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가 전혀 없는 순수하고도 잔혹한 그 질문
재수 끝에 어찌어찌 인서울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상위권 대학은 아니었기 때문에 지방에서 온 사람보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유독 많았던 것 같다.
새로 만난 사람들이 “어디 살아?”라고 물어보면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경기도 김포 살아.”
그럼 십중팔구 돌아오는 답은 이렇다.
“김포공항?”
답답하지만 나는 또 거기다 대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아니. 거기는 서울시 강서구야. 김포공항에서 30분은 더 타고 들어가야 해.”
’사실 김포공항도 김포였던 곳인데 60년도에 서울에 편입된 곳이라서 김포공항이라고 불러.‘라는 부연설명까지 붙이면 너무나 설명충(蟲) 같기 때문에 삼가기로 한다.
이어지는 그들의 잔혹한 대답.
“그럼 무슨 역이야?”
아. 머리가 띵해온다.
지금은 2019년에 개통한 김포골드라인이 있지만, 내가 대학에 다닐 당시에는 지하철이 없었다. “지하철이.. 없어...”라고 말하는 내가 괜히 작아진다. 대놓고 “지하철 없는 곳도 있어?”라는 말까지 들어버리면 나는 이제 숨이 막힐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란 대부분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표정관리를 어느 정도 하기로 한다.
김포에 지하철을 놓자는 얘기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예비타당성 조사 부족으로 인한 무한 재검토에 놓여 있다가, 5호선을 연장하겠다, 9호선을 연장하겠다, 경전철을 만들겠다 등 여러 논의가 오가는 탓에 근 20년간을 끌게 된다.
그래서 난 집 앞에 지하철이 있다는 느낌을 잘 모른다. 김포에서는 아무리 못해도 버스로 30분은 가야 서울에 있는 지하철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멀미를 달고 살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버스가 괴로웠는데, 세차를 자주 하지 않는 시외버스를 타게 되면 멀미가 도져버린다. 멀미를 하지 않는 지하철은 나에게 해방의 공간이자 꿈 그 자체가 되었다.
사실 지하철이 없거나 닿지 않는 경기도 지역은 아직도 많다. 수도권이 팽창하면서 지하철도 뻗어나가곤 있지만 모든 사람들의 집 앞에다 지하철을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지하철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너무 큰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김포에서 20년 동안 지하철이 없었다는 건, 도시가 20년 동안 정체되어 있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지하철이 있는 곳으로 이사 갈 형편은 전혀 안 되었기에 떠나지도 못하고 고여버린 도시에 싫증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지하철 역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작아지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