 따블이다.


페이(pay-보수)의 유무는 꽤나 민감한 이슈다. 대부분의 지자체나 관공서, 혹은 그에 준하는 나름 이름 있는 단체의 공연에는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출연료가 책정이 되어 있다. 물론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어디든 빠듯한 건 마찬가지다 보니 페이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타지방으로 움직일 경우에는 교통비와 식대 등으로 소진될 정도의 금액인 데다 1박이 필요한 일정이 된다면 이미 적자를 각오해야 되니 자연스럽게 먼 거리의 무대는 거르게 된다. 아니면 멤버들끼리 여행 가는 셈 치고 자비를 들여 참가하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거나.


페이의 성격은 다양하다. 출연료 형태도 있고, 콘테스트와 같이 상금의 형태도 있다. 출연료는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지만 최소한의 대가가 보장된다. 대부분 팀의 인원수에 비례해서 책정된다. 예를 들면 1인 15만 원, 2~3인 20만 원, 3~5인 30만 원 같은 식이다. 예시로 든 금액이지만 실제와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는다. 전체 금액은 적지만 혼자 다니면 한 사람 분의 몫은 제일 많다. 다만, 혼자 다니면 심심하고 외롭다. 보통 2~30분, 길어봤자 1시간이 넘지 않는 무대를 위해 왕복 몇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데 웬만큼 혼자 다니는 게 적성이 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과정 자체가 힘들다. 어차피 수입의 의미라기보다는 제반 경비 보전의 의미 이상은 없기에 팀으로 다니는 게 경험상 훨씬 재미있다.


콘테스트의 형태라면 수입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좋은 성적으로 입상한다면 일반 무대의 출연료보다는 많겠으나 아무래도 경쟁률이 치열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떨어진다. 우수상 정도 이상은 되어야 일반적인 출연료보다 조금 나은 편이고 장려상 정도라면 적자라고 봐야 한다.


배짱 튕겨가면서 이리저리 가리고 있는 것처럼 말해도, 사실 아마추어 버스커 입장에서는 그리 가릴만한 처지도 못 된다. 전국의 축제나 행사는 한정적인 데다가 아마추어 버스커들만으로 참가 제한이 있는 행사는 더욱 적으니 (아마추어만으로 참가 제한을 하는 경우에는 보통 앨범이나 싱글 발매 유무를 기준으로 삼는다.) 웬만한 무대에서는 날고 기는 고인물들과 출연 경쟁을 하게 된다. 어느 장르건 다르겠냐만 인디 음악인들 중에서는 대중적인 인지도만 없을 뿐인 엄청난 실력자들이 발에 차이도록 넘친다.


통영에서 하는 국제음악제의 프린지 버스킹을 몇 번 지원해 본 적이 있다. 매년 선정에서 탈락할 때마다 속이 쓰렸지만 선정된 참가자들의 목록을 보면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 제한도, 프로 제한도 없다 보니 전국에서 쟁쟁한 실력자들이 모여들었고, 그중에서 선정된 이들은 그럴 만한 실력과 결과물-앨범과 공연 경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음악을 인터넷에서 찾아 들어보면 우리가 왜 선정되지 못했는지 싫어도 납득하게 된다. 그러면 아, 우리는 이대로는 모자라는구나, 더욱 노력해서 스펙을 쌓아야겠다. 뭐 이런 열정이 샘솟게 된다.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요즘은 참가 신청서에 3분 정도의 공연영상이나 동영상 링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나름 공연자를 선발하기 위한 자료인 셈인데 예선이나 오디션을 보기 위해 두 번씩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은 엄청난 장점이지만 그에 비해 참가 신청서에 SNS 링크 등을 요구해서 평소의 활동이나 인지도 등을 심사에 포함시키게 된 것은 취미 버스커 입장에서는 은근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골방 연습실에 틀어박혀 열심히 연습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니 무대에 설 기회를 만들고 인터넷상에서 스스로를 알리는 활동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자기 PR의 시대다. 물론, 스펙에 올릴 만한 무대를 오르기 위해서는 스펙이 필요하다는 모순이 생긴다는 문제가 있긴 하다.


쉽지 않은 경쟁률과 현실적인 제약들이 많기는 하지만 낯선 곳의 무대는 언제나 설렌다.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인터넷 서칭을 한다. 물론, 기회를 만났을 때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지겹고 힘들더라도 매주 돌아오는 연습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으니. 그래서 오늘도 또 퇴근길에 악기를 메고 지하 합주실로 향한다. 다음에 향하게 될 낯선 곳의 무대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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