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서울을 여행한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나의 대학 통학길은 총 왕복 3시간, 편도로는 1시간 30분이 걸렸다. 김포에서 가는 방법으론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1. 집 → 영등포역까지 60번 버스(1시간) → 영등포역에서 수도권 1호선을 타고 온수역에 하차
2. 집 → 인천지하철 1호선 계양역까지 버스(30분) → 인천지하철 1호선 타고 부평역에서 수도권 1호선 환승 → 온수역에서 하차
(현재는 서해선 및 7호선 연장 개통으로 통학 시간이 40분가량 절감되었다. 배가 아프다.)
보기에는 1번 방법이 깔끔해 보일 수 있으나, 60번 버스는 난폭운전으로 악명이 높았고 서울 강서구와 영등포구 일대 정거장을 모두 정차했다. 멀미가 심한 나는 가끔 집에 갈 때만 1번을 이용하고 대부분은 2번 루트로 통학을 했다.
요즘은 모두 지하철에서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2011년 당시 나는 피쳐폰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에 책을 열심히 읽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었던 때를 말하자면 지하철로 통학했던 3년이었다. 나의 인문학적 교양을 만들어 준 고마운 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매일 오가는 통학길이 많이 지치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하루하루 서울을 여행한다고 생각하려 애썼다. 기차 여행 하면 떠올리는 낭만으로 책을 읽으며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내가 가는 통학 길에서는 책을 읽으며 수도권 1호선 지상철 구간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고 느끼면서.
부평역에서 온수역 지상철 구간 풍경은 회색빛과도 같았다. 전형적인 구도심 형태로 다닥다닥 언덕에 위치한 다가구 주택들, 빌딩 옥상에 붙어있는 대형 광고판들, 역사 내 복합 쇼핑몰과 지하상가들… 도시를 관찰하면서 각자 나름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또 지하철을 타면서 내가 관찰하는 것은 사람들의 옷차림이다. 서울에서 가장 중심부로 향하는 청춘들의 옷차림에서 유행을 읽고 따라 해보기도 한다.
이에 더해 수도권 1호선에서는 1호선만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지하철인 만큼 각종 지하철 빌런들이 탑승하여 날마다 기행을 벌이곤 한다. 노인들의 싸움은 1단계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구걸, 불법판매, 사이비, 돌발행동 등등 매일을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인생이 재미 없으면 1호선을 타면 된다. 1호선을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지하철’이라던데 덕분에 나는 그 어떤 지하철 노선을 타도 ‘1호선 보단 쾌적하다’며 천국이라 여기게 되었다.
이런 관찰력은 디자인을 하는 나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으니, 졸업작품을 만들 즈음에 <통학길 여행자들>이라는 책을 기획하기도 했다. 나 같은 장거리 통학생들을 인터뷰하고 풍경사진을 담은 책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매일 서울 ‘여행’하고 있다며, 어떻게든 버려지는 시간이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랄까. 환승할 때마다 쏟아지는 인파에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욕 한번 안 해봤다는 소리가 아니다. 집이 가까운 사람들이 귀가 후 남은 시간을 알차게 쓰고 있을 동안 나 또한 내게 주어진 시간을 나름 알차게 보내고자 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