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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위에 글 Nov 01. 2024

(1화) 길을 나서다

길 위에서 기억을 마주한다

“길 위에서

가을 내음에 이끌려

무심코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길의 뒤안길에서 아련한 기억을 마주한다.”     



길은 낯익은 길이거나 낯선 길이든 혹은 업무차 가는 길이거나 여행 길이든 혹은 혼자이거나 아니면 누군가 동행을 하든지 간에 기대감과 미묘한 설렘을 준다. 그 기대감과 설렘은 길을 나서게 하는 무언의 원동력이 된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로부터 전해온 모친상은 내가 생각하는 기대감과 설렘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지만 고향이라는 그리움, 혹은 아련함이 무작정 그 길로 나를 이끌었다. 


10월 하순의 새벽 고속도로는 기분 탓인지 자욱하게 내려앉은 안개 때문인지 아니면 빌어먹을 훈장처럼 따라온 노안 때문인지 뿌옇다 못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간헐적으로 차창을 부딪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뿜어내는 스산한 소리는 을씨년스러운 풍경과 맞물려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오는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듯한 묘한 긴장감을 돌게 하였다.  

아침이 되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라는 말처럼 새벽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갈수록 어두움은 더 짙어져 갔고, 그 어두움은 차 안까지 밀려들어 와 차가운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하물며 저속으로 주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오는 내내 지나쳐가는 차량은 손가락으로 뽑을 수 있을 만큼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고속도로에는 짙은 어두움과 함께 무거운 적막감이 내려앉았다. 


짙은 안개 때문이었을까? 긴장된 상태로 장시간 운전대를 잡아서 그런지 어느 순간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근육은 경직되고 뒷덜미는 뻐근해졌으며 눈은 따끔거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3시간 넘게 운전을 한 게 화근이었다. 여유가 없는 이놈의 성격이 문제였다. 문득 오래전에 아내한테 듣던 잔소리가 떠올랐다.


“좀 여유를 가지면서 살아요."


”휴게소도 들러서 맛난 것도 먹으면서, 그렇게 천천히 가면 되지... “


”인생 뭐 있다고..., 짧은 인생 즐기면서 살자고요. “


돌이켜 보면, 그렇게 살지 못한 이유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지금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에 잠식되어 몸에 자연스럽게 밴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되든지 간에 아내와 사는 동안 여유로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이 나를 휴게소도 들르지 않은 그저 그런 좀팽이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예전보다 시간도 많고, 나은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바뀌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어느 순간 그것이 익숙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애꿎은 익숙함을 탓하는 걸 보니 애초에 바뀌기는 그른 것 같다.


얼마나 더 달렸을까?


”전방 5km, ‘천명 휴게소’가 있습니다.”


“경로상 마지막 ‘휴게소’입니다.” 

내비게이션에서 안내 음성이 들려왔다. 얼마 가지 않아 옅어진 안개를 뚫고 ‘천명 휴게소’가 새겨진 표지판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명 휴게소’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의 지명을 딴 휴게소이다. 정말 오랜만에 들르는 것 같다. 어림잡아 7년은 족히 넘어 보인다. 그때는 선산에 모신 아버지를 산골(散骨) 하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방문했었다. 방문객이 적어서 그런지 식당도 많지 않았고 메뉴도 다양하지 않아 그냥 화장실만 들렀다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휴게소는 7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른 새벽 시간대여서 그런지 넓은 주차장에 비해 주차된 차는 많지 않았다. 휴게소 직원들의 차량을 빼면 실질적으로 방문객이 타고 온 차량은 대여섯 대 남짓 되어 보였다. 그리고 매장 안 불빛은 모두 꺼져 있었고, 오고 가는 사람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낙엽들은 버려진 쓰레기들과 레슬링이라도 하듯 뒤엉켜 바람에 요리조리 흩날리다가 어느새 경계석을 넘어 매장 앞까지 날아와 나뒹굴었다.  


화장실 입구에는 이곳 지명인 ‘천명’의 뜻을 나타내는 글귀가 새겨진 목각(木刻)이 큼직하게 걸려 있었다. 7년 전에 방문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 설치된 것 같았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확실하지는 않았다.  


‘천명(天命)은 타고난 운명이나 하늘의 명령이다.’ 

    

화장실 입구에서 우두커니 서서 목각을 올려다보면 마치 하늘의 입구,  혹은 지옥문이나 천국의 계단 초입에 서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 입구를 통과하면 신이 나의 운명에 장난질을 할 것 같은 묘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볼일을 보고 화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가득 채웠다. 핸드폰이 가리키는 시간은 6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고, 목적지까지는 10분 남짓 남았다. 족히 6시 15분 정도면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조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른 조문을 선택한 이유는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어렸을 적 우리 가족을 기억하는 동네 아저씨나 아주머니, 친구들과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였다. 언제부터인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기억도 희미하여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사람들에게 일일이 호구조사를 당하는 것도 싫었고, 취조를 당하듯 나에 대해 들은 가십거리성 소문에 일일이 대답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또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삶이 상대적으로 비교를 당하는 것도 싫었고, 하물며 감정도 없는 동정으로 인생을 다 아는 것처럼 내 인생에 끼어들어 훈수를 두는 것도 싫었다. 게다가, 나도 모르게 내 인생을 과장되게 포장하여 그 사람들에게 허풍을 떠는 모습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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