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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매일의 글쓰기 오잇 땅!

by 병 밖을 나온 루기

나뭇잎_ 병 밖을 나온 루기


나는 샛노란색의 꽃무늬 원피스로부터 왔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훈삼이라는 이름 대신, 여자로 태어난 덕에 받게 된 '수진'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왔다.


착한 오빠를 둔 욕심 많은 동생으로, '가스나 네가 못 돼가지고 자꾸 오빠랑 싸우재?'라며 아들을 아주 조금 더 사랑하시던 엄마로부터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도 애정과 관심이 많으셔서 나의 모든 친구들을 아시고 내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시던 엄마로부터 왔다.


감기에 걸린 오빠를 더 챙겨주는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 나도 아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어리석음으로부터 왔다.


고등학교 때 살이 많이 쪄 자신감을 잃었지만, 덕분에 상대방의 호감을 사기 위해 많이 노력하던 나의 모습으로부터 왔다.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자라던 어린 시절을 지나 대학생이던 어느 날, 거하고도 기분 좋게 술을 드시고 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시던 아빠로부터 왔다.


친하지 않던, 아니 오히려 좋아하지 않던 친구가 술에 취해 자신의 비밀 털어놓았을 때, 그 비밀을 지켜주는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순수함으로부터 왔다.


노래방에 가고 싶은데 친구들이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아, 소개팅 첫날에 7살이나 많은 아저씨를 데리고 노래방을 간, 나의 철없음으로부터 왔다.


스무 살 중반쯤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을 때, '이제는 더 이상 부모에게 기댈 수 없겠구나'라는 철듦으로부터 왔다.


용두사미일지언정, 하지 않는 것보다는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어찌 보면 조금 무책임하지만, 또한 의욕 있는 나의 모습으로부터 지금의 내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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