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쓰게하는 ’함께‘의 마법에 대하여
“얼쑤!”
“그렇지!”
“잘한다!”
처음 보러 간 판소리 공연에서 제일 많이 들은 ‘소리’다. 이것은 무대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객석 곳곳에서 팝콘처럼 터져 나온 신명 나는 감탄사였다 이 말이여.(정년이 말투로다가 읊어봤지라) 객석에 자리 잡은 추임새의 무림고수들은 메트로놈 같은 박자 감각을 뽐내며 적재적소에 저마다의 감탄사를 곁들였다. 마치 그것이 잘 짜인 대본의 일부인 것처럼. 무대 위 소리꾼들은 관객들의 추임새에 반응하며 때로는 애절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신명 나게 무대를 꾸려갔다. 문자 그대로 ‘배우와 객석이 하나 되어 완성한 놀이판‘이 펼쳐졌달까. 내가 주로 다니던 클래식과 뮤지컬 공연장에서 객석의 관객에게 ‘침묵’은 예의요, 미덕이다. 큰소리로 손뼉 치고 환호할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오로지 커튼콜 때뿐이다. 공연 중에 지나치게 크게 웃거나 작은 소음이라도 만들어 낼까 봐 늘 조심스러웠다. 그런 내게 그날의 ‘추임새’는 신선한 충격이요, 경이로운 신세계였다.
“‘추임새’란, 판소리 창자의 가락에 호흡(呼吸)을 맞추어 공연 중에 고수(鼓手)가 적절한 조흥사 예컨대, '좋다'·'좋지'·'그렇지!'·'얼씨구'·'잘한다'·'아무렴'·'으이 좋지'·'어디'·'어으'·'아먼'·'허이' 등과 같이 창자의 흥을 돋우는 감탄사를 넣어주어 소리판의 분위기를 고무시키는 짧은 말을 뜻한다. 이렇듯 추임새는 판소리 연창자(演唱者)와 청중과의 거리감을 허물어 버린다. 연창자와 청중의 호흡일치와 공감에의 길로 끌고 가 소리판 전체의 극적 조화를 꾀하는 구실을 한다.“(한겨레 음악대사전)
판소리의 구성 요소는 ‘소리꾼, 고수, 추임새, 아니리(노래가 아닌 대화 형식으로 이야기를 설명하는 부분)‘다. 추임새는 곁다리가 아닌 극을 이루는 한 부분이었던 것이다. 판소리 완창 공연은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8시간 까지도 이어진다. 완창 공연 중 고수는 여러 명이 번갈아 북채를 쥐어도 명창은 끝까지 혼자서 완창의 무대를 선보인다. 8시간이라니. 7시에 일어나 바쁘게 출근해서 오전 업무 보고 12시에 점심 먹고 입가심으로 커피까지 마셔도 아직 8시간을 못 채운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오롯이 혼자 무대를 끌고 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공연을 마친 소리꾼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청중들의 ‘추임새’ 덕분이라고 대답한다. 소리꾼 혼자가 아닌 객석과 함께였기에 가능한 완창이었던 것이다.
추임새 덕에 힘이 나는 게 어디 무대 위 소리꾼뿐이겠는가. "잘한다!" , "그렇지!"의 추임새는 우리 모두가 듣고 싶은 응원의 소리다. 어쩌다 글쓰기의 고수들과 타고난 이야기꾼이 가득한 브런치라는 망망대해에 조각배 하나 띄워 노 젓고 있는 나 같은 쭈구리 새내기에겐 구독과 라이킷이 추임새가 되어 등을 두드려준다.
"발행했구나! 어쨌든 써냈구나!"
"짜식! 고생했다. 라이킷 뿅!"
댓글은 또 어떤가. 댓글 알람이 뜨면 바로 달려가 일단 읽는다. 현생에 치여 바로 대댓글을 달지 못하더라도 댓글은 바로바로 안 읽고는 못 참지.
“어머, 나도 그랬는데 햇살님도 그러셨구나.”
“맞아 맞아. 저는 오늘 이런 일이 있었어요.”
공감과 호응의 댓글은 내 글을 빛이 나는 글로 만들어준다. 그래, 누군가는 내 글을 읽어줬구나. 그 글을 읽고 작게나마 위로를 받았구나. 피식, 하고 싱거운 웃음 한 입 베어 물었겠구나. 그런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 입가에 더 큰 미소가 피어난다.(사실은 입이 귀에 걸렸을지도)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은 또 뭘 쓰지?”
고백하건대 사실 내게는 글을 쓰게 하는 또 다른 추임새가 있다. 숨겨둔 비밀 추임새 부대랄까. ‘슬초브런치’라는 이름으로 함께 글을 쓰는 그녀들이 그들이다. 글을 쓰고는 싶은데 혼자서는 자꾸 게을러지고, 지속하기 어려워 이런저런 글쓰기 수업을 전전하다 ‘슬초브런치 3기 모집공고‘를 보게 됐다. "엄마 뭐 해?", "브런치 해!!"라는 타이틀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브런치는 먹어만 봤지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안 해봤던 내가 지금은 이렇게 ‘브런치 작가’라는 부캐를 얻어 글 쓰는 즐거움과 고통 사이의 짜릿한 줄다리기를 즐기고 있다. 어제, 워크숍을 끝으로 ‘슬초브런치 3기‘의 공식 일정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오롯이 나의 의지와 끈기로 글을 써나가야 한다. 누구도 강요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 글이지만 ‘쓰고 싶은 나’를 위해 계속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
오늘도 브런치라는 망망대해에 작은 조각배 하나 띄워 노를 젓는다. 밀려오는 파도 같은 일상에 치여 정신없고, 오락가락 예측 불가인 날씨 같은 감정의 파고에 휩쓸려 헤맬 때도 있지만 노를 젓는 것을 결코 멈추진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천군만마 부럽지 않은 추임새 부대, 브런치 동기들이 함께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의 일상과 책임에 부대끼면서도 묵묵히 쓰고 또 쓰는 그녀들이 있기에 나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다. 매일 올라오는 그녀들의 새 글 알람이 “얼쑤!”, 서로의 글을 읽으며 공감하고 응원하는 마음들이 “잘한다!”, 계속 쓰는 우리로 남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렇지!”가 되어 내 마음에 추임새를 새긴다. 브런치의 구성 요소는 플랫폼, 작가, 독자 그리고 추임새다. 추임새 덕분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오늘도 일단 쓴다.
우리 모두의 ‘쓰는 일상’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