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여름 동안 끊어먹은 피아노 현의 개수입니다.
직항으론 불가능한 거리를 경유 없이 가려고 했습니다. ‘인생에 지름길은 없다’ 따위의 격언을 질리게도 많이 듣고 살았죠.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이 끊어낸 숫자입니다. 평균 80킬로그램의 장력의 현이 끊어지는 소리는 살짝 과장해서 폭탄 터지는 소리, 혹은 총소리와 같습니다.
확실히,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지요. 그걸 꼭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하는 인간입니다.
이 이야기는 지루한 이야기입니다. 매일 같은 작업의 반복을 다루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세상에 지루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등하교를 반복하는 학생, 출퇴근을 반복하는 직장인, 오늘은 뭘 해야 하나 고민하는 백수.
매일 새로운 이벤트가 발생하는 인생은 없.. 다고 하기엔 그런 인생을 살아본 적도 없고 살기도 싫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게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는 걸지도 모르죠.
펑!!!
그러나 나에겐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줄이 터져나간다.
싱글벙글 해머를 돌리다 피아노 줄이 터져나가는 총성을 듣는 순간, 전설의 묘약을 만들다 폭탄 맞은 마녀처럼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3초간 정적... 까마귀가 "깍~" 하고 날아가고 세상 가장 겸손한 인간이 된다.
벽에 걸린 다른 사람들의 실패의 흔적(끊어진 피아노 현)을 지그시 바라보며, 이곳에서 총에 맞아 죽어간 영혼들을 기리고.. 아니, 아닙니다.
몇 번이나 줄을 끊어내는 나.
왜 다른 방 사람들에게선 '줄을 끊었어요!' 라는 무용담을 듣지 못하는 건가? 왜 나만 줄을 끊게 되는 것인가?
역시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알고 보니 나의 몰래카메라였던 것인가?
사실 줄이 끊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1. 튜닝핀을 많이 돌려서
2. 튜닝핀을 빨리 돌려서
3. 누군가 나에게 앙심을 품고 현에 수상한 짓을.. (농담입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 가기 위해선 요기에 먼저 가야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기 위해서 일단 대전, 대구를 찍어야 한다는 말.
한 번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갈 수가 없다는 말이다.
조율사 A와의 기억을 소환한다.
조율사 A : “이게 뭔지 알아?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서 1차적으로 이렇게 일단 다 ~ 돌려버리는 거야! 이렇게 해도 음은 올라가지 않아! 이렇게 올려도 또 떨어진다고!” -02화 조율사 A의 히스테리 #1 中-
1차라는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왜 많이 떨어진 음을 한 번에 올릴 수가 없을까? (사실 그 '많이' 라는 게 불과 1~2cm입니다)
조금씩 줄을 늘려서 충분히 스트레치가 된 상태여야 원하는 곳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피치가 많이 떨어진 피아노일수록 여러 차례 텀을 두고 조금씩 현을 늘려야 하는 것이다.
차분하게 천천히 여유를 갖고 조금씩.
'지름길은 없다' 라는 생각으로 튜닝핀을 돌려보자.
"하지만 답답해.. 이론은 이론일 뿐이야.. 현실과 이론은 달라! 그런 속도로 어느 세월에.. 몰라! 그냥 돌려!"
펑!!!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꾸준하고 부지런히, 착실하게 몰두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했는데.. 보다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묘수가 없을까?" 하는 생각들을 자주 하곤 했다.
그리고 엄청난 묘수를 떠올린다.
"그래 이거다! 방법을 알아냈다! 가보자!"
그러나 거북이는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머리 굴릴 시간에 꾸준하게 움직이는 것.
적어도 지금 이 일에선, 이 시점에선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