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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소담 Oct 27. 2024

계란 노른자와 흰자

이 프라이는 완숙으로 조리되었습니다

경기도민의 애환이 드디어 대중매체에 등장했다. 2022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경기도 산포시가상의 도시이나 작중에서 수원 근처라고 언급되는에서 살면서 왕복 4시간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삼 남매의 이야기를 담았다매일 아침 7시 이전에는 나와야 회사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고해가 지고 난 뒤 깜깜한 8시에 집에 도착하는 반복된 하루를 보낸다삼 남매 중 첫째 창희는 서울 강북에 사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난 뒤이런 말을 한다.     



걔가 경기도를 보고 뭐랬는줄 아냐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내가 산포시 산다고 그렇게 얘기를 해도 산포시가 어디 붙었는지를 몰라내가 1호선을 타는지, 4호선을 타는지어차피 자기는 경기도 안 살 건데 뭐 하러 관심 갖냐고 해하고많은 동네 중에 왜 계란 흰자에 태어나갖고...”  


―<나의 해방일지> 2화, 창희(이민기)의 대사 중



   

학교와 직장에 메어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안 그래도 내 시간이라는 게 부족한데이중 4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고 난 뒤 남는 건 저녁 8시 이후의 삶이다서울 사람은 퇴근하자마자 취미활동이든 동호회든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는 시간도 거리도 충분하겠지만경기도민은 이미 지친 몸을 이끌고 무언가를 하기엔 씻은 뒤 집안일 하고 남는 시간이 2시간뿐이다곧 잘 시간이 온다이런 삶을 매일 반복한다면 자아가 삭제되는 느낌이 든다.     


나 또한 경기도에 살 수밖에 없는 삶을 탓한 적이 많았다한편으로는 이런 내 마음이 노른자에게 느끼는 열등감이자 자격지심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그런데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자격지심을 느끼는 게 내 마음 문제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하게 됐다.


노른자들의 반론―같은 서울이라도 1시간 넘게 걸릴 수 있다을 듣기 이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수도권이라는 계란 프라이는 완숙으로 조리되어 왔다는 점이다흰 자는 절대 노른자가 될 수도 없다. 결코 터지지 않는 노른자는 흰 자의 삶 전반에 미치는 거대한 장벽이다. 인간 생활의 기초가 되는 신체적 능력, 체력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왕복 4시간 출퇴근을 마치고 책상에 앉아 자기 계발을 하려고 하니 잠이 쏟아지는 걸 나의 의지 부족이라고 탓해서는 안 된다. 요리할 권한을 가진 자들이 계란을 깨뜨려버리지 않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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