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대신해주지 않는다. 정시원서 공부합시다.
대입 원서를 접수하고 나면 끝없이 되돌아보게 된다.
'이게 최선이었을까?'
'저 학과는 어땠을까?'
'조금 더 알아볼걸...'
화장지를 살 때는 그러지 않는다. 필요한 그 순간 가장 빠르게 배송되는 곳에서 구매하고, 그 뒤로는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다. 우연히라도 더 싼 제품을 발견할 확률을 최대한 낮추는 것. 그것이 구매 만족도를 유지하는 나만의 전략이다. 그런데 어디 인생이 화장지 쇼핑과 같을 수 있겠는가. 특히 내 아이의 대입 원서를 접수하는 일이.
작년 수시를 쓰고 그랬다. 정시를 쓰고도 그랬다. 이미 날아간 화살,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내내 불안했다. 미련을 온 사방 천지에 흘리고 다녔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늘 사후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입은 한 번 결정을 내리면 되돌리기 어렵다. 되돌린다 하더라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시간과 노력에 비례한 결과를 장담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니 판단을 내리기 전에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100% 확신할 수는 없다. 폭탄인지 구멍인지, 데이터가 맞는지 틀리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근거를 가지고 원서 접수를 했다면, 결과를 받아들이는 마음도 후회와는 거리가 멀 수 있다.
원서 접수 전 필수 체크리스트
1. 대학별 환산점수 계산
자신의 점수를 각 대학 기준으로 변환해 보기
2. 작년 데이터 + 올해 특이사항 분석
과거 데이터만 믿지 말고, 올해 변수 확인
(모집인원 변화, 전형 방법 변경 등)
3. 안정-적정-상향 비율 조정
6장 중 최소 2장은 안정권 확보
4. 진학사 모의지원 일자별 경쟁률 확인
원서 마감 직전까지 경쟁률 변동 체크
5. 접수 후에는 더 이상 검색하지 않기
이것이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하다
입시는 성적순이 아니다. 오히려 심리전에 가깝다. 그러니 한두 곳의 데이터만 믿으면 그 데이터대로 결과가 나올 것이다. 많은 사람이 같은 데이터를 보고 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데이터 이면에 숨은 의도를 읽어야 한다. 누적된 과거 데이터를 분석하고, 올해 특이사항을 확인하여, '그렇다면 올해는 어떻게 될 것인가'의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 각 학교별 영역별 반영비율과, 과사탐 가산점 유무, 군이동 등을 파악해야 한다. 물론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최선을 다해 알아본 후 지원한 대학은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나 미련이 덜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대학이 수능 100%**로 선발하지만, 대학 및 모집단위별로 국어, 수학, 탐구 등 영역별 반영 비율이 크게 다름.
부모 마음에 아이의 점수가 10이면 10점으로 꽉 채워 갈 수 있는 대학을 보내고 싶다 생각한다. 9점이나 9.5점의 대학이라도 왠지 손해를 보는듯한 느낌이 든다. 10점을 꽉 채운 '안정' 카드 한 장에, 12~13점의 더 높은 점수를 요하는 대학에 상향 카드 한 장을 던져보고 싶은 것이 전국의 부모 마음일 것이다. 아직 합격증이 손에 쥐어지지는 않았지만, 점수상으로는 이미 안정권이기에 10점의 대학은 큰 만족감을 주지 않는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카드 한 장일뿐.
그런데 가장 먼저 발표가 난 10점짜리 대학이 불합격으로 뜬다면? 가장 10점 근사치로 꽉 채워 접수했으니 최초 합격이 뜨긴 어렵다. 그저 두 손 모아 '추가 합격이라도...' 하며 하루 종일 전화기만 들여다볼 뿐.
즉, 시험을 잘 보면 오히려 그것이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 시험을 잘 본 학생이 오히려 재수를 더 많이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
자신이 찍어본 최고점 = 평균이라 착각
한 번이라도 높은 점수를 받으면, 그것이 자신의 평소 실력이라 믿게 됨
그 점수보다 낮으면 손해 보는 느낌
더 좋은 대학, 더 인기 있는 과가 눈에 들어옴
합격해도 만족하지 못함 - '그때 그 점수였다면...'이라는 미련이 남음
자신의 실력을 실수라 포장 - '이번엔 실수했을 뿐, 원래 실력은 그게 아니야'
결론 : 시험을 잘 봐도, 못 봐도, 만족하지 못한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정시 합격생 중 재수생 비율이 61.2%**를 차지 (2020년~2023년 기준). **전국 의대 정시 합격자 중 재수생 비율은 77.5%**에 달함.
-출처:교육희망 등 언론 보도 (종로학원 등 사교육 기관 분석 포함)
과욕은 만족의 파이를 작게 만든다. '만족'이라는 파이는 내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1조각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냉동고가 터지도록 꽉꽉 채워 맛도 신선도도 떨어진 파이를 가지고도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 있다. 냉동고에 음식이 가득한데도 '먹을 게 없다'라고 말하는 바로 그런 상황이다.
글을 쓰며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스나이핑'이라는 썸네일에 이끌려 동영상 재생 버튼을 누르는 나를 발견한다. 저도 모르게. 말과 행동이, 글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고 있음을 느끼고 얼굴이 화끈해짐을 느낀다. 그저 글을 쓰며 조금이라도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내가 서 있는 위치와 한 치 앞을 가능한 한 '색안경'을 벗고 보려 노력한다. 색안경만 벗고 보아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며 정신을 차리려 애쓴다.
반면 아이는 어른보다 덜 때가 묻었다. 자신의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도 알며, 지나친 욕심도 없다.
문제는 부모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부모의 욕심이 아이의 만족을 가로막지 않도록. 10점 만점에 10점을 꽉 채우려다, 정작 아이가 가진 노력의 결과, 그 소중함을 놓치지 않도록.
대입은 화장지를 살 때처럼 할 수는 없다.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살 수도 없고, 반품을 할 수는 더더욱 없다. 내 아이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원서를 접수하기 전, 12월 지금부터 십여 일 동안 열심히 원서공부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일단 접수했다면,
자신의 선택을 믿자.
뒤돌아보지 않는 용기를 갖자.
주어진 결과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자.
그것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부모의 본보기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
그것이 아이 앞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