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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위에 글 Nov 01. 2024

(2화) 친구를 만나다

추억 속의 친구는 멋있다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그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기억의 모퉁이에서 추억의 한 페이지가 소환된다”      

    



아버지의 재가 뿌려진 산골 장소로 차를 돌렸다. 산골 장소는 내가 졸업한 중학교가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여기서 장례식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미리 챙겨 온 소주를 산골 장소 주변에 뿌려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를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냥 원망스럽기도 하고,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가급적 아버지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 모습처럼 괜히 눈물이 많아지는 것도 싫었다.  


장례식장은 ‘천명면’ 소재지의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있었다. 미리 준비해 온 조문 복장으로 갈아입고, 부고 문자에 적혀 있는 특실로 향했다. 특실의 입구까지 이어지는 복도의 양측에는 근조 화환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밀착된 상태로 서로 밀어내고 밀려나고 있었다. 더 이상 놓을 자리가 없는 듯 보였다. ‘근조 화환의 개수는 부와 성공의 상징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근조 화환을 보니 소문대로 꽤 성공한 듯 보였다.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가는 명길이와 마주쳤다. 명길이는 조금 어수선해 보였다. 수염은 덥수룩하고 인중과 턱선을 따라 억세게 자라나 있었다.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은 요 며칠 동안 감지 않았는지 떡이 져 있었다.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눈두덩이는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모습에서 슬픔과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오랜만에 보는 명길이었지만 나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명길이는 설마 이 시간에 조문객이 오겠냐 하는 생각이 커서인지 전혀 나를 의식하지 못하고 내 옆을 비켜 지나갔다. 비켜 지나가는 명길이를 붙잡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명길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명길아, 김명길”


명길이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연우, 차연우 맞제?”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는지, 잠시 망설이다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을 내밀면서 한 걸음에 다가왔다. 명길이는 고향은 떠났어도, 같은 생활권인 전라도 내에서 쭈욱 생활을 해서 그런지 말투에서 사투리가 섞여 나왔다. 


“엉, 잘 지냈어? 정말 오랜만이다.” 


명길이가 내민 손을 잡았다. 명길이의 손은 방금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온 것을 확인이라도 받고 싶은지 차가웠고, 건설 현장에서 다년간 다져져서 그런지 거칠고 단단했다. 악수만으로도 명길이가 살아온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얼마 만이여?”

 

명길이는 아직도 믿기지 않은지 한 손으로는 연신 눈을 비벼가며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명길이의 눈에는 반가움이 역력했다. 명길이는 흥분하거나 놀라거나, 혹은 긴장하면 오른쪽 눈 주변을 움찔움찔 떠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명길이의 오른쪽 눈 주변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었다. 


“참, 오래되었지.” 


명길이의 놀란 눈망울에 이끌리듯 명길이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우선 조문부터 하자” 

 

명길이는 잡은 손을 잡아당겨 나를 아주머니의 빈소로 이끌었다. 빈소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는 명길이 어머니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 영정사진 속 아주머니의 모습에는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다.    



명길이네는 우리 집 바로 앞집에서 살았다. 명길이 집과 우리 집 사이에는 비포장도로(흙바닥)가 되어 있었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전봇대들이 나란하게 세워져 있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학교를 가지 않은 날이면 비포장도로에 나와 종일 뛰어놀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명길이네 집은 옥상이 있는 주택으로 그때 당시에는 신식 주택에 속했다. 명길이 아버지가 땅을 사서 손수 지은 집이었다. 집이 너무 좋아 동네에서도  이쁘고 좋은 집으로 소문이 자자했으며 선망에 대상이었다. 명길이 부모님은 ‘과일 장사꾼’이었다. 도매로 저렴하게 과일을 떼다 5일장이 서는 날이면 장터에 가서 내다 팔아 차익을 남기는 일을 하셨다. 돈을 제법 많이 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명길이네 집에 가면 항상 먹을 게 많았다. 창고에는 과일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며칠 동안 집을 비우시는 날에는 남아 있는 자식들을 위해 많은 음식을 쟁여두고 가셨다. 뛰어놀다가도 허기가 지면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아니 무의식적으로 명길이네 집에 들러 허기진 배를 채우곤 했었다.    

  

조문을 마친 후 명길이와 함께 테이블이 놓여 있는 식사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테이블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저 상조회사에서 나오신 아주머니들이 조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주방 주변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식사 공간의 한쪽 구석에는 상복을 입은 몇몇이 고단한 몸을 누운 채로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배고프제?” 

 

명길이가 물었다. 

    

“아냐 괜찮아, 안 먹어도 돼”


밥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우리 엄니 생각해서라도, 한 숟가락 들어라”


“이모, 여기 한 사람분 차려주이소.” 


명길이는 '밥 생각이 없다'는 내 말에 서운했는지, 아니면 기분이 언짢았는지 약간 눈살을 찌푸리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재차 권했다. 그러고 나서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주방으로 고개를 돌려 아침을 주문했다. 

 

내 생전에 명길이랑 이렇게 다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고는 꿈에서라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여기에 혼자 사시는 것이 적적하다고 막내딸이 있는 부천으로 이사를 오셨다. 그게 얼추 25년은 넘은 일이다. 가끔 연락이 닿아 전화 통화를 하긴 하였으나, 아주 오래전 일이고, 그 이후로는 명길이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명절 때 고향을 내려가지 않았으니, 명길이를 만날 일도 없었던 것 같다. 


명길이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바로 산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원래 공부하기를 싫어했었고, 공부에도 소질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굴착기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여 그 해에 굴착기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 이후로 쭈욱 굴착기 기사로 일했으며,  지금은 10대 정도의 굴착기를 보유하고 있고, 직원도 20명이 넘는 어엿한 중소기업의 사장이 되었다. 


“연우야, 내가 갑자기 연락해서 놀랐제?”


“연락을 안 할라고도 생각했는디...”


명길이가 물었다. 그리고 말꼬리를 흐리는 것을 보니, 많은 고심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명길이와 나는 몇 년 동안 전화 통화 한번 없었던 사이였다. 


"아냐, 나도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연락해 줘서 고맙다."


"그리고 당연히 아주머니 가시는 길인데 내가 와야지"


명길이가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했다. 멋쩍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솔직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처음에 명길이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전화를 받을까 말까 고민도 했었다. 요즈음 갱년기인지 아니면 귀차니즘 때문인지, 모든 게 다 귀찮았다. 더욱이 몇 년 동안 연락을 하지 않던 사이라 명길이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엄니가 돌아가시기 전 병치레를 좀 오래 해 불었어, 한 5년?”


명길이는 쓴웃음을 짓더니, 살며시 눈을 감았다 땠다. 말하지 않아도 그동안의 아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얼굴 표정에 나타났다.  


“본인도 오래 못 사실 거 안 것이지, 그렇게 옛날이야기를 자주 해 불더라”


“그러실 때마다, 니 안부를 묻더라, ‘연우는 잘 지낸다냐? 그 녀석은 연락도 한 번 없다냐’”  


명길이는 아주머니의 말을 전하면서도, 나에 대한 서운함이 있었던 것 같았다. 어쩌면 아주머니를 빌려 자신이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명길이를 향한 미안함인지 아주머니에 대한 죄송스러움인지 만감이 교차하였다. 나이를 먹나 보다 사소한 일에도 자꾸 눈물이 난다. 


명길이 어머니는 다른 또래 동네 친구들에 비해 나를 유난히 이뻐해 주셨다. 내가 싹싹해서도 아니었다. 그건 명길이 때문이었다. 명길이는 어린 시절 지금 모습과 다르게 매우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그런 명길이를 좋아하는 친구는 거의 없었고, 유일한 친구는 오로지 나 하나였다. 그런 명길이의 상황을 이미 헤아리신 듯, 아주머니의 호의는 자신의 아들과 잘 지내라는 일종의 뇌물이었던 셈이다. 그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아주머니의 호의가 나쁘지는 않았다. 솔직히 좋았던 것 같다. 나 또한 아주머니의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의를 구하고, 받지는 않았지만 아주머니와 나는 무언의 합의를 하였고, 그렇게 모종의 거래는 학창 시절 내내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난 교우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뚜렷하게 단짝 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또한 명길이랑 노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명길이는 손재주가 좋았다. 아니 정말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다. 지금처럼 가지고 놀 물건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 다양한 놀거리를 뚝딱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명길이랑 함께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었다. 놀이를 하다가도 변덕스러운 내 의견을 광신도처럼 맹목적으로 따라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소심하다가도, 내가 다른 친구와 충돌하거나, 주먹다짐이라도 하는 날이면 앞장서서 내 편에 서서 나를 지지해 주는 그런 친구였다. 어떻게 보면 명길이 덕분에 그 시절이 더욱 행복했고 풍요로웠는지도 모르겠다.   

  

아주머니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그 시절에 대한 애틋함이었을까?, 아니면 명길이의 눈에 맺힌 아련함 때문이었을까? 잔뜩 붉어진 눈시울에는 주책바가지처럼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살짝만 건드려도 소나기 내리듯 쏟아질 것 같았다.  

    

“너 우냐?”


“자식,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시나들처럼 잘 우는 건 안 변했네”     


명길이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기도 아주머니 이야기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으면서, 내 눈시울이 붉어지니 순간 놀리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인 티슈 한 장을 뽑아 내게 건넸다.      


“아냐...”


말을 잇지 못했다.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명길이가 건넨 티슈를 받아 눈물을 닦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다. 그때까지 명길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명길이의 눈을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명길이의 눈에도 이슬이 맺히듯 눈물방울이 맺혔을 것이다.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슬픔은 상대방에게 쉽게 전이된다.‘ 는 말이 있듯이, 아마 나와 명길이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서 교감하여 서로 공유했던 기억들을 떠올리고, 한 사람의 슬픔은 공유했던 기억을 타고 다른 한 사람에게 전이되고,  이 과정에서 슬픔은 반으로 반감된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일 때쯤 문득 아저씨 생각이 났다.   

   

“아참, 아저씨가 안 보이시네”


“어디 계셔? 온 김에 인사라도 드리고 가야겠다.” 


무심코 던진 말이었는데, 명길이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집에 계시지”


명길이는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어제 여기에 계셨는디, 동생이 밤에 모시고 집으로 갔어” 

    

"엄니가 쓰러지신 후 이듬해에 급작스럽게 치매가 와서 요양원에 쭈욱 계셨거든"


명길이는 어두운 표정을 애써 감추려는 듯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명길이 아버지와 같이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를 모시는 자식들의 마음 또한 명길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경험은 아직 없으며, 가까운 미래에 나에게 닥칠 수 있는 험난한 여정일 수 있다. 


“그랬구나..., 그동안 네가 많이 힘들었겠다.” 


순간, 괜히 아저씨 소식을 물었나 후회가 몰려왔다. 


“어무니는 잘 계시지?”


“연세가 어떻게 되셨지? 우리 엄니랑 비슷하셨던 것 같기도 하네”     


화젯거리를 돌리기 위함인지 아니면 엄마의 근황이 궁금했는지 갑자기 명길이가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엉?"


"잘 계셔”


명길이가 갑작스럽게 엄마의 안부를 묻었다. 명길이의 상황을 듣고 나서인지 '엄마가 잘 계시다.'라는 말을 하고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네 소식 듣고, 내려오기 전에 엄마한테 전화를 드렸더니, 많이 안타까워하셨어.”


“네게 안부도 전해달라고도 하셨고”  


조문을 오기 전 엄마한테 부고 소식을 전하지는 않았다. 나도 모르게 명길이에게 순간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선의의 거짓말이라고는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명길이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엄마도 이곳을 떠나온 지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굳이 고향분들에 대해 궁금해하시지 않으셨고 내게 묻지도 않으셨다. 내 딴에는 친하게 지내셨던 아주머니의 부고 소식이 엄마에게 충격으로 다가올 것 같아 두렵기도 하였다. 죽음은 항상 일상 속에서 매 순간마다 일어나는 일이지만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일어나지 않으면 먼 나라 일과 같이 무덤덤해지는 것 같다.


“그래, 너가 어무니 잘 돌봐드리고, 사시는 동안이라도 쓸쓸하지 않게 잘해드려라”


“막상, 엄니를 보내고 나니, 그동안 못 해 드린 게 미안스럽고, 후회가 많이 되더라” 


명길이의 말을 듣고 있자니, 지난달 엄마 생신 때 막내누나 가족과 모인 이후로는 엄마를 찾아뵙지 못한 것 같다. 아마 한 달은 지난 것 같다. 서울에 올라가면 한번 찾아뵙고, 명길이 어머니의 부고 소식도 전해드려야겠다.


명길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테이블에는 음식이 차려졌다. 원래 평소에도 아침을 먹지 않은 습관이 있어서 그런지 장례식장에서의 이른 아침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그렇지만 명길이의 부탁도 있고, 그리고 먼 길 찾아온 친구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하고 싶은 명길이의 마음을 잘 알기에 꾸역꾸역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밥을 먹는 중에도 명길이는 이런저런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지만 귀에는 쏙 들어오지 않았다. 


“바로 서울로 가는 거여?"

     

밥공기가 다 비어 갈 때쯤 명길이가 물었다.     


“아니, 동네 한번 둘러보고 가려고,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고 해서...”


정말 이제 올라가면 다시 이 동네를 밟을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려온 김에 태어나고 자란 동네도 한번 둘러보고, 나만에 작별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가보진 못한 고향이 어떻게 변했을지도 궁금하고,  또한 이맘때 즈음 가을 들녘을 따라 무작정 걸으면서 적적한 마음을 달랬던 그 길을 다시 걸어보고도 싶었다. 


“그래 그럼, 오늘 와줘서 고맙다. 어무니 일 생기면 꼭 연락하고”


명길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짧은 순간이었지만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 그러자, 아주머니 잘 보내드리고, 가끔이라도 연락하고 지내자.” 

    

명길이가 내민 손을 잡고 짧은 작별 인사를 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명길이의 손은 따뜻했고, 부드러웠다. 

우리는 기약이 없는 인사치레인지 알면서도 서로 응원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명길이는 장례식장 입구까지 나와서 나를 배웅했다. 장례식장 밖은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내내 나를 괴롭힌 짙은 안개는 떠오르는 태양의 당당함에 밀려 어둠과 함께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하늘은 단풍을 시샘하듯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햇살은 옅어진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와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가을 내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서울과 다르게 이곳의 바람은 좋은 향기가 났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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