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의 하루 : #교보문고 #일민미술관 카페 이마 ]
청년 때 서울 놀러 올 때마다 꼭 들렸던 곳은 종로. 종로에는 삼청동, 명동, 청계천, 광화문 등이 있기에 어디를 가도 즐길거리가 많다. 특히 제일 좋아하던 곳은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카페 이마 그리고 교보문고. 이곳은 제주에서는 볼 수 없는 다채롭고 흥미로운 장소다. 그래서 육지로 이사오자마자 가족이 함께 방문한 곳은 단연코 미술관, 이마, 교보문고.
# 교보문고
- 서울 종로구 종로 1 교보생명빌딩 지하 1층 (광화문점)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우리를 반기는 것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글이 새겨진 큰 바위와 횡보 염상섭 선생님('표본실의 청개구리')의 상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그곳에는 아름드리 큰 벚나무가 자리 잡고 있어서 특별히 봄에 교보문고를 방문한다면, 하늘하늘 예쁘게 핀 벚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서점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수많은 계단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올라가고 내려가는 데에 실망하지 마시라.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 한가로운 모습들을 보게 될 테이니. 계단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이라. 오드리 헵번이 로마의 스페인 광장 계단에서 먹었던 젤라토만큼이나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고 장담한다.
교보문고의 첫인상은 '와우, 이렇게 많은 책이 있다고.', '이 시간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였다. 이른 시간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넓은 책장 사이 곳곳에 사람들이 서서 혹은 바닥에 앉아서 책을 고르거나 읽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친절한 서점이라니. 비닐에 쌓인 책이 아니라면 어떤 책이든 들고서 읽어도 무방하다. 그러다가 책의 글귀가 마음에 꽂히면 바로 구입할 수도 있다. 책에 이렇게 관대할 수 있는가. 그렇다. 서점에 오면 책을 분야별로, 무한대로 펼쳐볼 수 있다. 그래서 자녀들이 읽을 책과 문제집을 살펴보러 오는 부모님들 뿐만이 아니라. 아동, 유아 코너에는 아이들이 책장에 기대어 빼곡히 앉아 자유롭게 책을 읽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화책이면 어떠랴. 아이들이 서점 바닥에 쭈그려 앉아 책을 읽는 것은, 부모에게나 아이에게도 책과 서점에 대한 친근함과 소중한 추억거리를 안겨 줄테다.
각 분야별 베스트셀러도 전시되어 있어 신간뿐 아니라 요즘 어떤 책을 사람들이 많이 읽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발견한 순간, 마음의 기쁨이 온천처럼 퐁퐁 솟아오른다. 그런 순간은 서점을 사랑하는 이에게 금세 찾아온다. 아이들과 광화문 광장 가는 길에 방문했던 서점에서, 우리가 읽던 지.대.넓.얕 11권 신간을 작은 아들과 발견하고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비명을 지르며 큰아들에게 달려갔다. 큰 아들도 신간을 발견한 기쁨이 어찌나 큰지 얼른 읽어보고 싶다고, 책을 싼 비닐을 벗기고 싶다며 얼른 결제하라고 등을 떠민다. 책숲에서 보물을 발견한 황홀한 이 기분. 이러한 기분을 맛보고 싶다면 서둘러 서점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길 권한다.
아동, 유아 코너에만 있다가 계산대로 가다 보니 세상에.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으신 한강 작가. 그녀의 얼굴 그림 패널과 대형 책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앞의 진열대에는 수많은 작품들, '흰', '채식주의자',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 등의 책들이 놓여 있다. 그 진열대 주위에는 청소년, 청년, 할머니, 할아버지 등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분들이 책을 2,3권씩 손에 들고서 살펴보고 계셨다. 어느 일행의 하는 얘기를 얼핏 듣기로는, 서울로 여행 와서 한강 작가의 책을 구입하기 위해 교보문고를 방문한 것이다. 그치. 이곳은 서울 여행 필수코스지. 한껏 미소를 지으며 따스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나도 그랬었다고 속으로 말하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인쇄소가 밤새 작업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인터뷰를 보건대 그동안 책이 팔리지 않아 인쇄소가 일이 없었는데, 한강 작가 덕에 밤새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하던 직원분의 환한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한강 작가의 글로서,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될 뿐만이 아니라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의 번역본이 아닌 원본을 보게 된 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한다.
한강 작가께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시자마자 온라인으로 '소년이 온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책 2권을 주문해서 읽은 바 있다. 특별히 광주 지역의 5.18 현장 곳곳을 돌아본 필자로서는 그곳 현장의 생생한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힘겨웠다. 광주뿐이랴. 제주 사람인데.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어볼까. 나도 4.3 유가족인데 어떻게 글로 표현하셨는지 한번 훑어나 볼까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미 들은 얘기, 4.3 평화기념관에서 본 영상 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참혹했기 때문에. 차마 글로 마주할 자신감이 없다. 지금은 조금 미뤄볼까 싶다.
▲ 오늘을 사진으로 기록해 보세요 ⓒmoonlight_traveler 자랑스러운 한강 작가의 책을 살펴보고 왼쪽으로 돌아서면 만나게 되는 '오늘의 기록'. 교보문고 곳곳에 흩어있던 남편, 사랑이, 기쁨이를 불러 모은다. 사진 한 번만 찍자, 잠깐만 읽는 거 멈춰봐, 사진 찍고 다시 읽자,라는 얼렁뚱땅 설득과 함께 후다닥 모여 카메라 앞에 선다. 이런 포토박스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한껏 포즈를 취하고는 '스마일'하며 얼굴에 잔뜩 미소를 띠고 촬영하기 버튼을 누른다. 파란색 종이 위에 흑백으로 출력되는 가족사진. 멋들어지게 출력된 흑백 사진이 가족 모두에게 미소를 선사한다. 우리는 오늘도 오늘을 기록한다, 우연찮게 서점에서. 집에 가서 냉장고에 붙여 둬야지.
포토박스 옆으로 손잡이가 달려있는 서랍들이 있다. 아이들은 손잡이가 어색해 어찌 여는지 우왕좌왕. '이렇게 손으로 잡고 앞으로 당기면 돼.' 하자 아이들이 이곳저곳 손잡이를 앞으로 당겨본다. 그 서랍 안에는 지난 5~7월에 열렸던 '교보손글씨대회'에 입상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참가한 이들의 연령이 다양하다. 손글씨 모양도 각기 다채롭다. '동포에게 고함', '긴긴밤', '기분을 말해 봐', '안네의 일기', '진달래꽃' 등 위인전, 창작동화, 시 등 문학분야도 다양하다. 어찌나 글씨들이 그렇게 한결같이 정갈하고 예쁜지. 한글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울 일인가 싶다. '어머, 이 친구는 10살인데 글씨 봐봐. 글씨체 진짜 깔끔하다.', '어라, 이 친구는 12살이네. 'ㄹ'을 이렇게 또박또박 쓰다니 대단하다.'라고 손으로 짚어가며 말하자, 사랑이와 기쁨이는 '흠흠. 저도 이 정도 쓸 수 있어요.'라고 답한다. '그렇지, 너희도 쓸 수 있는 건데 참는 거지? 그래도 이제는 참지 말고 이 친구들처럼 또박또박 잘 써봐.'라고 능청스럽게 말을 붙인다. 아이들은 미소를 지으며 묵묵부답. 아이들의 글씨를 볼 때마다 잔소리가 지쳐갈 무렵, 서점에서 어여쁜 글씨체를 만나고 보니 나도 글을 천천히 써보면서 글씨를 가다듬어 봐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물론, 우리 아들들도 제발 글씨를 글씨답게 써보기를 바라며.
# 일민미술관 카페 이마
-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52 일민미술관 1층
청년 때 처음으로 와플을 먹은 카페다. 와플을 알지 못했던 시절에. 서울에서 제주로 발령받은 daum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울시립미술관 이야기가 나왔고, 그는 내게 일민미술관 카페 이마의 와플을 추천해 줬다. 와플에다가 시럽을 조금 뿌리고 아이스크림까지 같이 먹으면 정말 환상적이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그 해 서울 여행을 와서는 일민미술관을 찾았다. 그 당시에는 1층은 미술관으로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2층에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장소도 지금보다는 협소했다. 서울 사람이 강력추천한 '와플'을 먹어보고자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갔던 작은 카페를 기억한다. 고급스러운 아이스크림이 올려져 있던 와플. 처음 맛보는 와플의 맛은 어땠을까.
▲ (좌) 카페 이마 입구 (중간)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와플 (우) 와플과 함께 나오는 달콤한 시럽 ⓒmoonlight_traveler
예쁜 주전자 모양의 그릇에 시럽이 가득 담겨 나왔으니 맛은 봐야 하지 않겠냐며 시럽을 와플 위로 살살 뿌린다. 그리고는 나이프와 포크를 이용하여 와플을 조금씩 자른다. 생크림은 좋아하지 않지만 아이스크림과 와플 맛에 버무려지기를 바라며 조금씩 베어 분다. 겉은 바삭하면서도 스펀지케이크처럼 푹신푹신한 식감. 시럽을 뿌렸기에 달콤하면서도 쫀득쫀득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맛을 극대화하며 입에서 살살 녹는다. 역시 맛있다.
와플과의 첫 만남 이후로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들렸던 카페. 오늘도 교보문고 방문 후,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다. '와플대학'에서 먹던 와플과는 다른 모습에 당황하지만 금세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집중 공략하며 맛있게 냠냠 먹는다. '어때 달콤하지' 질문에 '아이스크림 더 먹고 싶어요.'라고 답한다. 그래, 아이스크림도 최상급이야. 많이 먹어. 엄마는 빵만 먹어도 좋아. 작은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아이들에게, '엄마 20대 때 이곳에 와서',라고 라떼 얘기를 시전 한다. 아무렴 어때. 맛있으면 됐지. 지금은 시간이 지난 만큼, 매장은 1층으로 옮겨지고 확장하여 다양한 음식도 판매하고 있다. 다음에는 여기 와서 밥도 먹자. 저번에 왔을 때 오픈시간부터 사람들이 많던데, 오픈런을 노려보기로 하자.
# 여행을 마치며
아이들아 오늘 여행 어땠어. 교보문고 가서 다양한 책도 보고 무엇보다도 지.대.넓.얕 신간 발견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우리가 11권 언제 나오나 기다렸잖아. 근데 마침 이렇게 딱 나와 있었네. 어찌나 반가운지. 서점 가보길 잘했지. 책 보고서 먹은 아이스크림 와플은 또 얼마나 달콤했니. 엄마가 20대 때부터 와서 먹던 와플을 너희들과 함께 먹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단다. 너희들도 이 공간, 이 시간을 잊지 말고. 나중에 너희 자녀들에게 '할머니께서 비행기 타고 와서 먹던 와플 가게야', '교보문고 서점 갔다가 여기와서 할아버지께서 와플을 꼭 사주셨지.'라고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그 달콤함을 기억하고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서점은 꼭 자주 가봐. 엄마가 신혼여행 프랑스 가서도 '셰익스피어 서점' 갔었다고 했지. 서점은 무한한 세계가 펼쳐지는 곳이란다. 글이 읽히든 안 읽히든 가 봐. 세상을 읽을 수 있어. 그리고 자신이 가지는 정서와 감각과 지혜가 많아지지. 이왕이면 책이 읽히고 마음판에 새겨지면 더 좋겠지만 어쨌든. 거기다가 달콤한 아이스크림까지 맛본다면 그 정도의 책쯤이야. 특별하게도 오늘도 교보문고 갈 거야. 너희들이 좋아하는 '윔피키드' 신간이 나왔거든. 게다가 책 저자 '제프 키니' 사인회에 당첨이 되었거든. 우리 얼른 서점 가서 책에 사인받자. 기대되지. 엄마도 기대돼. 늘 책을 좋아하고 또 앞으로도 좋아하게 될 아들들을 응원하며 이제, 집에 가자.
엄마, 저 계단에 앉아서 책 읽어도 돼요?
지금 다 읽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