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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이 꼬이면 지는 거다

스플릿 스텝 배우기

by 체리봉봉 Mar 10. 2025

우리의 테니스 선생님은 라켓 잡는 법도 집에서 연습했다가 잘못된 자세로 굳어질 수 있으니 굳이 연습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하셨다. 숙제 없는 수업 덕분에 솜사탕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귀가했고 2주 차 테니스 수업을 손가락 꼽으며 기다렸다. 



지난 시간의 칭찬을 떠올리며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테니스장에 들어섰다. 가볍게 팔과 어깨를 쭉쭉 늘려보고 발목도 오른쪽 왼쪽 돌려보며 기분 좋은 설렘을 느꼈다. 일주일 만이라 남편과 나란히 라켓을 잡고 지난 수업도 복기해 보았다. 혼자라면 약간 부담스러웠을 텐데 체력을 나눌 순 없어도 기억은 공유할 수 있는 동반자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나 나나 실력은 도긴개긴이지만 서로의 자세를 점검해 주며 파이팅을 외쳤다. 마음속으로.



선생님이 테니스코트로 입장하며 수업은 시작됐다. 오늘 레슨은 스플릿 스텝 배우기. 오른손은 테니스 손잡이를 잡고 왼손은 테니스 넥을 잡은 채로 제자리에서 가볍게 점프를 하는 스플릿 스텝과 날아오는 공을 향해 두 발을 달리기 하듯 옆으로 가볍게 뛰는 셔플 스텝을 배웠다. 스플릿 스텝은 공이 날아올 궤적과 구질, 파워를 계산해 바로 뛰어갈 수 있도록 준비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몸을 미리 움직여 빠르게 공을 포착하고 처리해 득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셔플 스텝은 사이드 스텝이라고도 하는데 옆으로 걷는 게처럼 공이 떨어질 위치를 예상하며 좌우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동영상의 느리게 감기 버전처럼 하나, 둘 구령을 붙여 옆으로 천천히 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라켓을 휘두르는 것도 미숙한 상태에서 스텝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난 수업 이후 괜히 의기양양해져서 남편보다 먼저 레슨을 받겠다고 자처했는데 우리말로 설명하고 몸으로 시연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듣고 보면서도 몸 따로 마음 따로 헤매고 있으니 내가 먼저 레슨 받겠다고 한 게 약간 후회스러웠다. 그나마 남편도 나와 같은 뚝딱이가 되어 스텝이 꼬이는 모습을 보니 위안이 되긴 했다. 역시 우리는 환상의 짝꿍이다. 



20분간의 레슨이 끝나고 남편은 굳이 내가 연습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주었다. 테니스는 풋워크가 중요한 운동이라 분명 온갖 힘을 끌어내 최대한 민첩하게 스텝을 밟았는데 내가 본 영상 속엔 새끼 코끼리 한 마리가 둔탁하고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기름칠을 못한 로봇처럼 팔과 다리가 삐걱거리며 각기 따로 노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웃겼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도 감정의 동요 없이 레슨을 진행했던 선생님은 진정 웃음 참기의 달인이었다. 



라켓만 잘 휘두르면 되지 춤도 아닌데 스텝까지 배워야 하나라고 생각했다가 승패가 갈릴만큼 중요한 게 스플릿 스텝이라는 것을 알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조코비치, 나달과 함께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로 손꼽히는 로저 페더러도 기량이 낮은 선수들과 게임할 때조차도 스플릿 스텝은 충실히 했다고 한다. 스플릿 스텝을 안 하는 선수는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대성할 수 없다고 하니 취미로 배우더라도 제대로 익혀야 하는 아주 필수적인 자세인 것이다. 



스플릿 스텝의 살아있는 교과서를 눈으로라도 익힐 요량으로 페더러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가 쓰던 테니스 라켓이 최근 약 1억 7천만 원에 낙찰됐다는 기사 제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더니 이미 은퇴한 선수지만 그의 클래스는 영원한가 보다. 나는 냉수 한 잔을 들이켜고 그의 테니스 경기 영상을 보았다. 페더러의 풋워크는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홉 살 어린이처럼 경쾌하고 가볍고 자연스러웠다. 구름 위를 걷는 듯 사뿐한 스텝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 부드러운 발놀림이 너무나 쉬워 보여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꽃잎과 풀잎 사이를 자유롭게 노니는 나비 한 마리가 테니스 경기장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샤라포바와 조코비치가 되어 보자던 우리는 걸음마부터 제대로 배워야 하는 테니스계의 신생아였다. 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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