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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시루 같았던 교실

by 새강산 Mar 13. 2025

 국민학교 시절, 우리 반은 60명이 넘는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교실은 늘 시끌벅적했고, 책상과 의자는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모두들 학교에 입학할 때는 새로운 교실과 친구들을 만나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 수많은 아이들 속에서 서로의 이름을 외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교실 한가운데에 앉으면 뒤쪽 아이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교실은 넓게 느껴졌고, 창가에 앉은 아이들은 햇살이 드리우는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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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은 언제나 교탁 앞 정중앙에 서 계셨다. 교탁과 제일 앞쪽의 책상은 거의 붙어 있었다. 그만큼 교실에 책상이 많았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크게 울렸지만, 뒷줄로 갈수록 선생님의 목소리는 울림으로 퍼져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덕에 선생님의 말씀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흐려지곤 했다. 손 들어 발표하고 싶어도 선생님의 눈에 띄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반은 일어서서 '저요 저요'라고 크게 소리치곤 했다. 


 친구들과 말 한마디 나누기조차 선생님의 눈치를 보느라 조심스러운 분위기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의 시끄러운 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쉬는 시간이 되면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장난치고 웃는 소리로 가득 찼고, 복도에는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떠들썩했다.


 매일 아침 교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책상과 의자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 자리로 향했다. 자리를 정하는 날은 과연 규칙이 무엇인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부분 키 순서대로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담임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자리 배정의 룰은 달랐다. 또한, 한 달에 한 번씩 자리를 옮겨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도 했다. 앞자리에 앉은 날에는 선생님의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어 긴장되었고, 뒷자리 날에는 수업 내용을 놓칠까 걱정됐다. 하지만 선생님은 늘 신기하게도 모든 아이를 골고루 챙기려고 애쓰셨다. 가끔 한 명씩 이름을 불러 질문을 던지실 때는 모를 때의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운동장에서 노는 시간은 모두가 기다리던 순간이다. 넓은 운동장에 모인 우리는 작은 무리들로 나뉘며 축구, 피구, 술래잡기를 하곤 했다. 60명이 넘는 인원이지만, 운동장에서는 그리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단체로 운동장 한 바퀴를 뛰어서 돌고, 기초 운동도 하고, 단체 운동을 하기도 한다. 남자는 주로 축구를 여자는 주로 피구를 했다. 축구 골대 앞에서 공을 기다리던 순간이나, 피구에서 공을 피할 때의 짜릿함은 그때만의 특별한 기억이다.


 반면, 교실 안에서의 경쟁은 언제나 치열했다. 칠판 앞에서 진행되던 각종 퀴즈 대회나 발표를 할 때는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경쟁자가 된다. 그 속에서 두드러지게 빛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숙제를 깜빡 잊고 제출하지 못해 선생님의 꾸중을 들은 날은 창피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서 집에 돌아와 울었던 기억도 난다. 


 이렇듯 많은 친구들 속에서 나는 그냥 하나의 점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점들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중요한 한 조각이었으리라. 60명이 넘는 교실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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