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프 소리 키우기 전쟁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라지?

by 다크엘

“... 날씨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한낮 기온은 30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였으나 해가 지면서 바람이 불고 기온이 조금 내려가겠습니다...”


버스킹 장소인 수성못으로 가는 차 안, 라디오에서 날씨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녁에도 덥겠구나. 장비 세팅하고 나면 땀범벅이 되겠는걸. 생수는 실었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주차장에 도착했다. 짐을 실은 카트를 끌고 오늘의 버스킹 장소인 포켓 1 무대로 향했다.


포켓 1 무대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멀리서 시끄러운 리듬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포켓 1 무대에서 조금 떨어진 포켓 2 무대의 음악소리였다. 아, 젠장. 오늘도 이웃 운이 나쁘네. 옆 무대 팀이 누구였더라. 앱을 켜서 내용을 확인했다. OO 예술봉사단. 국악과 전통가요로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기타 등등... 내가 장르에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편견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건 장르의 문제가 아니다.


“아, 오셨어요? 형. 저희도 막 도착했습니다. 그나저나 오늘도 옆 무대가 많이 시끄럽겠는걸요. 벌써부터 볼륨이 장난이 아닌데요.”

“그러게 말이다. 오늘은 발라드는 못하겠는걸?”


팀원인 J 가 난감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다. 옆 무대를 보니 현수막과 사이키 조명을 배경으로 반짝이 옷을 입은 가수가 노래방 반주에 맞춰서 트롯 한 곡을 구성지게 부르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화려한 한복을 입으신 분이 신명 나게 장구를 치고 계셨다. 옆 무대와 이곳의 거리는 약 80m 정도지만 (이 글을 쓰면서 지도 앱으로 찾아본 거리다.) 마치 무대 바로 앞에서 관람 중인 느낌을 줄 정도의 소리 크기였다. 옆 무대의 소리가 이 정도까지 들리는 데다 그 음악이 꽤나 신나는 종류라면 잔잔한 발라드와 같은 스타일의 노래는 거의 못 한다고 봐야 한다. 생각해 보라, 너의 눈 속에 별빛이 담기고 어쩌고 하면서 분위기 있는 노래를 하는데 옆에서 쿵짝거리는 리듬과 신나는 추임새가 들리고 있다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건 듣는 관객이건 과연 감정이 잡히겠는가.


“뭐 어쩌겠나.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겠지. 대진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하자. 오늘은 우리도 조용한 노래보단 시끄러운 노래로 한번 달려보지 뭐.”

“그게 될까요? 우리 앰프 출력으로는 저쪽 고막을 간지럽히지도 못할 것 같은데요? 체급이 달라요, 체급이. 어휴, 저 스피커 통 좀 보세요. 저게 몇 와트야...”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우리의 공연은 시작되었고, 그날 하루는 흥겨운 장구와 뽕짝 리듬으로 채워진 배경음악을 뚫어가면서 연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공연을 마치고 장비를 정리하던 충, 마침 무대를 체크하러 오신 구청 소속 현장 관리자분에게 푸념처럼 물어보았다.


“아니, 감독님, 저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요? 공연 스타일이야 뭐 자유라지만 앰프 출력을 저렇게까지 키우면 우리 같은 통기타 팀은 어쩌라고요.”

“허허, 안 그래도 중간에 한번 가서 소리 좀 줄이라고 주의를 줬습니다만... 그나마 저게 줄인 거예요.”

“앰프 출력 제한 같은 게 있지 않나요? 신청할 때도 앰프 와트 수 같은 거 적으라고 하던데...”

“그렇긴 한데 조금 유명무실한 점이 있지요. 출력 문제라기보단 볼륨 문제인데 좀 애매해요. 상가나 주민들에게 민원이 들어오면 규제하기는 합니다만 여기는 그래도 거주지나 상가와는 좀 떨어져 있으니 민원이 들어올 정도로 심각하지 않으면 제지하기는 좀 힘들어요. 그냥 들어보고 좀 크다 싶으면 주의를 주는 정도밖에 할 수 없어요.”



버스킹이 활발해지면서 버스킹의 모양도 여러 가지로 늘어났다. 처음에는 그저 기타와 작은 앰프(배터리로 작동되는) 하나 정도면 되었던 버스킹이 조금씩 다양해졌다. 악기의 수나 종류도 다양해지고 공연하는 방식도 다채로워졌다. 어떤 이는 건반을 들고 나오고, 어떤 이는 젬베나 까혼을, 바이올린을, 베이스를 들고 나왔다.


악기의 수가 많아지니 거기에 맞춰 마이크도 늘고, 자연스레 장비도 더 많이 필요해졌다. 버스킹용 앰프에 꽂을 수 있는 악기 수는 많아봐야 2~3 채널이었다. 그 악기 수를 넘어가 버리니 믹서도 필요해졌고, 입력 채널이 늘어나니 기존 앰프의 출력으로는 소리가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더 좋은 앰프가 필요해지는 시점이었다.


다행히 기술의 발전이 빠른 시대였다. 변해 가는 필요에 맞춘 장비의 구성이 가능해졌다. 어두운 공연장에서 큰 덩치를 자랑하던 장비들이 더 콤팩트해지고 더 저렴해졌다. 조금만 투자하면 몇백 와트 이상의 장비들도 거리로 가지고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버스킹이 점점 더 시끄러워질 수 있게 되었다.


버스킹 공연이 다양해진 것도 소리가 커지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어떤 이는 반주기에서 노래방 반주를 틀어놓고 노래를 불렀고, 다른 이들은 K-pop을 앰프에 걸어놓고 댄스를 추고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기타나 건반 등 제한된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보다 스튜디오에서 드럼세트와 오케스트라 등 풀 세션으로 녹음된 음악을 재생하는 경우가 더욱 소리가 크고 두꺼운 것은 당연했다.


버스킹을 하고 싶은 장소는 사실 다 비슷하다. 나한테 명당은 다른 버스커에게도 명당이다. 그러다 보니 버스킹 장소가 겹쳤다. 홍대 걷고 싶은 거리는 3~40 미터마다 버스킹 무대가 펼쳐졌고, 해운대 바닷가도 여기저기서 음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 소리가 옆 팀 소리에 묻히기 시작했고, 멀리 있는 관객들을 나에게 끌어오기 위해서는 조금 더 큰 소리가 필요했다. 앰프 소리 키우기 전쟁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버스킹의 성지들은 소음과 민원의 성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낯선 문화였던 버스킹이 활발해지면서 특별한 제한이 없었던 버스킹 공연들이 대부분 금지되고 지자체 주도의 허가제로 바뀌어 가게 된 가장 큰 이유 또한 소음 문제이다. 홍대를 비롯한 전국의 버스킹 명소들에서 버스킹이 활성화되면서 지자체들은 끊이지 않는 소음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일반적으로 버스킹 관련 소음 기준은 소음진동관리법에 따른 주간 65db(데시벨), 야간 45db을 적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거리의 소음 속에서 버스킹의 소음만을 측정한다는 것도 기술적으로 힘들뿐더러 모든 공연을 일일이 소음체크를 할 수도 없으니 자연스레 지자체들은 대부분의 장소에서 앰프를 사용한 버스킹을 금지시키고 특정 구역에서의 사전 허가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인디 문화의 대표적 상징과도 같았던 버스킹이 관에 종속되게 되는 이러한 흐름은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버스커들 그 자신들이 자초한 결과였다.


자율적인 버스킹이 여러 사람들에게 불편과 혼란을 주니 지자체 혹은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하게 되는 것은 불만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소음 문제가 다 해결이 되었냐 하면 또 그렇지만도 않다. 관(官)의 행정을 딱히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아무래도 공무원들이 전문가도 아니고, 인력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들이 버스킹 공연을 원활하게 통제하기는 힘들다. 그러다 보면 앞의 사례와 같이 난감한 공연 이웃을 만나게 되거나 누가 봐도 버스킹이라고 이름 붙이기 힘든 행사가 끼어들게 되기도 한다. 이왕 통제를 해야만 한다면 공연의 성격과 내용 등을 충분히 감안하고 일정을 구성하여 배치한다면야 좋겠지만 그러면 그게 지역 축제이지 더 이상 버스킹일 수는 없지 않겠나. 지자체에 그럴만한 인력과 예산도 없을 테고.


문제는 욕심이다. 내 목소리를 높이고 싶은, 내 공연을 내세우고 싶은 욕심. 좋은 공연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야 누가 뭐라냐만 목소리 큰 사람이 다 옳지 않듯이 시끄러운 공연이 좋은 공연일리는 만무하다.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문화도 공연도 취미도 다 사람 사는 일인데 나의 욕심이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어린아이도 알 법한 사실을 다들 잊어버리고 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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