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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라해 Dec 20. 2024

내겐 이미 멋진 아빠인걸

내 안의 슬픔과 화해하기


"민창아 그 간사하는 거 꼭 해야 하는 거겠지..?"

"엄마 어제 이야기 다 했잖아 왜요?"

"나는 그냥, 민창이 졸업하고 너만 챙기는 쉼이 있었으면 좋겠어서.. 그래 알았어 엄만 기도로 응원할게"

"엄마, 즐겁게 할게요 너무 걱정 말아요. 고마워요 엄마"

"그래~ 엄마 다녀올게"


어젯밤,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밥을 먹으며 긴 시간을 이야기했다. 내가 스스로 슬픔을 마주하는 게 어렵다고 말한 이후로, 엄마는 많이 걱정하셨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자신이 어릴 적 나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지 못했다고 미안하다며 사과하셨다. 엄마의 말을 들으며,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나의 슬픔을 마주하는 작업이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로 연결되지 않기를 바랐던 내 욕심이, 엄마의 용서와 충돌했기 때문이다. 욕심과 용서가 만들어낸 파도가 내 마음에 큰 흔적을 남기며, 나는 또다시 심해로 내려갔다.


"민창아, 아빠랑 이 이야기 해보는 건 어때?"
"엄마, 나는 그냥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한국에서 이런 부자 관계가 아닌 경우가 얼마나 있겠어."
"그렇지. 하지만 네가 받은 상처를 위로할 사람은 결국 그 상처를 준 아빠일 거야. 아빠랑 나도 평생 네 곁에 있는 건 아니잖니. 나중에 한으로 남기지 말고 풀어야 해."


엄마의 말이 이해됐고, 공감도 갔다. 하지만 이미 아빠는 내게 충분히 멋진 사람이었다. 나를 인정하지 않고 늘 판단의 대상으로만 보던 아빠는 이제 없었다. 지금은 친구 같으면서도 늘 나를 응원해 주는 아빠만 남았다. 군대를 전역한 후, 한동안 아빠가 내게 사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나를 왜 그렇게 엄하게 키웠는지, 왜 인정하지 않았는지, 왜 늘 부족한 아들로만 보았는지... 그런 생각들을 담아 용서를 구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용산에서 동인천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퇴근 시간이라 사람이 많아 서서 가고 있었는데, 부천쯤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때, 같은 칸에서 서 있던 아빠가 보였다. 싸구려 중국산 무선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듣고 있는 아빠를 보며,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실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아빠한테도 아빠가 필요했을 텐데.’


아빠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일찍 겪으셨다. 그래서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가끔씩 아빠가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때면, 할아버지가 굉장히 엄격하셨고 특히 고모와는 다르게 아빠에게 엄했었다고 한다. 아빠도 처음으로 아들을 키우는 일이 두려웠을 것이다. 엄한 아버지의 모습만 보고 자란 아빠에게는 아버지로서의 새로운 모습이 쉽지 않았겠지. 아들이 태어났을 때 긴장도 많이 했을 거고, 아들에게 악역을 자처할 마음의 준비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여리고 섬세한 아들이었던 나는 아빠를 더 힘들게 했겠지.


"아빠!"
"어? 뭐야, 아들이랑 같은 칸에 있었네?"
"여기 앉으세요. 자리 생겼어요."
"그래그래. 아이고, 무거운 가방아."


내 가방이 무겁다고 누군가 이야기할 때마다 ‘괜찮아요’라고 말했던 이유는, 어쩌면 아빠가 짊어졌던 가방의 무게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빠와 긴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서로 이어폰을 끼고 나는 노래를 들었고, 아빠는 영상을 봤다. 하지만 대화가 없어도 아빠의 하루가 보였다. 가족을 위해 평생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성격을 바꾼 아빠. 그 모습만으로도 아빠는 내게 이미 멋진 사람이다. 사과를 듣고 싶었던 내 바람은 이미 사라졌다. 이제는 사과보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 내 모습을 마주했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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