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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날 엄마는

by 따름
오늘은 수능을 보는 날이다.


그제는 수능날 도시락에 넣어줄 반찬을 미리 만들어 보았다. 수능이 다가오면 단연 검색어 1위에 "수능도시락". 엄마가 되면 그렇게 먹는 것에 온 마음을 쏟아붓는다.


아이는 며칠 전부터 매운 음식이나 새로운 음식, 자극적인 배달 음식을 스스로 멀리했고, 나 또한 자연스럽게 심심한 반찬 위주로 밥상을 차렸다. 평소엔 눈대중으로 간을 맞추던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짜지 않게 하려고 유난히 신경을 썼다. 거의 일 년간 아이는 먹는 시간과 자는 순서를 그대로 지키며 정해진 틀 안에서만 생활을 했다. 그렇게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오늘을 드디어 맞이했다.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 앞에 섰다. 떨리고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어젯밤 미리 끓여둔 소고기 뭇국은 약불에 올려 고기가 더 부드러워지도록 한다. 아이가 씻고 나올 시간까지 모두 계산하여 작은 솥에는 미리 불린 쌀로 밥을 짓는다. 또 다른 화구의 프라이팬도 미리 예열한다. 닭다리를 구운 뒤 간장 양념으로 조릴 예정이었는데, 미리 껍질을 바삭하게 구워 두어야 조림 후에도 식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닭의 한쪽 면이 노릇해질 즈음 모두 미리 계산한 타이밍에 맞춰 아이를 깨운다. 그저 이름을 나직이 부른 것뿐인데 아이는 벌떡 일어난다.


아이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 나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계란물을 푼다. 짭조름한 닭조림엔 언제나 달걀 스크램블이 가장 좋은 짝이니까. 노릇하게 익은 닭을 한입 크기로 잘라 양파와 파를 더해 볶는다. 양파에 윤기가 오르면 간장·맛술·굴소스·마늘·알룰로스·후추를 섞고, 소량의 물을 더한 양념을 자작하게 부어 약불에 조린다. 평소엔 간도 보지 않는 막무가내 엄마지만, 오늘만큼은 국도, 조림도, 계란도 모두 간을 본다. 살짝 짠 듯해 계란을 조금 더 풀어 스크램블을 한 번 더 만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씻고 나와 갓 지은 밥과 뜨끈한 반찬으로 아침을 먹는다. 아이 옆에 앉아 간이 맞는지 묻는다. 밥은 잘 익었는지 무는 너무 뜨겁지 않은지, 괜히 싱거운 질문을 한다. 싱거운 질문 하나하나에도 꼬박꼬박 대답을 해준다. 밥을 많이 먹으면 졸린다는 아이는 오늘도 밥을 조금 남긴다. 도시락에도 너무 많이 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도시락 뚜껑이 닫히지 않을까 걱정하는 나는 양을 줄였다가 늘렸다가 고민을 반복한다.


두통약과 소화제도 도시락과 함께 가방에 넣는다. 혹시 빠뜨린 건 없는지, 넣지 말아야 할걸 실수로 넣지는 않았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다.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남편은 내 뒤를, 그리고 아이 뒤를 조용히 몇 발자국 뒤에서 따라다니며 서성인다. 특별한 말보다 조용한 집안에 국이랑 밥향만이 가득하다.


아직 어둑어둑한 도로 위를 달리며 너무 춥지 않음에 감사한다. 옆자리에 앉은 아이손을 잡아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어제 잠시 뵈었던 담임 선생님께서는 밥을 먹자며 안아주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는 짧은 라이딩도 감사하다. 시속 30에도 순식간에 도착한 교문 앞에는 경찰분들과 응원 나온 분들로 묵직한 따스함이 흐른다. 어스름 밝아온 아침 햇살에 차에서 내린 아이의 웃는 얼굴이 보인다. 잠깐 내려 포옹해 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잠깐의 포옹으로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너무 잘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로 해줄 걸 그랬나. 들어가는 뒷모습을 더 보다가 올 걸 그랬나. 교문에서 좀 벗어나 차를 세우고 잠시 더 머문다. 겉과 다르게 요동치는 심장박동수도 진정시킬겸 유난히 더 밝아 보이는 학교 앞 초록색 신호등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본다. 다시 뛰어가면 멀리서라도 뒷모습을 볼 수 있을까 싶다가, 마음을 접고 조용히 집으로 향한다.


작년에는 싸주지 못했던 수능 도시락.
작년에는 손도 잡아주지 못했고, 포옹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 이렇게 해줄 수 있음이,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에는 꼭 한 번 해보고 넘어가야만 하는 일들이 있는 것인가.

인생 총량의 법칙 속에 ‘수능 도시락’도 포함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기도의 양에도 총량이라는 것이 있을까.

살면서 너무 많은 바람을 품고 기도를 올린다면, 그 총량의 한계에 이르는 시간은 빠르겠지.

과거의 나는 얼마나 많은 바람을 마음에 품고 살았던가.

오늘의 바램으로 그 총량이 넘쳐 흐르지 않길 바래본다.


작년 수능날, 나는 늦은 저녁까지 일터에 있었고, 도시락도 싸주지 못했다. 아이는 기숙학교에서 시험장으로 바로 이동했고, 학교에서 제공한 도시락을 먹었다. 고사장에 잘 들어갔다는 소식은 담임선생님과의 통화로 전해 들었었다. 덕분에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살았었다.


그러나 두 번째 수능은 역시 다르다. 그 무게감이 다르다.
시계를 혼자 들여다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한 기도를 올린다. 지금쯤 오롯이 혼자 그 무게감을 견디고 있을 아이를 떠올려본다. 말을 아끼고, 하루의 결을 최대한 낮추어 조용히 보내자 다짐도 한다. 퇴근도 아이의 시험 종료 시간에 맞춰 조정했다. 최대한 말을 적게 하고, 대신 조용히 글을 쓰고 책을 읽어야지. 마음속 파도가 너무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 조율해보려고 한다.


불안도 잠시 내려놓고, 내 마음의 수문을 활짝 열어 흘러가게 두려 한다.
억지로 가둬두지도, 끌어안고 버티려 하지도 않고, 지금 눈앞에 놓여 있는 사물과 순간에만 의식을 집중해 차분함을 유지해 보려 한다.


과한 긍정도, 과한 불안도
오늘만큼은 모두 흘러가도록
수문의 빗장을 조용히 풀어 두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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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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