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원서 접수 - 그 후 우리가 할 일

by 따름

수능 날, 지인 한 분은 아이를 위해 정성껏 미역국을 끓여 도시락을 싸주었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국이기도 했지만, 혹여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 탓을 미역국(금기)으로 돌리고, 결국은 미역국을 끓인 '자신'이 모든 책임을 떠안겠다는 애틋한 고백이었습니다. 반면 또 다른 지인은 수능 무렵이면 '낙엽이 떨어진다'는 말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낙엽이 바닥에 찰떡같이 붙었네'라고 말해야 한다며,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골랐습니다.


상반된 두 모습을 보며 '나는 어느 쪽에 가까운 사람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 속에 깊이 들어가 상상해 보니, 결국 두 마음의 시작은 한 곳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방식만 다를 뿐, 자식을 향한 간절함이라는 본질은 같은 뿌리를 두고 있었으니까요.


2025년의 마지막 날. 대부분의 사람이 연말의 설렘에 들떠 있을 때, 저는 수능 정시 원서 접수 마감 시간을 지키느라 모니터 앞에서 분석된 종이 뭉치를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나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을 느낄 겨를은 없었습니다. 미역국을 끓이는 마음과 낙엽이 붙었다 말하는 마음, 그 이상의 긴장감을 느끼며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나름의 전략을 짜느라 공기는 몹시도 뜨거웠습니다.


아이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마우스를 잡은 손을 덜덜 떨며 지원 버튼을 클릭했습니다. 접수를 마친 뒤에도 혹시 오류는 없었는지 자신의 행동을 몇 번이나 되감기하며 확인하더군요. 입시는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단순한 관문을 넘어선, 온 마음을 다한 소망의 결정체였습니다.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잔인한 진실을 알기에, 그 갈망은 더욱 뜨거웠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합니다. 갈망이 지나쳐 집착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 스스로를 가만히 반추해 보았습니다. 소망과 집착의 경계선은 어디서부터 나뉘는 것일까. 나의 마음은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서부터는 간섭이자 집착이 되는 걸까. 시간을 나누기 위해 임의로 그어놓은 자오선처럼, 갈망과 집착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상상의 기준선이 우리 마음속에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마음의 지도를 더듬어 봅니다.


처음 원서 조합을 고민할 때, 아이들은 저마다 고수하는 학과나 학교가 있습니다. 하지만 소위 '배터리 칸수'라 불리는 합격 예측 데이터 앞에서 그 고집은 조금씩 무너집니다. 접수 마지막 날이 되면 처음의 희망은 잊힌 지 이미 오래입니다. 겪어보지 않은 이는 알 수 없을 겁니다. 그깟 배터리 칸수가 뭐라고 사람 마음을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으로 보내는지 말입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처음과 전혀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지원 대학을 바꾸더라도 그 선택에는 반드시 명확한 근거와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마지막 날 보이는 지원자 숫자에 동요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정한 기준에 합당한 지원이었다면 눈에 보이는 숫자에 현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흔들리지 않고 불안의 파도를 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작은 배에 올라타 아이와 함께 높은 파도를 넘고 드디어 육지에 도착한 기분이 듭니다. 원서를 접수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나름의 이유와 명분을 가지고 내린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요. 여전히 예상치 못한 변수는 존재하겠지만, 그 영역은 더 이상 나의 영역이 아닙니다. 이미 던져진 주사위를 보며 마음 졸이기보다, 나의 통제를 벗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겸허히 마음을 접기로 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심과 집착의 경계를 나누는 핵심일 것입니다.


이제 안절부절못하는 대신 묵묵히 기다려봅시다. 그리고 그다음 순서를 계획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일지도 모릅니다. 주역에서는 삶의 과업을 거스르거나 외면하려 하면 팔자가 꼬인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여 봅시다.


삶이 주는 답안지가 무엇이든, 쿨하게!


쿨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모습마저도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더불어 결과보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멋진 모습으로 기억되는 입시의 마무리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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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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