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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팅 해야지

테니스 연습장에서 생긴 일 

by 체리봉봉 Mar 28. 2025

늘지 않는 실력에 우리는 이웃 동네에 있는 스크린 테니스 연습장을 찾았다. 볼 머신만있는 곳도 있었지만 남편은 스크린 연습장이 더 재미있다며 왕초보가 왕초보를 이끌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쾌적하고 깔끔한 실내 연습장이었다. 가운데 그물벽을 두고 두 개의 코트가 있었다. 동시간에 나란히 연습할 수도 있었지만 남편은 나의 자세를 봐주겠다며 한 개의 코트에서 번갈아 연습하기로 했다. 코트 옆에 앙증맞게 서 있는 터치 스크린에 레벨과 코스, 공의 속도와 높이를 선택했다. 벽면의 대형 스크린에는 예쁜 테니스복을 입은 가상의 테니스 선수가 초록 나무로 둘러싸인 청정한 코트장에 서 있었다. 그녀가 카트 옆에서 공을 한 개씩 던지는 모션을 취하자 볼 머신에서 테니스 공이 적절한 속도로 튀어나왔다. 포핸드로 공을 칠 때마다 스크린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고 야외 테니스장에 와 있는 듯 현장감이 극대화되었다. 닌텐도 스위치 스포츠를 하는 것 같았다. 정면을 바라보며 공이 나오는 족족 치기 바빴는데 나의 마음과는 달리 공은 네트를 제대로 넘지도 못하고 코트 밖으로 떨어져 줄곧 아웃되었다. 라켓과 공의 이른 만남으로 포핸드 스트로크의 성공률은 20퍼센트에 불과했고 게임하듯 즐거웠던 마음은 이내 실망감으로 뒤덮였다. 



남편과 주거니 받거니 어설프게 치고 있었더니 뒤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테니스장에 입장할 때 우리를 안내해 준 분이었는데 같은 건물에서 레슨도 하고 있단다. 사장님은 우리의 엉성한 스트로크를 보다 못해 코치까지 해주었다. 역시나 지적 사항은 한결같았다. 라켓 옆면 그러니까 스트링 중앙에 공을 맞혀야 하는데 너무 일찍 또는 너무 늦게 공을 맞혀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셔플 스텝 이후 발은 안정감 있게 멈춰야 하는데 내 발은 태엽을 잔뜩 감아 놓은 장난감처럼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손과 발의 협응이 이토록 어려운지 몰랐다. 운동을 하며 더 건강해지고 젊어지기를 바랐지만 네 살로 회귀할 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정신을 다잡고 다시 라켓을 휘둘렀다. 

"아!"

갑자기 눈앞이 하얘졌다. 불현듯 천장에서 뚝 떨어진 공이 나의 왼쪽 광대를 강타한 순간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도 깜짝 놀라 달려왔다. 남편은 괜찮아 보인다고 했지만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벽에 붙어있던 거울 앞으로 달려가 눈을 살폈다. 다행히 멍은 들지 않았다. 옆 코트에서 연습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창피할 새도 없었다. 눈이 아니라 광대에 맞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천장 그물 안에 있던 공이 갑자기 떨어졌나 싶었지만 그건 하늘이 무너질 확률과 비슷해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위로 올려 친 공이 다시 나에게 되돌아온 게 분명했다. 내가 던진 공이 다시 나를 맞히다니. 이건 재주다. 테니스를 요요처럼 할 줄 아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나는 갑자기 헛웃음이 났다. 





50분의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뿌듯함보다는 씁쓸함이 더 컸다. 첫 술에 배부르랴 싶지만 그래도 기분이 저하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빠, 내가 그렇게 운동 신경이 없는 거 같아?” 

“아니지. 그래도 공은 맞히잖아. 연습을 더 하면 돼.”



MBTI로 완벽하게 T인 남편이 웬일로 위로를 다 해주었다. 그런데 남편의 위로를 들으니 더 우울해졌다.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아까 맞은 부위에 멍이라도 들었을까 싶어 찬찬히 들여다 보았는데 왼쪽 광대 아래에 뭔가 보였다. 야속하게도 테니스 공 펠트 보풀 두 가닥이 여전히 붙어 있었다. 내 속도 모르고 화려한 형광 연두색 실은 화장실 조명 아래 반짝반짝 빛이 났다. 분명 연습장에서 다 뗐는데 끈질기게 집까지 따라오다니. 나는 보풀 두 가닥을 들고 방정맞게 남편에게 뛰어갔다.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건 분명 의미가 있다. 나는 멍 방지 차원에서 왼쪽 광대에 계란을 살살 굴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테니스와 나의 끈질기고도 특별한 인연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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