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헤라클레이토스-
그때는 그것이 흔들림 없는 자명한 사실이었는데 왜 지금은 아닐까. 똑바로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왜 돌아보면 정신없이 구부러진 길인지. “아! 아까는 분명히 맞았거든요? 근데 이게 왜 이러지..” 돌아서면 그새를 못 참고 변해있는 음정. 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은 결국 모든 변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피아노를 왜 조율할까요? 변하기 때문입니다.
첫날 천재소리를 듣고 기세가 등등해졌다.
물론 머지않아 자빠지겠지라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데이터로 봤을 때 뻔할 뻔 자였다.
인생은 고난이고 고통이다. 한 번에 쉽게 되는 일은 좀처럼 아니, 그런 일은 없었다. 적어도 내 삶에선.
둘째 날도 어김없이 동음 조율을 시작한다. 어제처럼 쉽게.
어제는 한 옥타브를 해봤지만, 오늘은 두 옥타브를 도전해 본다.
아, 옥타브가 올라갈수록 음정도 변하고 높아지니 듣고 판단해야 할 소리의 난이도도 올라가는구나.
그래도 여기까진 문제없다.
조율핀을 돌려본다. '틱, 틱, 틱' 어 뭐야? 이거 핀이 틱틱틱 금고함을 돌리는 것처럼 단계별로 딸깍거리잖아?
1단, 2단, 3단 너무 쉽네~ 3단이 원하는 정피치라면 3단에 걸리게 하면 되잖아! 다음핀으로 넘어가자. 어? 너무 부드러운 노브야.. 틱틱 걸리지가 않아..
아.. 피아노의 상태, 핀의 상태가 설마 천차만별인가. 230개의 핀.. 모두 다 성격이 있는 것인가.
어떤 놈은 고집이 세, 어떤 놈은 너무나 융통성이 있어, 어떤 놈은 날아다녀.
여기서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사실은 앞으로 있을 작업의 모든 것이 변수 투성이 일 것이다라는 것.
'이래서 어렵다는 것이구나' '이거 손맛 죽이네' '얘는 소리가 왜 이래'
'너무 미세하게 음이 움직여서 자꾸 목표치를 넘어가버려!'
자~ 다했으니 한번 들어볼까?
됴~
뢰~
뮈~
패~
설~
롸~
스~
뒈~
개판
아니?! 분명히 정확히 맞췄다고요.
내가 자신을 너무 과신했나? 누구보다 빠른 스피드로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게 문제란다)
“섣부른 확신을 일삼는 이를 기다리는 미래는 오로지 번복뿐이다“라는 말이 있죠.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인데요. 처음 들었다고요? 네. 제가 만든 말입니다.
나는 분명히 '정'한 음정을 만들고 넘어왔는데.
"사랑이, 아니 핀이 어떻게 변하니!"
내가 못 듣는 거라고? 그럴 리가 없지. 지금 이소리가 '정'하지 못하다는 걸 알잖아.
집에 돌아와서도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으로 매일 검색한다.
여러 조율사들의 블로그들을 검색하며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무엇인지 분석을 시도.
'안정성' '핀스톱'이라는 말이 나에게 강렬하게 들어왔다. (뭔지는 몰라도)
정확히 정리되어 있는 글은 찾지 못했지만 한마디로
내가 맞춰 놓은 이 핀을 안전하게, 내가 멈추고자 했던 그곳에 안정성 있게 고정되게 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아니 그냥 돌려놓으면 고정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니요.
물론 그 기술을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인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소위 짬이라는 것의 세계인 느낌이었다.
이론서에는 강한 '테스트블로우(피치의 안정을 위해 건반을 세게 타현하는 것)를 통해서 핀을 안정시킨다' 정도의 말이 나와있다.
아 그걸론 부족한데요.
가슴이 답답할 때 우리는 곧잘 미신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학급에서 키우던 칭찬양파를 떠올려 본다.
핀에게 말을 걸어볼까? "움직이지 말고 여기에 예쁘게 있어줘~"
오!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꿈에서!)
그래, 지금은 머리로 이해하려 하지 말자.
무한대로 동음 조율을 계속해보자.
100번 조율해서 몇 개의 오류가 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자.
이론만 뒤지다가는 핀들을 불러놓고 하는 탁상공론일 뿐이다.
핀을 돌리자. 돌리고, 또 돌리자.
빨리도 돌려보고, 천천히도 돌려보자.
기준보다 높이도 돌려보고 정확히도 돌려보고 모자라게도 돌려보자.
핀과 친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