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음악을 한다는 것은
최근에 새로 생긴 라이브 펍에서 지인인 K가 공연을 한다고 해서 들러보게 되었다. 공연을 구경한 후 뒤풀이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 K가 요즘 자신이 속한 팀의 이야기를 꺼냈다. K는 오늘 공연에는 솔로 보컬로 참여했지만 그와는 별도로 어쿠스틱 밴드의 보컬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 팀의 기타 멤버와 트러블이 있다고 했다.
“하여튼 뭐가 그리 불만이 많은지 항상 투덜거린다니까요. 아니, 자기가 싫은 장르의 음악은 아예 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뭐, 나도 트로트를 그렇게까지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페이(pay)를 받고 하는 공연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는 관객들 취향이나 주최 측 요구도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공연의 모든 곡을 트로트만 하자는 것도 아니고, 한두 곡 정도는 섞어 줄 수도 있잖아요.”
듣자 하니 행사 공연 같은 무대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한두 곡씩 섞어 넣는 트로트나 댄스 음악들이 기타 멤버인 P의 취향에는 맞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꽤나 투덜거린 모양이었다.
“그런가요. 그런데 뭐 우리가 프로도 아니고, 재미있자고 하는 음악인데 아무래도 하기 싫은 곡에는 흥미가 떨어질 수는 있지 않겠어요?”
P와는 나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기에 살짝 변호해 줄 생각으로 말을 꺼내 봤지만 K는 더욱 흥분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꽤나 쌓인 게 많았었나 보다.
“프로가 별거예요? 페이 받는 공연에 올라가면 그때는 프로지요. 안 그래요? 그리고 그렇게 싫으면 페이 공연은 안 해야지. 그런데 안 하자는 말은 또 안 해요. 그러면 연습은 해 와야 될 거 아닌가요. 합주하러 올 때도 제대로 곡 숙지도 안 하고 와서는 연습 내내 투덜거린다니까요. 뭐, 별로 듣고 싶지도 않다나? 애당초 스타일이 자기 파트 숙지하고 합주 참가하는 게 아니라 와서 합주하면서 대충 맞춰가는 스타일 이라니깐요. 다른 멤버들도 말은 안 해서 그렇지 그런 면에는 불만이에요. 몇 번이나 좀 고치라고 말해도 듣질 않네요. 아휴, 맘에 안 들어서 원....”
그러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맞은편의 J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J는 꽤 오랫동안 직장인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랑 어떻게 계속 팀을 해요? 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벌써 1년 넘게 같이 하고 있나 본데. 자기 파트 연습도 제대로 안 해 오는 건 문제 있는 거 아닌가요?”
“그래도 그 오빠 사람은 착해요. 성격도 좋고요. 실력도 나쁘진 않아요. 다만 그런 부분에서만 좀 맘에 안 드는 것뿐이지...”
갑작스러운 J의 단호한 말투에 K는 당황하며 조금 전까지 흥분하던 태도와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자기 멤버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사람 착한 거랑 뭔 상관입니까? 나 같으면 연습도 제대로 안 해오는 그런 멤버랑은 같이 음악 못할 것 같은데,”
K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아니, 그러면 그런 거 좀 안 맞는다고 짤라요? 어떻게 그래요?”
“아니, 그러면 그렇게 안 맞는데 어떻게 같이 하죠?”
되묻는 J의 눈도 황당하다는 듯 동그랗게 커지고 있었다.
한 번이라도 합주를 해 본 사람이라면 다른 이와 같이 음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게 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음악을 하다 보면 합주를 하게 되고, 팀을 꾸리게 된다. 음을 쌓아 가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동료를 모으고, 함께 음악을 만들어 가려한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이 어딘들 다 그렇겠지만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분란이 있기 마련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는 음악을 즐겁게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행복한 일이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음표들이 모이면 언제나 화음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모이는 형태에 따라서는 불협화음도 생긴다.
매우 주관적인 이야기겠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중요도에 상관없이 하나씩 열거해 보자면 첫 번째로는 팀원들의 친밀도가 좋을 것, 두 번째로는 음악적 취향이 비슷할 것, 마지막으로 실력이 있어야 될 것.
성격이나 친밀도 보다 실력을 우선해서 팀원을 모으는 경우도 그리 드물지는 않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너무 모난 사람이거나 까탈스러운 사람과 함께 하는 팀이라면 짜증 나고 지치기 십상이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어느 정도 참고 맞춰내기도 하겠지만 좋아서 하는 취미의 영역에서까지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음악적 취향이 비슷해야 한다는 말은 하고 싶은 음악적 장르가 서로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하드 한 락 사운드를 하고 싶은데 다른 멤버는 자꾸 말랑말랑한 팝 음악을 주로 하고 싶어 한다면 그 팀은 오래가기 힘들어진다. ‘최애’의 선호 장르가 같은 사람들끼리 원하는 음악을 하는 경우가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허용되는 장르가 교집합 내에 있어야 안정적으로 팀을 꾸려나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처음 얼마간은 의견을 조율하고 양보해서 해나간다고 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한다. 이른바 ‘음악적 견해 차이로 탈퇴’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의 가장 큰 문제는 의외로 ‘하고 싶은 음악을 못하는’ 때 보다 ‘하기 싫은 음악을 해야 하는’ 때에 더 많이 불거진다.
마지막 세 번째는 조금 냉정한 이야기지만 ‘실력이 있어야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력은 객관적인 어떤 경지의 실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팀에 도움이 되어주고 자신의 몫을 할 수 있느냐의 이야기다. 고만고만한 취미밴드의 영역에서 화려한 연주기술이나 끝내주는 솔로 플레이 같은 거창한 실력을 갖춰야만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각자가 가진 능력 안에서 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한계를 찾아 나가고 조금씩 더 발전해 나가도록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합주는 충분히 재미있다. 다만, 멤버 간 실력 차이가 너무 크고 그에 따라 선곡이나 합주에 제약이 자주 생긴다면 아무리 친한 사이의 팀이라 하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써 놓으니 어쩌면 너무 당연해 보이는 요건들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저 세 가지가 모두 잘 맞는 팀을 꾸리기란 사실 쉽지 않고, 많은 수의 팀들이 저 세 가지 중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정도의 문제를 여전히 끌어안고 굴러가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팀을 꾸리는 모습에서도 저 문제들의 특성이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팀을 만드는 과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편의상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눠 보자면 원래 친분이 있던 사람들과 의기투합하여 모이는 경우와 필요에 의해서 각 파트 멤버를 모집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팀원들끼리의 친밀도는 매우 높기에 결속력도 좋고 모임의 분위기는 화기애애 하지만 막상 합주를 진행하다가 두 번째나 세 번째 문제가 불거지게 되면 의외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하고 싶은 곡의 성향이 다르다거나 실력 차이가 극명하다거나 하는 부분은 단기간 내에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서로 간의 인연이 있다 보니 가급적 서로 양보하고 참아가면서 팀을 꾸려가게 된다. 앞에서 이야기한 일화에서의 K의 경우가 이런 케이스다.
사람들과의 친분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문제가 극단적으로 불거지지 않는 한 팀에서 내보내거나 하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첫 번째를 위해 두 번째와 세 번째를 어느 정도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팀은 애초에 친한 사람들끼리 모였으니 양보와 조율도 어느 정도는 잘 되는 듯 보이지만 불만과 아쉬움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니 점점 쌓여가게 된다.
필요에 의해 멤버를 모집하는 경우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이들은 애초 지향하는 장르나 팀 포지션 구성을 처음부터 어느 정도 정해놓고 사람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고, 그에 맞춰 멤버를 구성한다. 지인들의 소개로 알음알음 모집하는 경우도 있고 뮬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멤버 구인, 구직란을 즐겨 이용하기도 한다. 모집 시에 원하는 곡들의 리스트를 올려 팀의 색깔을 미리 알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에는 지원자들과 만나 오디션과 면접(이라고는 하지만 상호 오디션이고 상호 면접이다. 모으는 사람이나 지원하는 사람 모두 서로 간을 본다고 할까.)을 거치게 되고, 첫 만남에서 서로 맞지 않는다 싶으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도 같이 합주 활동을 하다 보면 친분이 쌓이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에 의해 모이는 사이다 보니 맺고 끊음이 확실한 경우가 많다. 팀을 꾸려나가다가도 두 번째나 세 번째 문제가 불거지면 조금은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갈라서게 된다. 아까운 시간을 할애해서 취미활동을 하는 바에야 이왕이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친목보다는 음악에 조금 더 방점을 두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맞지 않는 멤버와 왜 같이 계속 같이 팀을 하고 있냐고 황당해하는 J의 경우가 이런 경우이다.
두 가지의 팀 구성 방식을 모두 겪어본 나로서는 두 사람이 서로 황당해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고, 두 사람의 입장 모두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열심히 자기 멤버 흉을 보다가도 그런 걸로 어떻게 사람을 자르냐고 하는 K가 유난히 정이 많은 것도, 안 맞으면 바로 갈라서야 한다는 J가 유난히 냉정한 사람인 것도 아니다. 그들이 음악을 하고 팀을 모을 때 다른 것보다 나머지 부분을 조금, 아주 조금 더 우선순위에 놓았을 뿐이리라.
어느 입장이 맞거나 틀리거나 하지는 않는 듯하다. 어떤 조건을 우선순위에 놓느냐는 것은 결국 본인의 판단이고, 그에 따라 사람이 모이는 방법은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테니. 그저 다른 시각을 존중할 수 있는 여유와 배려만 잃지 않는다면 될 일이다. 다른 이와 함께 멋진 음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이해와 존중이 함께 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일 테니까.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같이 할 때 더 즐거운 일이 비단 음악만은 아니겠지만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그 짜릿함이 음악에서 유난히 더 즐거운 이유는 애초에 음악이라는 것이 단음 하나하나가 모여서 화음이 되고 선율이 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항로를 개척하려는 미래의 해적왕이 가장 먼저 하는 것도, 수많은 서사시의 주인공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도 동료를 만드는 것이듯, 우리도 조금 더 즐거운 음악의 항해를 떠나기 위해서는 멋진 동료들을 모으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이 비록 쉽고 순탄하지만은 않겠지만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을 믿고 미래의 동료에게 손을 뻗어보기를 바란다.
“너, 내 동료가 돼라!”
p.s) 그동안 저와 함께 팀을 해 왔던, 그리고 지금도 함께 하는 여러 팀원 분들께 모자란 저를 참아내주면서 같이 어울려주신 점에 대하여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