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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의 여행자 Jan 04. 2025

#새해맞이, 서해로 갑니다

_제부도

[ 보통의 하루 : #탄도바닷길 #제부도 #조개구이 ]


 새로운 해(年)가 시작되었다. 매일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지만, 새로운 해(年)가 시작될 때 뜨는 해는 '새로운'(新)에 더 의미가 깊다. 새해를 맞이하러 특별히 어딘가 가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매년 12월 31일이 되면 교회를 간다. 매년 송구영신 예배가 열리기 때문이다. 그 해 마지막날 밤과 새해 첫날 새벽사이, 예배드리며 온 가족이 함께 새해를 맞이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새해를 맞이한 감사기도를. 매해 온 가족이 함께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어서 그것 또한 감사하다.

 예배 후,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돌아와 다시 잠을 청한다. 겨우 깊이 잠들었다 싶을 때 해를 보러 가기 위해 다시 몸을 일으킨다는 건 고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정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꼭 깨우셨다. 겨우 3시간 잤을까. 매번 해를 맞이하는 장소는 달랐다. 한 번은 성산 일출봉, 한 번은 세미오름, 한 번은 다랑쉬오름, 한 번은 표선해수욕장. 볼 때마다 구름이 바다 근처 맴돌아 푸른 바다에서 붉은 해가 찬찬히 떠오르는 장관을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가족은 제주 바람에 맞서며 '새롭게' 뜨는 해를 맞이했다.

 육지로 이주해서 맞이하는 첫 새해. 아이들과 함께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잠깐 눈을 붙인 후 떡국을 뜨끈하게 끓여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해가 뜨는 동쪽이 아닌 해가 지는 서쪽으로 향했다.


# 탄도바닷길

- 경기 안산시 단원구 대부황금로 17-34

 탄도바닷길은 탄도와 1.2km 떨어진 무인도 누에섬 사이에 하루에 두 번 4시간씩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안산 9경 중 하나이다. 물때를 잘 맞추어 가면 드러난 탄도바닷길을 따라 누에섬 등대 전망대까지 걸어갈 수 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쯤. 우리처럼 서해로 향한 이들이 많았는지 다행히 주차장이 만차 되기 직전에 도착했다. 바람이 불었지만 두꺼운 점퍼, 털부츠, 털모자, 장갑까지 이미 완전한 준비태세를 갖췄다. 겨울 바다를 만나는 기본자세다. 겨울 바다의 거센 바람은 이미 제주에서 겪어보지 않았던가. 갑자기 온 일상여행이었지만, 물때를 잘 맞췄는가 탄도바닷길도 드러났을뿐더러 저 멀리 3km 이상은 바닷물이 빠져 있다. 그래서 우리를 환영하는 건 갯벌. 갯벌을 이렇게 가까이 본 것은 처음이다. 아이들도 자연관찰책에서만 보던 실제 갯벌을 눈앞에서 보게 되니 감탄을 금치 못한다.

 "와. 엄마, 갯벌이에요."

 "아빠, 들어가도 돼요? 칠게 있을 거 같은데."

 "망둥어도 있을지 몰라. 물이 엄청 빠졌어요."

 "들어가 볼까? 엄마 손으로 만져봐도 돼요?"

 아이들은 들어가고 싶고 손으로 만져보고 싶고 갯벌을 파헤쳐서 뭔가 잡을 요량이었지만, 입구부터 '유료갯벌체험'이라고 팻말이 우뚝 세워져 있다. 또한 오늘은 새해라 쉬는 날이다. 아이들은 아쉬움을 애써 감추고 탄도바닷길을 걷기 시작했다.

 "봐봐, 바닷물이 엄청 빠졌지. 이것을 썰물이라고 해. 갯벌은 처음 보네."

 "여기는 밀물 때, 즉 물이 들어오는 때에는 이 길이 없대. 그러다가 썰물일 때 이 탄도바닷길이 드러나는 거야. 신기하지. 저기 누에섬까지 걸어가라고 여기 길을 만들어놨네. 특별한 길이야."

 우리는 탄도바닷길을 걸으며 매번 보던 바다와는 다른, 갯벌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았다. 갯벌은 정말 암흑같이 시커맸으며 손으로 파도 잘 파지지 않을 것 같은 질퍽함과 단단함이 엿보였다. 저 멀리 뭔가 움직이는 것은 조개나 망둥어가 아닌가 .


▲ (좌, 우) 바다 사이를 걸어가다. 탄도바닷길 ⓒmoonlight_traveler


 아쉬운 건 구름이 잔뜩 끼어 새파란 하늘도 붉은 해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구름이 온 하늘을 덮어버렸다. 그래서 그런가. 낮시간인데 하늘이 어둑어둑하니 갯벌조차 으스스하다. 회색빛의 바다라니. 그래도 누에섬에 탄도발전기가 있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하다. 이는 제주바다에서 볼 수 있는 발전기는 대부분 바다 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썰물 덕분에 발전기를 바로 밑에서 볼 수 있는 진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누에섬은 멀리서 바라보면 누에가 기어가는 모습과 닮았다고 한다. 우리는 누에섬 등대 전망대입구까지만 갔다 오기로 한다. 아쉽지만, 마침 신정이라 전망대가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바닷길을 걷다 보니 멀리 있는 전곡항에서 제부도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 '서해랑'도 보인다. 저걸 탈 수 있을까. 예약을 미리 하지 못해 타기는 어려울 듯싶다.


 바닷물이 저 먼 곳까지 빠졌지만 금세 다시 차오를 것을 알고 있다. 바닷물이 빠지는 것도 순식간이지만 차오르는 것도 순식간. 마치 휴지에 물을 쏟으면 휴지가 젖어들어가는 속도 같이. 바닷물이 들어오면 갯벌 곳곳에 숨어있던 많은 동식물들이 자신의 존재를 내뿜으며 등장할 것이다. 그러다가 물이 빠지면 또 갯벌 속으로 숨어들겠지.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도 그러할까. 매번 떠오르고 지는 붉은 해 앞에서, 새해(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야단법석하게 몸과 마음을 정비하여 지나가버린 과거와 상처를 해결하지 못한 채 마음속 깊이 묻어버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물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처럼 한 달, 두 달 보내면서 다시금 새로운 과거와 상처가 드러나겠지. 지난 한 해를 보내며 어떤 과거와 상처를 바닷물에 애써 덮어버렸나. 또한 새해를 맞이하며 어떤 마음가짐을 다시 챙기고 있나.


# 제부도

-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제부리

 선신면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으로서 일명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는 신비의 섬이다. 이는 썰물 때면 하루에 두 번씩 바닷물이 양쪽으로 갈라져 섬을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우리는 케이블카 대신에 차를 가지고 제부도로 들어가기로 했다. 제부도 들어가는 길이 탄도바닷길처럼 도로 양쪽으로는 넓게 갯벌이 펼쳐져 있다. 길 양쪽에 서 있는 석재볼라드는 바닷물에 담겼다가 드러났다가 하는지 따개비 같은 생물이 붙어 있다. 우리가 바닷속을 지나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이.

 "얘들아, 저기 봐봐. 여기 바닷물이 잠기는 도로잖아. 그래서 저 볼라드가 바닷물에 잠겼다가 나오니 조개 같은 것이 붙어 있네. 와우. 아까 탄도바닷길도 그렇고. 여기도 썰물이라서 우리가 여기를 차로 지나갈 수 있는 거야."

 "다시 밀물 되기 전에 나가야 하네. 저녁 6시 전에는 나가야겠다. 여기 갇히면 안 되니깐."


 아이들이 모래사장에 들어가기를 원해서 잠시 차를 세우고 산책하기로 한다. 백사장이며 부드러운 모래사장이다. 구름 가득한 하늘과 회색바다빛이지만 아무렴 어때.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바다를 향해 한걸음에 내달린다. 바닷바람에 시린 손으로 모래를 조금씩 파보며 게라도 보일까 흙을 뒤적거린다. 아이들 옆에 쪼그려 앉아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모래를 뒤적거려 보지만 쉽게 보이지는 않을지언정. 남편은 저 멀리서 '빨리 들어와, 옷에 모래 다 묻어.'라고 외친다.


(좌) 멀리 보이는 매바위  (우) 제부도 해수욕장  ⓒmoonlight_traveler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가 제부도 해수욕장에 차를 멈췄다. 제부도 해수욕장에는 매바위가 있다. 매바위는 과거에 매가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매가 살고 있지 않지만, 풍화작용에 의해서 계속 허물어져 내린다고 한다. 멀리서 보니 작은 섬 같다. 이 해수욕장에서도 갯벌체험이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유료. 여기에서는 바지락, 고동, 박하지, 조개류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갯벌인 만큼 호미로 바닥을 긁어서 캐내는 방식이다. 제주에서도 많이 캤어서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아쉽지만 갯벌체험은 패스.

 일몰을 보면 좋겠지만 이미 낮부터 푸른 하늘을 가렸던 구름은 좀처럼 떠날 줄을 모르고. 하늘과 바다를 덮어버린 구름과 함께 일몰 시간을 맞이한다. 결국 밀물로 섬에 갇히기 전, 아쉬움을 가진채 발길을 돌린다.


# 조개구이

 사실 1년 만에 먹어보는 해산물이다. 바다에 오니 곳곳마다 '조개구이' 식당들이 즐비하다. 어느 식당을 가야 적당한 가격에 맛있는 조개를 양껏 먹어볼 수 있을까 싶지만 얻을 정보도 마땅히 없다. 간판 이름 마음에 드는 곳으로 아이들이 선정해서 들어가기로 한다. 숯불에 구워 먹는 조개구이라니. TV에서만 봤었다. 언제 와보나 했는데 새해가 되어 서해에 와서야 먹을 수 있게 됐다. 기대하는 바가 크다, 큰 아들이. 해산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EBS에서 볼 때마다 '먹고 싶다', '가보고 싶다'를 외쳤던 바. 드디어 눈앞에서 조개구이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 조개구이 한 상  ⓒmoonlight_traveler


 숯이 활활 타오른다. 열에 의해 각종 조개가 입을 떡떡 벌리고 알이 쪼그라들기 시작한다. 젓가락으로 집어 치즈에 듬뿍 찍어 먹는 맛이란. 단연 일품이다. 초장이냐 간장이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찍어먹든 그냥 먹든 상관없다. 뭐든지 현지에서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고 하지 않는가. 싱싱한 조개에 바다내음이 물씬 풍긴다. 해산물을 좋아했지만 일 년 만에 맛보게 된 큰 아들은

 "정말 맛있어요."

 "조개가 쫄깃쫄깃 해요. 아, 흡족하다."

 라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조개구이 맛에 혀를 내두른다. 뒤이어 나온 바지락 칼국수를 국물까지 후루루 들이켰다. 넷이서 남김없이 그릇을 싹싹 긁어먹었다. 역시, 최고. 창가로 고개를 돌리면 잔잔한 서해 바다가 (물론, 비록 하늘은 구름 낀 회색빛이었지만 새해라 마음이 반짝반짝거렸다.) 있고, 눈앞에는 지글지글 구워져 가는 형형색색의 조개라니. 조개의 화려한 색 앞에 작은 아들은 이 조개껍질을 씻어서 집에 가져가겠다고 한다. 자기 방에 전시하고 싶다며. 이렇게 다른 두 아들이라니. 하하하, 웃으며 따뜻하게 배불리 먹고 나니 겨울바다 추위가 싹 가시는 듯하다.


# 여행을 마치며

 새해가 되었네. 이제 우리 모두 나이가 한 살씩 더 늘었어. 게다가 육지에 이사 온 지도 1년이 지났네. 너희들은 이 1년이 어땠을까. 바다도 보고 싶었지. 매일 거실창에서 강을 바라보지만 바다는 또 다르잖아. 마침 서해를 왔지 뭐야. 서해, 갯벌, 책에서만 봤어서 꼭 오고 싶어 했잖아. 직접 와 보니 어때. 진짜 갯벌이 넓다. 바닷물이 이렇게까지 빠지는 모습은 처음이야. 갯벌 체험까지 하면 좋을 텐데, 아쉽다. 제주 바다에서도 바지락, 맛조개를 캐고 문어를 잡았었잖아. 이 정도는 뭐. 호미도 있다면 금방 캐겠지. 다음에는 갯벌체험도 해 보자. 오늘이 새 해인만큼 해도 봤으면 더 좋았을걸. 서해는 일몰이 장관이래. 하늘이 우중충해서 아쉽네. 그래도 뭐, 또 볼 수 있겠지. 해는 매일 뜨고 지니깐. 이제, 집에 가자.







엄마,
제주 바다보러 언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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