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 안 할 결심
우리는 염색 부부다. 아니, 정확히는 흰머리 부부다.
둘 다 30대 중반부터 흰머리가 급속도로 늘기 시작해 10년째 무한 뿌염의 굴레 속에 살고 있다. 내 흰머리가 본격적으로 번지기 시작한 건 둘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어머, 흰머리가 이렇게 많았어요?” 사무실에서 내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옆 팀 팀장님이 말했다.
“네? 제가요?” 그럴 리 없다며 거울을 들어 정수리를 비춰봤다. 하얗다. 창밖은 화창한 초여름인데, 내 머리엔 서리가 내려있다. 믿기 힘든 광경에 이마에 석 삼자를 그리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가르마길에 하얀 섬처럼 모인 흰머리 군락이 또렷이 보였다. 그동안 한 두가닥 보이던 흰머리는 아낌없이 뽑아왔건만 이렇게 안 보이는 곳에 모여 자라고 있었을 줄이아. 그날부터 임신 기간 내내 흰머리와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핀도 꽂아보고, 가르마를 바꿔보고, 머리띠까지 동원해 가렸지만,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내 흰머리만 쳐다보는 것 같아 신경이 곤두섰다.
둘째를 낳고도 바로 염색은 할 수 없었다. 완모 중이었기에 혹시 독한 염색약이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걱정스러웠다. 모성애가 내 미적 욕망을 눌렀다. 그렇게 버티고 또 버텼다. 하지만 나의 결심은 큰아이 유치원 입학식 전날, 무너지고 말았다. 허연 정수리로 아이의 중요한 날에 참석할 순 없지 않은가. 결국, 둘째 출산 6개월 만에 나는 새치 염색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내 나이 서른다섯이었다.
뿌리 염색을 하고 나면 5년은 젊어진 기분이다. 휑했던 두피는 채워지고, 푸석했던 머릿결도 한결 정리된 느낌. 아, 상쾌하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조금 예뻐 보이는 것도 같다. 그런데 이 뿌듯함과 기쁨은 너무나 짧다. 12시가 땡 하면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듯, 뿌리 염색 마법의 유통기한은 겨우 2주. 모근부터 반짝이는 흰머리가 다시 고개를 든다. 손가락 반 마디만큼 자라난 흰머리가 내게 속삭이는 것 같다.
“또 왔지? 나 없인 못 살잖아.”
10년 동안 나의 흰머리 가리기 기술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흑채 쿠션, 마스카라형 염색 틴트, 액상형 새치 커버제 등 첨단 아이템은 모두 장착 완료다.
“누나가 신경 쓰는 것 같아서.”
동생이 일본 출장길에 사다 준 휴대용 새치 커버템은 내 비밀 병기다. 헤어밴드와 모자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사람들은 내가 멋 내기에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흰머리 가리기에 진심일 뿐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가리고, 숨기며 살아야 할까? 흰머리가 죄도 아닌데. 두피가 점점 민감해지고, 염색 후엔 머릿결이 푸석해지는 게 느껴진다. “혹시 이게 다 염색약 때문인가?” 싶어 지지만,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뿌염 예약을 누르고 만다. 사실 머릿결이 상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악성 곱슬. 그렇다. 신은 내게 흰머리 보다 먼저 악성 곱슬을 주셨다. 머리 길이가 짧아질수록 심하게 구불거리고 방방 뜨는 곱슬머리 때문에 중, 고등학교 시절 단발머리 면제권을 받았을 정도였다. 대학생 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매직파마'. 그 구원의 손길을 경험한 이후 나는 20년 넘게 년에 1~2회 매직 파마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염색과 매직, 둘 중 하나라도 포기해야 내 머리카락이 좀 더 오래 버텨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장기 염색자의 고충은 머릿결만이 아니다. 경제적 부담도 결코 가볍지 않다. 적립금을 쌓아가며 회원권으로 버티지만, 흰머리 자라는 속도가 적립금 소진 속도를 뛰어넘는다.
어느날 적립금 소진 완료 문자를 읽다 문득 신랑에게 물었다.
“여보, 염색비 아껴서 우리 한우나 사먹을까?”
“마트 소고기? 아니, 그 비싸고 유명한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 코스 요리도 몇 번 먹겠어.”
그 말을 듣고도 신랑은 꼬박꼬박 염색 약속을 잡는다. 하긴 당신이 머리띠나 모자를 쓰고 출근할 순 없으니까. 당신도 고생이 많네.
슬슬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염색이냐, 소고기냐!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흰머리 시니어 모델도 패션쇼에 서는 세상이다. 몇 년 전부터 서서히 불고 있는 '고잉 그레이'의 영향으로 염색보다는 자연스러운 은발머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나도 고잉 그레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은 결심으로 거울 앞에 서본다.
"아.........................."
이제는 정수리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이븐하게 흰머리가 자라난 내 모습이 보인다. 짙은 갈색 머리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하얀 띠. 그것은 정녕 뿌염을 향한 뫼비우스의 띠란 말인가. 결코 끝나지 않을 무한 반복의 길임을 알면서도 나는 아직 그곳에서 내려올 결심을 하지 못한다.
내일은 7년 만에 반가운 친구와 만나는 날이다. 백발 인증으로 친구를 놀라게 할 순 없지. 옷장에서 니트 베레모를 꺼낸다. 그래, 내일은 너다. 염색 안 할 결심? 그런 건 다음 생에 하기로 하자. 나는 아직, 진짜 내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뿌리 염색의 뫼비우스 띠 위에서 계속 걸어가리라. 외모에 덜 민감해졌다는 40대 아줌마지만, 아직은 소고기보다 검은 머리가 더 소중한가 보다.
인스타그램 속 멋진 고잉 그레이 그녀들을 슬쩍 곁눈질로 본다. 은발을 편안히 받아들인 그녀들은 왠지 더 여유롭고 성숙해 보인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쿨할 수 있을까? 지금은 아직 용기가 없지만, 중학생인 둘째가 성인이 될 즈음엔 나도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흰머리를 볼 때마다 “엄마, 할머니 된 거야?”라며 속상해하는 막내야, 너도 스무 살이 되면 엄마의 흰머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그땐 엄마도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또 누가 아는가.
그때가 되면, 정말 뿌염 대신 소고기를 선택할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