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화만사성 Oct 27. 2024

아버님 말씀이 유언이 안 되면, 증여로 볼 수 있나요?

[가화만사성] 이혼·상속 전문 변호사 상속법 상담일지 #1

[가화만사성] 이혼·상속 전문 변호사 상속법 상담일지 #1


박상홍 변호사

법무법인(유) 로고스 가사/상속팀


아버님께서 생전에 남기신 말씀을 녹화해 둔 것이 있습니다. 나중에 이것을 공증하려고 알아보니 유언은 반드시 특정 방식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며 유언이 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아버님이 생전에 저에게 재산을 증여하신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인가요?


장남이라는 이름은 때로는 축복이자 때로는 무거운 짐이 됩니다. 6남매의 장남인 A씨는 어린 시절부터 그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자랐습니다. 집안의 식탁에서 고기 한 점이 더해질 때마다, 제사상 앞에서 아버님의 눈길이 머물 때마다, 그는 그 기대의 무게를 조금씩 더 실감했습니다. 같은 식탁에 앉은 누나들은 구박을 받기 일쑤였지만, A 씨에게만큼은 "우리 가문을 이어갈 아이"라는 말이 늘 그의 곁을 따라다녔습니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A씨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 마침내 유명 공과대학의 교수직에 올랐습니다. 멀리 타국에서 가정을 꾸렸지만, 그의 마음속 나침반은 늘 부모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기쁜 일,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제일 먼저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고, 명절이면 어김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A씨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90세가 되도록 정정하게 테니스와 와인을 즐기시던 아버님은 2021년 봄, 갑작스레 건강이 악화되셨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평소 지병이었던 고혈압과 당뇨가 급격히 심해져 입원해서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상황에, B씨와 누나들이 아버님의 병간호를 도맡았지만, 아버님의 입에서는 늘 A씨의 이름만이 맴돌았습니다. 아버님이 A씨만을 찾을 때마다, 누나들의 한숨 섞인 볼멘소리가 병실 밖에서 들려왔습니다. "재산 한 푼 받지 못할 텐데 우리가 왜 이러고 있나..."


그때, 아버님의 소식을 들은 A씨가 마침 다가온 안식년을 이용해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와 아버님의 곁을 지켰습니다. A씨가 지극정성으로 아버님을 간호하던 2021년 12월, 한파가 몰아치던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간 의식 없이 누워계시던 아버님이 문득 눈을 뜨셨습니다. 침대 곁을 지키고 있던 A씨를 발견한 아버님은 희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내가 해를 넘기지는 못할 것 같구나. 다른 애들은 어디 있느냐..."


A씨는 급히 B씨와 다른 누이들에게 연락을 돌렸지만, 다들 바쁘다며 나중에 아버님의 말씀을 전해 달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하루 종일 기다리시던 아버님은 결국 A씨에게만 마지막 말씀을 남기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아버님이 입을 떼시자마자 A씨는, 메모지를 찾을 새도 없었기에 휴대폰을 꺼내 녹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아버님께서 "충북 충주시의 선산과 전답 2,000평, 서울 역세권의 상가 건물을 A씨와 B씨가 절반씩 나누어 갖고, 누나들에게는 각각 3,000만 원을 주는 것을 유언으로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A씨의 휴대폰에 저장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A씨는 ‘그렇게 상속을 받겠다’는 답변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버님은 마지막으로 “그럼 이제 다 된 것이지?”라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말이 없어지셨습니다.


아버님은 그렇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영면에 드셨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의 장례를 치르며 A씨로부터 동영상 파일을 확인한 다른 누이들은 요즘 같은 시대에 동영상으로 녹화된 유언을 인정할 수 없고, 남자들에게만 재산을 몰아주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B씨마저 놀랍게도 누나들의 편에 서게 되면서, A씨는 골치가 아플 것만 같아 일단 장례식을 잘 끝내고 이야기를 다시 해 보자고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A씨가 아버님의 재산 관계를 확인해 보니 이미 누이들이 자신들의 법정상속분만큼 지분등기를 마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A씨는, 동영상으로 말씀을 녹음해 둔 것이 있는데도 유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지, 그리고 유언이 안 된다면 아버님의 말씀을 녹화한 것을 증거로 하여 생전에 자신에게 증여하신 것이 아닐지에 대해 상담받고자 가화만사성 팀을 방문하였습니다.


[의뢰인의 문의 사항]

유언의 방식에 있어 주의할 사항이 무엇인가요

아버님의 생전 말씀이 유증이 아니라고 한다면, 사전에 증여하신 것으로 볼 수는 없나요


[박상홍 변호사의 솔루션]

Q1) 유언의 방식에 있어 주의할 사항이 무엇인가요


A1) 유언은 민법이 정한 방식에 따르지 아니하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습니다(이른바 '유언의 요식성', 민법 제1060조)이렇게 규정하고 있는 취지는, 유언이 유언자의 진의인지 아닌지, 유언이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지 등 유언의 진위를 명확히 하여 피상속인의 사망 이후 분쟁과 혼란을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민법이 정하고 있는 유언의 방식을 살펴 보면, 1) 자필증서, 2) 녹음, 3) 공정증서, 4) 비밀증서, 5) 구수증서의 5가지가 있습니다(민법 제1065조).


1)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직접 작성하여 날인까지 마쳐야 합니다(민법 제1066조 제1항). 따라서, 유언자의 필적을 알 수 없는, 다른 사람에게 받아쓰도록 한 증서나 타자기·컴퓨터로 작성한 것은 자필증서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대법원 1998. 6. 12. 선고 97다38510 판결).


2) 녹음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자신의 육성으로 유언의 취지와 그 성명, 연월일을 구술하여 녹음하고, 증인이 이에 참여하여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해야 합니다(민법 제1067조). 녹음 외에 영상녹화물이라도 무방하나, 적어도 1인 이상의 증인이 요구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3)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증인 2인이 참여한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고, 공증인이 이를 필기·낭독하여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후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여야 합니다(민법 제1068조).


이는 유언자의 구수(口授), 즉 유언자가 직접 말을 하여 전달하는 행위가 반드시 있어야 하므로, 반혼수상태에서 공증인이 묻는 말에 끄덕거리는 정도로는 그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대법원 1996. 4. 23. 선고 95다34514 판결 등).


하지만, 공증인이 유언자의 의사에 따라 유언의 취지를 작성하고 그 서면에 따라 유언자에게 질문을 하여 유언자의 진의를 확인한 다음 유언자에게 필기된 서면을 낭독하여 주었고, 유언자가 그 취지를 정확히 이해할 의사식별능력이 있고, 유언의 내용이나 유언 경위에 비추어 유언 자체가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는 '구수'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08. 8. 11. 선고 2008다1712 판결 등).


4)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필자의 성명을 기입한 증서를 엄봉날인하고, 자기의 유언서임을 표시한 후 그 표면에 제출연월일을 기입하고, 유언자와 증인이 각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하는 방식에 의한 유언을 말합니다(민법 제1069조 제1항). 이때 유언봉서는 그 표면에 기재된 날부터 5일 내에 공증인 또는 법원서기에게 제출하여 그 봉인상에 확정일자인을 받아야 합니다(민법 제1069조 제2항).


5)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은 질병 기타 급박한 사유로 인하여 다른 유언방식을 이용할 수 없는 때에 한하여 이용할 수 있는 유언방식입니다(민법 제1070조). 따라서, 그 증인 또는 상속에 따른 이해관계인은 급박한 사유의 종료한 날로부터 7일 내에 법원에 검인을 신청하여야 합니다(민법 제1070조 제2항).


이 사안에서, A씨가 아버님의 말씀을 녹화한 것은, A씨 외 다른 증인이 참여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녹음에 의한 유언'이라 할 수 없고,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라고 볼만한 급박한 사유가 인정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검인 신청이 이루어지지도 않았으므로, 효력 있는 유언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Q2) 아버님의 생전 말씀이 유증이 아니라고 한다면, 사전에 증여하신 것으로 볼 수는 없나요


A2) 유언으로 재산을 상속받는 것을 유증을 받았다고 표현합니다. 즉, 유증은 유언으로 수증자에게 일정한 재산을 무상으로 주기로 하는 행위로써, 상대방 없는 단독행위에 해당합니다. 한편, 생전에 증여계약을 체결해 두고 그 효력이 증여자의 사망 시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정하는 것을 사인증여라고 합니다.


사인증여는 증여자가 생전에 무상으로 재산의 수여를 약속하고 증여자의 사망으로 그 약속의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계약의 일종으로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에 청약과 승낙에 의한 의사합치가 있어야 하는 점에서 단독행위인 유증과 구별됩니다(대법원 2001. 9. 14. 선고 2000다66430, 66447 판결 등 참조). 엄밀하게 '계약'에 해당하므로,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에 청약과 승낙에 의한 의사합치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유언자가 자신의 상속인인 여러 명의 자녀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내용의 유언을 하였으나 유언의 방식에 관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유언의 효력이 부정되는 경우, 유언을 하는 자리에 동석하였던 일부 자녀와 사이에서만 ‘청약’과 ‘승낙’이 있다고 보아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는 유언 현장에 입회하였다는 점을 사인증여로서의 승낙을 인정하는 근거로 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효력을 전환하는 것을 쉽게 인정한다면, 자신의 재산을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모두 배분하고자 하는 망인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고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나머지 상속인들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는 결과가 초래될 우려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유언자인 망인과 일부 상속인인 원고 사이에서만 사인증여로서의 효력을 인정하여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그와 같은 효력을 인정하는 판단에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대법원 2023. 9. 27. 선고 2022다302237 판결).


A씨의 경우에는, 동영상 파일에 의하더라도, 아버님이 유언 내용을 읽다가 “그럼 이제 다 된 것이지?”라고 자문하였을 뿐, A씨가 답변을 하는 등 아버님의 말씀을 승낙했다고 볼 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게다가, '유언'이 효력이 없게 되는 경우 다른 자녀들과 무관하게 A씨에 대해서만은 자신의 구술대로 재산을 분배해 주겠다는 의사를 아버님이 확실히 표명하였다고 볼 다른 증거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안타깝지만 A씨의 경우, 유언 또는 사인증여를 주장하여 동영상에 녹음된 대로 상속재산을 소유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전 14화 어머니의 후견인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