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을 통해 찾은 '괜찮아'
2019년 여름을 앞둔 5월 라노의 장애판정과 함께 약간의 우울감 그리고 대화하기가 힘들어 사람들을 피하게 되는 대인기피 증상이 있었다. 지난해 여름이 너무나 더웠기에 곧 다가올 여름도 걱정되고 여러 가지 생각 중 갑자기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 하면 너무나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고려하던 중 떠오른 곳은 발리. 어느 곳이 되었든 우리 집만 아니면 될 거 같았다. 그리고 바로 결정했다. 너와 나 둘이 발리로 떠나는 거야. 살기 위해서는 여길 벗어나야 해.
그렇게 살기 위해 떠난 그곳, 우리 둘만의 발리에서 한 달 살기가 시작되었다.
왜 하필 발리였을까.
라노가 두 돌이 지났을 때 중학교 친구가 살고 있는 발리에 동창들과 함께 갔었다. 육아에 지쳤던 그 시기에 친정엄마와 남편에게 라노를 맡기고 온전히 내 시간을 즐겼던 그 시간이 그립고 친구가 그리웠다. 내 아픔을 어루만져줄 친구가 필요했고 발리에 살고 있는 친구를 믿고 어렵지 않게 한 달 살기를 결심하게 되었다.
항공권 발권 후 한 달 동안 지낼 곳은 에어비앤비와 호텔을 적당히 섞어서 예약했다. 친구에게는 한국 여름이 너무 더울 거 같아서 발리에서 지내는 게 좋을 거 같아 갑자기 가게 되었다고만 얘기했다. 그리고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라노의 아픔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 일부러 얘기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픔을 어루만져줄 친구를 찾아 발리로 떠났는데 친구와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난 이미 치료가 되었던 것이었다. 아픔을 어루만져주긴커녕 몇 년 만에 만났지만 어제 만난 여중생처럼 별거 아닌 거에도 까르르 웃으며 아무 생각 없는 일상을 보냈다. 발리에서 라노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안정을 찾았고 행복했다.
언어치료가 시작된 이후로 한 번도 쉬지 않았다. 휴가기간이나 명절 빼고는 일주일 이상 치료를 중단한 적이 없었기에 한 달 살기를 결심하고 가장 걱정되는 건 라노의 치료 중단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만 6년도 안된 라노인데 반평생 이상 치료를 받아왔단 사실에 새삼 놀랐다. 라노도 많이 힘들었겠구나. 3년 넘게 매주 2~3번씩 치료실에서 치료받고 안 되는 발음을 되게 하느라 훈련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너도 나도 좀 쉬어가자는 생각으로 떠났다.
그리고 우리의 '쉼'은 성공적이었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 속에 우리가 이뤄낸 것도 쌓아온 것도 있겠지만 놓치고 지나온 것도 많았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필요하구나. 온전히 머릿속을 비우고 오늘을 즐기는 시간이 소중하고 달콤했다. 라노에게 잔소리할 것도 혼낼 것도 없었다. 수영하고 모래놀이하고 바닷가에서 이모, 삼촌들 서핑하는 거 구경하면서 같이 물놀이하다 보면 8시도 안 돼서 잠들었고 매일 아침 6시면 일어났다. 아이를 재우고 깨울 필요 없이 졸리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나는 일상이 너무나 감사했다.
심지어 라노는 한 달 동안 많은 성장을 했다. 아빠가 엄마 지켜줘야 한다고 했다며 낯선 곳에서 나를 지켜 주기에 매우 바쁘게 지냈다. 오토바이가 많이 다니는 곳이기에 도로는 너무나 복잡해서 차조심하도록 내게 주의를 줬고 식사를 할 때에도 항상 나를 먼저 챙겼다. 그 작은 손으로 나를 토닥여줬고, 반짝이는 까만 눈망울로 나만 바라보며 위로해 줬다. 라노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작은 너에게 의지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의 희생으로 너를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의 작은 도움으로 넌 엄청난 성장을 하고 있고
성장한 너는 내게 큰 힘이 되고
그런 너에게 난 의지할 수 있었다.
너와 나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고 특별한 관계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발리 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꾸따, 스미냑, 우붓, 누사두아 이런 곳은 라노와 내겐 맞지 않았다. 한 달 살기라 숙박 비용을 비롯한 물가가 저렴하고 여행지의 북적거림 보다는 느긋한 시골의 매력을 찾던 중 사누르를 발견하게 되었다. 친구가 지내는 꾸따 1주, 사누르 2주, 꾸따 1주 이렇게 4주 동안 지냈었다. 꾸따에서는 친구가 곁에 있기에 그저 좋았고 호텔에서 지냈기에 먹고 쇼핑하기에 너무나 편했다. 사누르에서는 라노 유치원 보내느라 도시락도 싸고 한국에서의 일상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분명 달랐다. 라노를 유치원에 보내고 브런치 먹으며 책을 읽고 해변가를 거닐다가 집에 돌아와 뭔가를 읽고 끄적거리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다. 분명 한국에서와 의 시간과는 다른 여유롭고 편안한 시간들이었다.
라노 또한 색다른 경험을 했다. 혹시나 심심해할까 봐 유치원을 알아봤고 혹시나 힘들어할까 봐 1일권을 매일 끊는 방식으로 보내기로 했었다.
첫날 유치원을 다녀온 라노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 나 발리에서 살 거예요. 발리 유치원 좋아요."
"진짜? 왜? 어떤 점이 좋았을까? 선생님 예뻐? 친구들 좋아?"
"그거 아니에요. 발리 유치원은 계속 바깥놀이 해요. 책 읽고 바깥놀이, 노래 부르고 바깥놀이, 밥 먹고 바깥놀이 해요. 그리고 선생님이 책 읽어줄 때 우린 놀아도 된대요. 우린 장난감 갖고 놀고 선생님은 책 읽어줘요. 아, 그리고 밥도 다 안 먹어도 된대요. 밥 다 못 먹어서 쏘리라고 했는데 선생님이 오케이라고 날 꼭 껴안아줬어요."
라노의 유치원 일일 체험후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다음날 유치원에 가서 물어보니 아이들은 하루 6번의 바깥놀이를 기본으로 한다고 했다. 모든 활동 중간에 바깥놀이가 끼어있어서 아이들은 계속 밖에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었는데. 도대체 왜 이런 거지?라는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이니까. 바깥에서 뛰어놀 때 가장 행복하니까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였다. 선생님이 책을 읽어줄 때에도 굳이 아이들은 아빠 다리를 하고 자리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볼 필요는 없는 거였다. 각자 놀면서 귀로만 들어도 되는걸 왜 우린 몰랐을까. 몰랐다기보다는 알고 있지만 이렇게 해야 맞는 거니까 모든 유치원 아이들이 그렇게 하니까 그게 정답이라 하고 문제 삼지 않는 게 아닐까.
촉각이 예민해 편식이 심한 라노는 유치원 점심시간을 힘들어했다. 선생님이 라노를 배려해 주셔서 라노가 식감을 힘들어하면 안 먹이셨지만, 그래도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은 항상 불편했었나 보다. 발리 유치원 선생님이 오케이라고 꼭 껴안아줬다고 말하는 라노의 눈빛이 반짝였다.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라노이기에 헬로, 땡큐, 쏘리, 피피 딱 네 마디 말만 가르쳐서 보냈는데 얘는 여길 떠나지 않겠다고 하니.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가득 찼었다.
오만가지 생각 중에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딱 멈춰 섰다. 괜찮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닐까. 라노의 언어발달이 늦어서 괜찮지 않았고, 치료가 길어져서 괜찮지 않았다. 장애판정이 가능할 거란 의사 소견에 괜찮지 않았고, 설마 그러겠어란 마음으로 장애신청을 했는데 받아들여져서 더더욱 괜찮지 않았다. 내겐 모든 게 괜찮은 게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라노는 괜찮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난 조금 늦을 뿐이지 괜찮아'
'치료가 종결되지 않고 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괜찮아'
'장애판정이 뭐 그리 중요해. 난 행복하고 건강한데 그러니 난 괜찮아'
아이는 모든 게 괜찮은데 내 욕심에 아이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발리를 떠나기 하루 전 꾸따비치에서 거북이 방생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는데 라노가 자긴 거북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더 놀랍고 감사했던 건 거북이가 좋다고 했단 사실이다. 어디서 들었든지 자기 생각이든지 라노 자신이 느리게 발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런 거북이 같은 자신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아이는 단순히 거북이가 좋아서 그렇게 말한 거일지라도. 내겐 그렇게 들렸다.
"엄마, 난 느린 거북이쟎아요. 그래도 난 그런 거북이가 좋아요. 난 느려도 괜찮아요"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라노의 모습에 감동받았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너를 받아들이지 못한 엄마인 내가 부끄러웠다.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서 지금까지 내가 노력하고 있는 건 의도적으로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말하려고 한다. 느린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만큼 느긋하게 아이를 기다려주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가야 하는데 그전까지 난 그러지 못했었다. 어떻게든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느린 속도의 아이가 잘못된 거라 생각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어떻게든 바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라노는 조금 다를 뿐인데.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렸다고 생각하고 고치려고 했던 나였다.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지만 그렇게라도 깨닫게 되고 인정하게 되었음에 감사했다.
어쨌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라노가 내 아이라서 난 감사하고 행복하다. 느리건 빠르건 상관없이 너니까. 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널 사랑할 이유는 이미 차고 넘친다. 난 라노, 너의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