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의 버스킹 도전

부끄럽지만 노래하고 싶습니다.

by 다크엘

나는 내향인이다. 지난 세기에 유행했던 혈액형으로 말하자면 내성적인 A형이고, 요즘 MBTI로는 극 I를 표방하는 성격이다. 어느 모로 보아도 남 앞에 나서는 상황이 매우 불편하고 어색한 인간일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버스킹을 나가고 있다.


처음부터 거리에서 무대를 차리고 노래하고 연주했던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대수롭지 않았다. 허구한 날 곰팡이 냄새나는 지하 동호회 연습실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던 것도 지쳐가던 어느 여름날이었던 듯하다. 같이 놀던 일행 중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기타 들고 바람 쐬러 공원에나 나가지 않을래요? 풀밭에서 치킨도 뜯고...”


여름날의 눅눅한 습기가 방향제처럼 점령하고 있던 지하실 공기에 질리던 터라 우리는 흔쾌히 이 제안에 찬성하고 근처의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있는 야외 음악당에는 넓은 풀밭이 조성되어 날씨가 좋은 날이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쉬어가곤 했다. 치맥 페스티벌로 유명한 도시답게 잔디밭으로 치킨과 맥주를 배달하는 오토바이들이 쉴 새 없이 돌아다녔고, 살짝 저물어가는 석양 너머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오랜만에 지상으로 나온 우리들을 반기고 있었다.


우리는 소심한 인간들답게 잔디밭 귀퉁이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걸터앉기 좋은 낮은 돌담이 있어 기타를 들고 앉기도 적당해 보였다.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불러 세워 치킨과 맥주 배달을 시키고는 기타와 까혼(나무상자로 된 타악기) 등을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무대도 아니었고 관객도 없었다. 우리는 마이크도 앰프도 없이 그저 기타를 치고 까혼을 두드리고 하모니카를 불었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도 아니었고 그저 우리끼리 박자를 맞추고 화음을 쌓았다. 그렇게 크지 않은 음악 소리가 주변에 퍼져나갔고, 조금씩 그 소리를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주변에 하나둘 앉기 시작했다. 그들은 잔잔한 노래에는 조용히 감상하다가 신나는 리듬에는 같이 즐거워하며 박수를 쳐 줬다.


가끔씩 조심스레 신청곡을 불러 줄 수 있냐고 물어오는 이들도 있었다. 알지 못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곡은 미안해하며 거절했고, 가끔 아는 곡을 신청받으면 함께 불렀다. 그렇게 처음 보는 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연주하는 동안 석양은 저물었고, 잔디밭을 둘러싼 가로등에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여름밤의 더위는 잊히고 있었다.


그날의 예상하지 못했던 즐거운 기억 덕분에 우리는 그 후로도 종종 악기를 들고 야외음악당을 찾았다. 매번 새로운 이들과의 만남이 있었고, 많은 수의 청중은 아니었지만 그곳에는 공연장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사람들과의 교감이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항상 떨리던 무대 위의 긴장감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본격적인 공연장에 서 본 것도 아니고 그저 취미밴드의 발표회나 인디 공연장 무대에 몇 번 서본 게 다였지만 단상 위의 무대와 단상 아래의 줄지어 있는 객석으로 나뉜 공연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노래하는 이와 듣는 이의 높이 차이도 없었고, 아찔한 눈부심으로 관객들의 모습을 모두 지워버리는 조명도 없었다. 그저 들어주는 이들과의 가까워진 거리만큼 편해지는 마음만이 있었다.


어떤 날에는 우연히 만난 이들과의 합주 무대도 벌어졌다. 바이올린을 들고 공원에 놀러 왔다는 어느 교포 학생과의 즉석 잼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경험이었다. 그 학생이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만 아니었다면 같이 팀을 꾸렸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몇 번의 야외 즉석 무대를 경험한 후, 그 설렘을 잊지 못한 우리는 팀을 만들었다. 보컬과 기타, 까혼, 하모니카로 이루어진 심플한 구성의 밴드였다. 많지 않은 관객이지만 우리의 음악을 들어주는 이들에게 조금 더 괜찮은 퀄리티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고정적인 멤버의 구성과 체계적인 연습이 필요했다.


매주 연습실에 모여 비록 커버곡이긴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의 편곡을 통해 우리만의 곡을 준비했고, 주 무대인 야외 음악당뿐 아니라 버스킹을 할 수 있는 다른 장소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배터리로 작동하는 조그만 앰프를 장만하고 여기저기로 돌아다녔다. 불이 꺼진 시내 백화점 앞 광장에서 노래하기도 하고, 어느 대학교 정문 앞 공터에서도 연주했다. 가는 곳마다 좋은 사람들만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곳에서는 장사에 방해가 된다며 쫓겨나기도 했고, 난입한 취객 때문에 공연을 망치기도 했다.


하지만 버스킹은 자유로웠다. 정해져 있는 무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매번 들어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 열악한 상황이지만 그런 만큼 내킬 때 언제든 무대를 꾸릴 수 있고, 노래할 수 있었다. 정해진 형식도 필요 없었고, 힘들고 불편하게 관객을 모시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들어주는 이가 있으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래하고 연주하면 되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거리로 음악을 하러 나갔다. 그동안 몇 번의 팀을 꾸렸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멤버와 새로운 악기들을 만나기도 했다. 버스킹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다른 나라의 영화에서나 보던 낯선 문화에서 조금씩 친숙한 주변의 일상으로 변해 갔다. 해외에서 버스킹을 하는 어떤 TV 프로그램의 흥행이 영향을 준 것도 있었으리라..


버스킹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많은 버스커들이 거리로 몰려나왔고, 그중에는 아쉬운 모습들도 어쩔 수 없이 많이 섞여 있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금은 많은 곳에서 버스킹이 금지되었고, 더 이상 예전만큼 자유롭게 관객을 거리에서 만날 수는 없게 되었다. 정제되지 않은 버스킹이 난립하는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규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기에 지자체들의 통제 안에서 제한된 버스킹을 하고 있지만 가끔은 예전의 자유로웠던 분위기가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거리로 나가는 일은 여전히 설렌다. 내가 하는 노래를, 나의 연주를 들어줄 사람을 거리에서 만나고, 찰나의 짧은 교감을 나누는 일은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지친 일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만족감을 주는 내 소중한 취미이다. 그러니, 나는 또 퇴근길에 이제는 정겹기까지 한 곰팡이 냄새와 습기로 가득한 연습실을 찾을 것이다. 또다시 악기를 메고 나설 버스킹을 준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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