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by 필제

이놈의 고양이 도도하기 짝이 없다 우아한 걸음걸이로 사뿐사뿐 걸어가다 좁은 골목길로 홱 들어가 버린다 물론 저 고양이는 방금까지 저를 쓰다듬는 손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고양이를 귀여워한 이름 없는 자는 존재함이 분명했으나 드러나지 않았다 마치 투명한 벽인 마냥 있었다

이른바 ‘엑스트라’는 세상밖에서 서식한다 그들은 세상을 굴러가는데 이른바 힘쓰고 있으며 존재함이 분명 하나 그 존재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심지어 주인공들도 그들의 존재를 모른다

‘어..?’

분명 그럴 텐데..

눈앞의 남자는 마치 자신을 의식하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필립이라 부르도록 하지”

‘.... 뭘? 무슨 이야기지?’

첫 말에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남자는 벽면을 쳐다본 채 대화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눈치챘다다 더불어 방금 한 말은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는 것도 말이다

“시간이 없으니 요약은 생략하도록 하고, 난 자네가 필요해 그러니 날 도와 주연이 될 텐가?”

‘필요 없다’

“흠? 원하는 조건이라도? 이상하군 엑스트라들은 죄다 이쪽 세계를 원한다고 들었는데”

‘내게는 그럴만한 동기가 없어 다른 이를 찾아봐’

“그건 싫은데 난 욕심 없는 자를 원하거든, 그러니까 말해봐 뭐든, 이루어 줄 테니까”

필립은 당당한 그 모습에 기가 차다

과거를 회상한 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과거에도 이런 느낌을 느낀 적이 있었다.

모르는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안착한다

‘말해봐, 전부 들어줄 테니까 그러니까......’

목소리가 바뀐다 진 주인공 레이몬드 백작과의 첫 만남 때로

“뭐든 이루어 줄 테니까 그곳으로 와”

또다시 자신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난 안가’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 목소리에 무게감이 실린 듯 마치 엑스트라가 아니라 사람같이 들렸다 이 낯설고도 아득히 먼 목소리가 자신의 것이라고 인식한 것부터가 의외였다

그러고 보니 이런 기억이... 있었나.........................?

침착한 필립이 이성을 잃고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 뭘 하고 있는 거야”

머릿속이 심각하게 뒤틀렸다 그도 그럴게 분명 한 공간 안에 있음에도 여러 공간을 번갈아 오가는 듯이 정신없고 아찔하여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신 차려! 어서 절친한 친구를 맞이하러 가란 말이야..!!’

“여기서... 더 뭘 하라고...!”

“어머 괜찮아요? 땀이...”

“가보겠습니다”

도망치듯 빠져나온 뒤에도 머릿속의 고약한 성질은 윽박지르고 있었다

‘신경 쓰고싶않으면 하지 마! 그냥 놓아 버리라고!! 어차피 원하던 인생도 아니잖아!!’

‘그래 놓아버려’

“놓아버린다라....” 그거야말로 달콤한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정신없는 상황에 정신을 놓아버린다면 한줄기 방심이라도 당한다면 저 목소리에 홀려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을지 모른다 필립은 정신을 부여잡았다

‘처음부터 주연인생을 바란 것도 아니잖아! 그럴 바엔 놓아버리라고 너한텐 쉽잖아 이대로 돌아가도 배신자취급만 받을 텐데..’

‘돌아갈 집도 없지? 반겨줄 사람도 없지? 사실은 이대로 남의 자리 나 차지하며 있고 싶은 거 아니야? 사실은 너도 여기에 머물고 싶은 거잖아...’

“맞아 사실 그러고 싶어 도망치고 싶어 전부 놓아버리고 싶다”

한탄석인 말에 회심의 기회를 엿본 것인지 녀석의 목소리 톤이 밝아졌다

‘그러면...’

“근데 실제로 그러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도망치지 않아 그리고 난 그가 돌아올 것이라고..”

‘네가 뭘 알아? 영영 안 돌아올지 그럼 전부 네 거잖아?’

“나의 것이라..”

필립은 허탈하게 웃었다

“나의 것은 처음부터 없었어, 이곳에 들어오는 것마저 허용범위를 넘어섰지. 힘듦이 낯선 곳에 머물게 만드는 것은 맞지만 이곳의 어느 것도 땀이 나지 않아 이상하지 그곳의 모두들 이곳에 오고 싶어 했을 텐데”

‘그건 네가 이미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야’

“이 세상은 말이야 내겐 허용되지 않아 그러니 난 의무만 마치고 돌아간다”

‘네가 사라진다고 슬퍼할 사란들이 없을까? 널 기억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뿐이겠지”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아 여기 네가 찾던 것들이 모두 있어 봐!’

“내가 뭘 원했는데?”

‘배부르게 먹고도 남을 만큼 호화스러운 음식,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집, 그리고 외톨이가 아닌 너’

‘봐봐 듣고 보니 주인공들의 삷을바라고 있었잖아? 이곳을 원하고 있었잖아 안 그래! “

”이 봐 어디까지나 참견 마 “

’ 원하는 걸 이루어줄게 내가 도와줄게 그러니까...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 당장 정신을 놓아!! 놓으란 말이다!!!! 캐릭터라면 캐릭터답게!!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도록 놓으란 말이야!!!!!!!‘

마지막은 괴물의 포효에 가까웠다

”필립, 많이 고생하고 있네 “

순간 익숙지 않은 아니 들릴 리 없는 이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은 착가이었을까?

”나 보고 싶었어? “

분명 반가워야 하는 게 이상하리만치 반갑지 않았다

오렌지 색이 아닌 칠흑 같은 까만 머리칼이 허공에 흩어진다

레이몬드 백작, 진짜 남주가 돌아왔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