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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VS 정시

고등학교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이유

by 따름
제발 가능한 한 '수시'로 대학에 진학하길 바랍니다.


이 말이 다소 단정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 이유는 매우 명확합니다. 정시는 단 한 문제의 실수로 대학 레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극단적 경쟁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수능을 두번이나 치뤄본 형님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입니다. 상위권에서는 1문제 차이가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송두리째 흔들고, 그 결과 대학별 환산점수는 순식간에 다른 궤적으로 흘러갑니다. 그만큼 정시는 외부의 요인에 민감하고 예측이 어려우며 감정적 부담이 매우 큰 시험입니다.


수능이라는 불확실성

이 불확실성은 특히 수능 당일에 더 두드러집니다. 손끝과 다리가 떨리고, 마음속 작은 긴장조차 실수를 부르기 쉽습니다. 매년 평가원은 새로운 유형과 낯선 조합을 선보이며, 출제자의 의도가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단순히 '의지'만으로는 뚫을 수 없는 벽이 있는 시험입니다.

반면 내신은 학교별 출제 경향에 적응하면 점진적·안정적 상승이 가능하고, 현역에게는 현실적으로 더욱 실질적인 기회가 됩니다.


정시의 착각

아이들이 종종 정시를 더 '쉬워 보이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지금 당장의 내신 부담을 잠시 덮어두고 싶기 때문이고, 모의고사와 수능을 같은 시험이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먼 미래처럼 보이는 정시가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것이라는 낙관적 심리 때문입니다. 게다가 졸업생과 N수생이 함께 경쟁하는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현실입니다.

그러나 정시는 '범위 없음', '무한 경쟁자', '졸업생 포함', '파이의 고정'이라는 가장 가혹한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반면 수시는 생활기록부·내신·학생부종합전형 요소들을 기반으로 현역 고3을 중심으로 선발하는 구조이므로, 입시 구조 자체가 현역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수시의 중요성은 더더욱 분명해집니다.


2026 수능, 역대급 불수능의 현실

2026 수능을 보면 이러한 판단이 왜 합리적인지 더 선명해집니다.

국어 영역은 다시 '불국어'라고 불릴 정도로 난도가 높았습니다. 주요 입시업체들의 가채점 분석에 따르면, 국어 영역 1등급 컷은 언어와 매체 85점, 화법과 작문 89점으로 예측됩니다. 이는 지난해 수능 1등급 컷(언매 92점, 화작 95점) 대비 언매 7점, 화작 6점이나 폭락한 수치입니다.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은 146점으로 전년 139점에 비해 7점 상승했는데, 표준점수 최고점은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높아지는 지표입니다.

수학 영역은 전반적으로는 평이했으나 상위권 변별 문제가 분명 존재했습니다. 특히 확률과 통계의 난이도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1등급 컷이 89~92점 사이로 형성됐습니다. EBS 수험생 설문조사 결과, 44.6%가 '매우 어렵다'라고 답했는데, 지난해 같은 응답이 19.3%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체감 난이도가 크게 상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 영역은 절대평가임에도 1등급 비율이 3.8%로 예상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 6.2%보다 크게 낮은 수준으로, 영어 절대평가가 도입된 2018학년도 이후 1등급 비율이 3%대로 떨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종로학원의 추정에 따르면 이번이 역대 최저 수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탐구 영역은 과목 간 난이도 편차가 컸습니다. 특히 세계사의 경우 1등급 컷이 43점으로, 역사 과목에서 거의 50점을 진동하던 것과 비교하면 2015 개정 교육과정 이래 가장 낮은 등급컷을 기록했습니다.


수시와 정시, 숫자로 보는 현실

2026학년도 대입전형 통계를 보면 현실이 더 명확해집니다. 전국 195개 4년제 대학의 전체 모집 인원 34만 5179명 중 수시모집은 79.9%인 27만 5424명, 정시모집은 20.1%인 6만 9755명입니다. 수시 선발 비율은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수치로, 2022학년도 75.7%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습니다.

서울 주요 15개 대학은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이들 대학은 정시 선발 비율이 평균 41% 이상으로, 수시 이월 인원까지 감안하면 실제 정시 비중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이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수험생들이 선호하는 상위권 대학일수록 정시 비중이 높은듯 보이지만 함정은 이 비중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울대학교 수시 전형에서 수능 최저를 폐지하기도 하였습니다.


N수생이라는 변수

더욱 심각한 문제는 N수생의 증가입니다. 2025학년도 수능에서 N수생은 약 18만 1893명으로 전체 응시자의 34.8%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2004학년도 이후 21년 만에 최대 규모입니다. 의대 증원이라는 변수가 작용하면서, 고3 학생 수가 전년도보다 5.1% 증가했음에도 N수생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실제 성적 데이터를 보면 N수생의 강세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공개한 2025학년도 수능 성적 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어 영역에서 N수생의 1등급 비율은 7.5%로 재학생 2.9%의 2배를 넘었습니다. 수학 영역은 더 큰 격차를 보여, N수생의 1등급 비율은 8.1%로 재학생 2.3%의 3.52배에 달했습니다. 표준점수 평균도 N수생이 국어 108.9점, 수학 108.4점으로 재학생(국어 95.8점, 수학 96.2점)보다 각각 13.1점, 12.2점이나 높았습니다.

이는 현역 고3 학생들이 정시에서 N수생과 경쟁할 때 얼마나 불리한 위치에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전략적 선택의 시점

이 시점에서 지나친 낙관이나 비관은 모두 위험합니다. 지금은 가채점만 공개된 상태이며, 아직 나의 점수를 둘러싼 모든 변수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시기야말로 '해야 하는 일'을 명확히 알고 실행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남은 3장의 정시 원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전략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입니다:

대학별 정시 모집 요강 분석

가·나·다군별 지원 가능 대학 리스트업

대학별 환산점수 계산

수시 이월 인원 반영 규모 예상

진학사 모의지원을 통한 실시간 경쟁률 파악

원서 마감 직전까지 경쟁률 변동 확인


이러한 단계들을 따라가는 과정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정시라는 좁고 불확실한 길을 최대한 안전하게 건너는 방법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내신이 답이다

그래서 더욱 강조하고 싶습니다. 현재의 대입 구조에서 현역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수시 전형에서 일찌감치 합격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정시가 가진 구조적 리스크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처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실 대입이라는 긴 여정은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됩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생활, 환경, 성적, 기록은 온전히 입시 자료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느 고등학교가 좋은 학교일까요? 이미 결론은 나와 있습니다. 내 아이가 내신을 잘 받을 수 있는 학교, 그곳이 가장 좋은 학교입니다.

고교 선택의 본질도, 대학 입시의 본질도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신(神) 중의 최고 신은 언제나 '내신'입니다.


자퇴율이 말해주는 현실

올해는 이러한 현실을 증명하듯 고등학생의 자퇴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종로학원이 2024년 5월 학교알리미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3년 전국 2379개 고교에서 학업 중단한 학생은 총 2만 5792명으로, 전체 고교생의 2.0%에 달했습니다. 이는 최근 5년 새 가장 높은 비율입니다.

연도별로 보면 2019년 1.7%, 2020년 1.1%(코로나), 2021년 1.5%, 2022년 1.9%, 2023년 2.0%로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고1 학생이 9646명으로 전체 자퇴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내신이 전부라는 사실을. 그래서 내신이 흔들리면 다시 고1로 재입학하기도 하고, 자퇴 후 검정고시와 새로운 선택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수험생의 부모로서 이 현실을 지켜보고 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 대학을 가야 하는 걸까?"

이 질문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튀어나오는 질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창 시절의 낭만은 사라지고, '내신 잘 나오는 학교'가 최고의 학교가 되어버린 이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현실을 견디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을 통과한 아이들이 이후 이 사회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지, 때로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간판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라고 말하지만, 정작 모두가 그 간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현실은 그 말조차 허무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간판을 딴다는 건 단순히 '간판을 얻는 일'이 아니라 무언가를 간절히 향해 최선을 다해본 경험을 상징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한 번 끝까지 달려보는 경험, 자신의 한 시절을 전부 바쳐본 경험. 우리는 그 경험의 가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역시 결과에 마음이 쓰이고,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 한편이 무겁습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분명합니다. 지금 이 시스템 안에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철학적 고민이 아니라 구체적인 생존 전략입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의 메시지로 돌아갑니다.

가능한 한 수시로 대학에 진학하세요.

내신을 챙기세요.

고등학교는 내 아이가 내신을 잘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선택하세요.


이것이 통계가 말해주는, 데이터가 증명하는, 그리고 수많은 선배 수험생들이 경험으로 확인해 준 가장 현실적인 길입니다. 간판의 의미에 대해서는 각자가 판단할 몫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치열한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만큼은,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길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수시, 그것이 현역에게 주어진 가장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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