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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켓만 휘두르면 되는 줄 알았지

by 체리봉봉 Mar 17. 2025

영하와 영상의 경계를 오가는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릴 만큼 격렬하게 뛰었다. 마음만은 꽃밭을 날아다니는 나비였지만 누가 봐도 밀림의 코끼리였다. 코끼리가 땀이 날 만큼 뛰었으니 솔직히 힘들었다. 선생님은 테니스 볼 머신으로 좀 더 연습하다 가라며 친절하게 제안했지만 바짓가랑이라도 잡힐까 싶어 얼른 테니스장을 나왔다.





누가 2배속 빨리 감기라도 한 건지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어기적거리는 날 보며 남편은 혹시 테니스장에 가기 싫어서 그런 거냐며 허를 찔렀다. 종이인형 출신이지만 고작 2회 수업만에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꿋꿋이 테니스장으로 향했다. 



3주 차 수업은 스플릿 스텝과 셔플 스텝 그리고 스트로크를 동시에 해보는 거였다. 선생님이 공을 던지는 순간 스플릿 스텝을 멈추고 셔플 스텝으로 전환해 공이 떨어질 위치를 찾아 라켓으로 정확히 맞히는 것이다. 지난 수업 스텝을 배우며 헤맸던 게 생각나 이번엔 남편을 앞세웠다. 남편이 하는 걸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실수 없이 완벽하게 공을 치는 게 나의 소심한 계획이었다. 이른바 타산지석 전략이랄까. 남편의 엉거주춤한 자세와 스트로크를 보며 여지없이 웃음이 났지만 마냥 웃고 있을 때는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라켓을 잡는 방법부터 지난 시간에 배운 스텝을 복기하며 남편의 그림자처럼 뒤에서 연습을 했다. 



드디어 내 차례였다. 공을 무조건 맞혀야 한다는 생각에 온 신경이 눈앞의 공으로 향했다. 포물선을 그리며 코트 구석을 향해 떨어지는 공을 따라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코 앞까지 쫓아와 라켓을 휘두르니 번번이 엇나갔고 공은 허망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다. 나는 잘못된 예로 등장할 만한 방법으로 공을 치고 있었다. 천천히 점프를 하며 이동할 준비를 해야 하는 스플릿 스텝에서는 복싱의 제자리 스텝 마냥 빠르게 뛰고 잔발을 써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셔플 스텝에서는 성큼성큼 걷는 듯 뛰었다. 뛰는 순간 이미 팔을 뻗어 라켓으로 공을 칠 준비를 해야 하는데 공 앞에 서서 느지막이 팔을 뻗으니 공과 라켓은 평행선처럼 만날 수 없었다. 테니스 공과 내 몸을 줄로 묶어둔 것도 아닌데 공 앞에 가까이 다가선 채로 라켓을 치니 시원하고 멋들어진 강력한 스트로크가 아니라 팔을 끝까지 뻗지 못하고 파리채를 휘두르는 것 같은 우스운 꼴만 연출됐다. 



운동장처럼 넓은 것도 아닌데 잠깐 사이에 숨이 차 헉헉거렸다. 공을 제대로 맞혔을 땐 개업식 날 상점 앞에 세워둔 풍선 인형처럼 몸이 휘청거렸다. 종이 인형에 이어 풍선 인형도 돼 보는 건가 싶었는데 뿌듯해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아 정신을 차렸다. 마음 같아선 상대 선수를 위협할 날카로운 스트로크로 멋지게 공을 날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허벅지와 팔에 힘이 빠져 이상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졌다. 약간의 과장을 더해 내 몸이 나동그라지지 않은 게 다행스러울 정도였다. 



옆 코트에서 레슨을 받던 청소년이 스트로크를 할 때마다 뻥뻥 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실내를 울렸다. 반면 내가 치는 공은 슈웅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금세 동력을 잃고 하강했다. 테니스 네트를 채 넘어보지도 못하고 갈 곳을 잃고 떨어지는 공은 마지막 잎새 같았다. 선생님은 공을 맞히는 것보다 정확한 스텝과 공과 몸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는 게 우선이라고 했지만 이미 바닥난 체력과 헛스윙으로 몸도 마음도 쭈글쭈글해졌다. 



프로 선수들이 테니스장에서 발 빠르게 뛰는 모습을 떠올리니 역시나 기본은 체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트너와 번갈아 레슨 받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운동선수들이 일찍 은퇴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선생님이 오늘도 더 연습하고 가라며 붙잡을까 봐 바닥에 빼곡히 깔린 테니스공을 얼른 카트에 주워 담고 급하게 테니스장을 나왔다. 한꺼번에 많은 땀을 흘려서인지 현기증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나는 이렇게 쉽게 쓰러질 수 없으니 다음 수업 전에는 꼭 밥을 두 그릇씩 먹고 오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옆에 선 남편은 벌게진 얼굴로 땀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밥 두 공기에 삼겹살까지 먹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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