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 좋아하시네

버스킹과 무료행사

by 다크엘

음악을 하는 이들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무대를 찾듯이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무대를 채우기 위해 공연자를 찾기도 한다. 무대의 형태는 다양하다. 행사나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지자체나 공공단체이기도 하고 민간단체 혹은 회사의 수익성 홍보 행사일 때도 있다. 혹은 펍이나 카페 등에서 자체적으로 무대를 만들고 출연자를 찾기도 한다.


21세기 세계로 뻗어나가는 K팝 문화강국을 자부하는 시대이지만 아직도 공연예술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는 좋지 못하고 출연자들에 대한 페이(Pay-출연료) 사정은 빈말로라도 풍족하다고 할 수 없다. 어떤 행사든 예산은 항상 빠듯하고, 예산 실행의 우선순위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요소에 먼저 투입된다. 그러고 나면 인건비는 항상 제일 마지막 순위이다. 유명 연예인이라면 조금은 달라지겠지만 무명 뮤지션이나 아마추어 음악인으로 채우는 무대라면 전체 경비에서 출연료에 대한 비율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최근 많은 행사나 축제에서 버스킹 무대를 마련하는 일은 고마운 일이나 대부분의 경우 출연료는 교통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금액이 적더라도 최소한 무대에 서는 이들에게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곳은 그나마 낫다. 진짜 문제는 열정페이를 대놓고 강요하는 무대들이다. 그런 무대들을 제시하는 이들의 모집 문구는 거의 대동소이하다.


‘끼를 펼치고 싶은 분들에게 무대를 제공할 테니 마음껏 자신의 열정을 선보이시라.’


이런 열정페이 논란은 나름 공공성이 보장된다는 일부 지자체나 공공단체에서조차 몇 년 전까지 종종 보여 왔다. 치맥 페스티벌로 유명한 모 도시는 바로 그 치맥 페스티벌에서 모집하는 버스킹 팀들에게 출연료 2만 원을 책정해서 논란이 되었고, 엑스포로 유명한 또 다른 도시는 수십 개 버스킹 팀을 섭외한 대규모 행사에서 출연료 대신 현장 음식 교환 쿠폰 등을 줬다는 소식으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언론의 힘과 사회적 인식의 개선으로 최소한 지방자치단체나 공공 재단 등의 행사에서는 이러한 관행은 많이 사라졌으나, 아직도 민간단체나 수익사업체 등에서는 이러한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경우가 꽤 남아있다. 최근에 인터넷을 뒤지다가 보게 된 지역의 한 테마파크에서는 테마파크 내 정기적인 버스킹 존 운영을 위한 모집공고를 내면서 당연히 제공해야 하거나 별도의 경비가 들지 않는 ‘전기시설 제공’, ‘뮤지션 홍보용 현수막 설치 가능’ 등을 출연자에 대한 혜택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심지어 입장료가 있는 테마파크 내부라는 것을 이유로 들어 팁박스의 설치까지 금지하고 있었다.


이들의 논리는 나름 당당하다.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무명 뮤지션들에게 무대와 관객을 제공해 주니 굳이 출연료가 없더라도 본인을 알리고 싶은 이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여기서 굳이 그들이 표현하지 않은 속마음을 짐작해서 대신 말해보자면 어치파 제대로 출연료를 받을 만큼 이름 있는 이들도 아니니 너희는 홍보 기회를 얻어 좋고 나는 행사에 돈을 들이지 않고도 뮤지션을 세울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이 아니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언뜻 들으면 나름 타당한 논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본질을 보자면 단순한 유노동 무임금일 뿐이다. 어떠한 형태건 주최 측의 필요에 의해 노동이 제공되었다면 그 대가는 반드시 지불되어야 한다. 단순히 그 노동이 ‘자기가 좋아서 하는 공연’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치를 폄훼당할 이유는 없다. 특히나 음악에 있어서는 네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 네가 공연을 즐긴다면 그 대가는 굳이 없어도 되지 않느냐는 식의 인식이 꽤나 많이 퍼져 있다. 하지만 음악 공연이라고 해서 노동이 아닌 것은 아니다. 얼마 전 가수 ‘하림’ 님의 펍 공연 때의 일이다. 공연 끝자락 무렵 앵콜이 연달아 나오자 하림 님이 웃으면서 이런 멘트를 했다.


“저도 퇴근시간을 지키고 싶어요. 왜 사람들은 가수가 즐거워서 공연하니까 얼마든지 추가로 더 공연해도 된다고 생각할까요? 저 또한 음악 노동자일 뿐이고 제시간에 일을 마치고 싶은걸요.”


물론 웃으며 저 말씀을 하신 뒤에도 두어 곡의 앵콜과 즉석 신청곡까지 모두 받아주시면서 공연은 즐겁고 훈훈하게 끝이 났다. 하지만 저 말씀은 꽤나 인상 깊게 남아 노동과 그 대가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다.

음악인들이 스스로의 즐거움이나 다른 가치를 위해서 금전적 대가를 받지 않고 무대에 서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 무대가 참가할 가치가 있을 만큼 권위가 있거나, 좋은 의도로 기획되고 재능 기부가 필요한 행사 같은 것이 그렇다. 하지만 그런 범주에 들지 못하는 무대들에서조차 무보수 공연을 요구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가장 흔한 경우가 상업적 목적의 공연에서 무보수로 무명 음악인이나 버스커들을 모집하는 경우이다.


입장료를 받는 유료 공연뿐만 아니라 테마파크나 대형 카페, 음식점 같은 상업 시설에서 꾸미는 무대는 어떤 형태로든 자신들의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당연하게도 거기에 서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 노력과 능력에 따라 그 대가의 크기가 달라질 수는 있어도 대가 자체가 없을 수는 없다. 대가가 없다면 그건 경험을 쌓게 해 줄 테니 무보수로 일을 하라는 지난 시절에 흔히 있었던 노동 착취의 악습일 뿐이다. 이런 이들이 흔히 말하는 스스로를 홍보하는 기회가 된다는 논리는 그 무대가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고 정말로 홍보에 도움이 될 만한 무대일 때나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몇 년 전 유명 케이블 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최종 결선 진출자 몇 팀 이외에는 출연료가 지급되지 않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예선과 본선을 거쳐오는 그 과정에서 꽤나 많은 회차를 방송분으로 뽑고 화면에 노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는 절실한 입장의 ‘을’을 ‘갑’인 방송사가 착취하고 이용한 사례이지만 최소한 전국적 방송에 노출될 기회를 준 것으로 참가자들이 무보수를 감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정도는 할 가치는 있었다. 하지만 일개 카페나 음식점의 무대, 혹은 지역 소규모 행사에서 과연 금전적 대가를 대신할 만한 홍보의 가치가 있을지는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혹자는 아마추어들에게 기회를 주는 무대이기에 금전적 대가가 없어도 가능하지 않냐고 하지만 그러한 대부분의 무대에서도 나름의 오디션과 선별과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면 그런 논리도 미심쩍다. 무대의 퀄리티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질은 보장받고 싶고, 돈은 들이기 싫다는 심보로밖에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런 무대의 목적은 해당 테마파크나 카페, 혹은 음식점의 장사를 위한 것이지 신인가수 등용문이 아니다. 제발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모집 공고들에는 주최 측의 욕심과 태도를 비난하는 많은 댓글이 달린다. 하지만 불러만 주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신청 댓글 또한 그에 못지않게 많이 남겨지고, 그런 댓글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우울해진다. 정말로 공짜로 모집하는 이와 공짜로 공연하겠다는 이가 서로의 이해가 맞다면 그러지 못할 이유가 뭔가 싶을 수 있겠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음악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몫을, 삶의 터전을 망가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연주자에게, 가수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행사를 치르고 무대를 꾸릴 수 있는 풍토가 만연한다면 어느 누가 그들에게 출연료를 지불하겠는가.


열정페이는 아마추어 버스커들에게만 해당하는 적용되는 일이 아니다. 행사의 주최자 모두가 수준 높은 무대를 원하거나 문화발전에 관심이 있지는 않다. 그런 이들에게는 무대는 그저 행사를 채워줄 이벤트일 뿐이고, 열정페이에 응하는 일은 더 많은 좋은 음악을 만들어갈 무명 뮤지션들의 밥줄을 죄는 일이 될 수 있다.


열정페이를 원하는 모집 글에 달린 수많은 참여를 원하는 이들의 댓글을 보며 안타깝고 우울한 이유는 그들이라고 해서 이런 간단한 내용을 모르고 있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무대가 아쉽고, 자신을 알리는 일이 지난하고 힘들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래서 무작정 열정페이에 호응하는 이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그저, 음악인들의 열정을 볼모 삼아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는 뻔뻔한 이들이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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