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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의 여행자 Dec 28. 2024

#다시 만난 책의 세계

_파주출판도시

[ 보통의 하루 : #지혜의숲 #출판도시 활판인쇄박물관 ]


 늘 가고 싶었던 곳이다. EBS에서 우연히 보게 된 파주출판도시. 우리 집의 있는 책장과 책들이 무색할 만큼 바라고 소망했던 천장 닿은 키 큰 책장과 책장 가득한 책을 볼 수 있는 곳. 그런데 마침 육지에 거주한다, 비행깃값도 무료다, 여행이었으면 가보지 못할 파주출판도시. 차로 가면 금방인데 안 갈 이유가 없다.


# 지혜의숲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나무가 책이 되고, 책이 지혜가 되는 지혜의숲  

 지혜의숲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되는 열린 독서문화공간이다. 가치 있는 책을 모아 공동의 서재로 활용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곳이다. 참고로 지혜의숲 1은 학자, 연구소, 지식인들이 기증한 서적들을 전시한 곳. 지혜의숲 2는 출판사들이 기증한 서적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곳. 마지막으로 지혜의숲 3은 라이브러리 스테이 지지향(게스트 하우스)의 로비로 다양한 책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건물은 콘크리트 회색빛이기에 딱딱한 느낌이 들 수 있으나 주변의 정원과 나무들로 은근히 책 속의 정원 같은 모습이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TV에서 보던 대로 천장까지 닿는 높은 책장이 양쪽으로 진열되어 있으며 그곳에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하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아늑해진다. 이렇게 황홀할 수가. 곳곳에 책장 앞에서 사람들이 책을 꺼내 넘겨보고 있다. 그 자유로움이란. 아이들도 책이 많아서 좋은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어느 책장에 내가 볼 책이 있나, 어떤 책을 읽어볼까 살펴본다. 이미 원하던 책을 찾고서 안쪽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도 있는데 사람들이 자유롭게 차를 마시며 책을 보는 분위기다. 아이들이 자리를 잡고 독서를 하니 맘 편히 남편과 천천히 책을 살펴본다. 어떤 책을 읽어볼까. 눈앞에 보이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책을 꺼내든다. 중학교 때 읽고 읽었던 책이다. 드넓은 바다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는 노인 이야기. 그 노인은 바다에서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까. 바다를 가만히 지켜본 적이 있는가. 배 위에서 바다 물결을 본 적이 있는가. 오래도록 응시하다 보면 내가 바다인지 바다가 나인지 알 수 없는 느낌이 들며, 금방 바다로 빠져드는 몽롱한 기분이 든다. 그럴 때에 속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라.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한 몽롱한 바다의 물결 속에 홀로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라니. 그만큼 처량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낚싯줄에 걸린 청새치와 기나긴 사투를 벌이고, 결국 잡은 청새치를 상어에게 조차 다 내어주고서야 결국 뼈만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홀로 배에 앉아 낚싯줄을 드리우는 모습은 바다의 고독함을, 청새치와 벌이는 사투는 바다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게 지혜의숲에서 바다에 흠뻑 빠졌다.


# 출판도시 활판인쇄박물관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지혜의 숲 1층

 활판인쇄박물관은 한국의 인쇄 역사와 활판 인쇄의 전통을 보존하고 알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활판 인쇄는 활자를 하나씩 조합해 문서를 인쇄하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이곳에서는 금속 활자와 목판 인쇄술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다. 이전의 지혜의숲에는 수많은 책들이 숲을 이룬 것처럼, 이곳의 입구에 들어서면 활자의 숲으로 3천8백만 자의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활자를 보유한 숲이 보인다.

 우연히 지혜의숲 입구에서 본 팸플릿에서 활판인쇄박물관에 체험 프로그램이 있는 것을 보고 신청했다. 다행히 신청예약 성공. 지혜의숲에서 아이들과 함께 느긋하게 책을 읽다가 활판인쇄박물관으로 향한다. 우리가 신청한 프로그램은 「 책 만들기 」다.

「 책 만들기 」
1. 전시된 네 종류의 책들 중 만들고 싶은 책을 선택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솝우화', '명언집 LOVE'을 선택했다.
2. 문선대에서 자기 이름을 찾는다. '사', '랑', '이', '기', '쁨', '이' 이렇게. 문선대는 예전에 신문사나 인쇄소에서 원고대로 활자를 골라 뽑아내던 활자 보관대다.
3. 판에 이름 활자를 올려놓고 인쇄기계에 넣어 기계를 돌린다. 그러면 표지 완성. 판에 잉크를 바르고 롤러를 돌려서 누르는 인쇄방식이다.
4. 책별로 인쇄되어 있는 속지를 가져와서 반으로 접는다.
5. 표지와 속지를 오침방식(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방식으로 구멍이 다섯 개)으로 책의 구멍을 뚫는다.
6. 실과 바늘로 바느질을 한다. 표지와 속지를 실로 엮는 방법이다.

 

▲ (좌) 활자 보관대, 문선대. 이름 빈도별로 활자들이 배열되어 있다  (우) 표지에 이름과 제목을 인쇄하는 판. 잉크 바르기 전의 모습  ⓒmoonlight_traveler


 그렇게 완성. 각자 고른 이솝우화, 명언집에 자신의 이름이 뚜렷하게 인쇄되어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책이라며 뿌듯해한다. 잉크를 종이에 묻히고 바느질을 몇 번 한 것일 뿐이지만, 그래도 잘했어. 책 만드는 중간에 표지에 묻은 잉크가 마를 동안, 프로그램 진행하시는 선생님께서 활판인쇄박물관 내부를 소개해주신다. 활판 인쇄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독일의 근대 활판인쇄술 구텐베르크가 만들었던 인쇄기도 보여준다. 놀라운 사실은 독일보다 200년 앞서 우리나라 고려시대에 세계최초 금속활자가 만들어졌다는 사실. 현대식 인쇄기도 볼 수 있는데 선생님께서 기계들을 직접 시연하신다. 아이들도 선생님 따라 직접 인쇄 기계를 작동해 보며 나온 인쇄물을 보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실물 인쇄기계를 보니 신기하다. 앞으로는 종이 대신 PDF 파일을 쓰는 일이 많아져 더 보기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더욱 아이들도 부모들도 집중모드.

 인쇄 기계들 사이에 있는 책상 위에 명언, 글귀들을 인쇄해 볼 수 있는 종이와 잉크 물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지나칠 수 없는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활판에 잉크를 바르고 종이를 올린 다음 누름판으로 누른다. 그러면 완성.

 "엄마, 이거 집에 가져갈 거예요."

 "그래, 집에 가져가서 벽에 붙여놓자. 잘했어."


 활판인쇄박물관에서는 비단 체험뿐만이 끝이 아니다. KBS에서 3.1 운동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면서 기존 모습으로 복원한 '보성사'가 있어 그 당시 출판인쇄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보성사'는 의암 손병희의 특명으로 작성된 3.1 독립 선언서를 3만 5천 장 전량을 인쇄한 곳으로써 당시 가장 훌륭한 시설을 갖춘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독립선언문을 인쇄했다는 이유로 불태워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복원됨으로써 곳곳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물건과 태극기, 그 당시 사진과 신문,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며 옛날 물건들을 아이들과 세세하게 들여다본다. 비록 복원된 곳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서 역사의 생생한 비극과 감동을 느낄 수 있어 마음이 벅차오른다.


# 여행을 마치며

 오늘은 색다른 곳을 왔네. 파주출판도시라고, 출판문화인들이 꿈꿔왔던 출판문화공동체의 산업단지야. 단지 지혜의숲, 활판인쇄박물관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집에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책들의 출판사들이 이곳에 있는 거란다. 신기하지. 엄마도 EBS에서만 보던 곳을 직접 올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흥분돼. 특히 지혜의숲은. 그렇게 많은 책들을 본 적 있니. 물론 일반적인 도서관이나 특별한 별마당도서관을 가봤지만. 여기가 제일 책이 많을 걸.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엄마는. 온갖 세상의 지식이 가득 넘치지. 너희들은 어때. 각자 이름 적힌 책을 소장하게 되었네. 아주 특별해. 엄마도 엄마이름 적힌 책이 없는데. 우리 아들들, 최고. 아, 독립신문을 발간한 보성사도 볼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벅차올랐어. 이곳에서 그런 소중한 곳을 보게 될 줄이야. 게다가 수많은 인쇄기를 직접 보고 체험해 보니 신기하고 놀랍더라. 오늘도 뜻하지 않은 좋은 여행이었던 것 같아. 너희들이 만든 책 소중하게 들고, 이제 집에 가자.



▲ (좌) 명언, 글귀들을 본뜰 수 있는 공간. 판과 잉크, 누름대 (우) 아이들이 직접 만든「책」ⓒmoonlight_traveler








엄마, 우리가 작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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