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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따뜻한 집밥-돼지고기 새우젓 두부찌개와 굴솥밥

서로에게 천사가 되고 있어요 - 집밥 수련 다섯 번째 이야기

by 민송


이번 주는 김장 특집이었어요. 우리 팀에서는 김치 대신 제주 청레몬으로 '레몬 김장'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레몬 큐브는 믹서기의 성능에 따라 곱게 갈기가 쉽지 않은데, 지난번 현진 씨네 집에서 먹었던 야채찜에 곁들인 레몬 큐브가 놀라울 만큼 부드러웠거든요. 성능 좋은 믹서기의 힘이었죠. 그 맛에 반한 우리는 만장일치로 다시 현진 씨 집에 모여 레몬 김장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날의 함밥 메뉴는 샤브샤브로 정했어요.

하지만 저는 급한 일이 생겨, 결국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고작 5번째 만남인데, 벌써 빠지는 게 아쉬울 만큼, 우리가 꽤 가까워졌나 봐요. 저녁으로 와인 삼겹살을 하려고 통삼겹을 사러 갔다가, 아쉬운 마음에 몇 덩이 더 담았습니다. 나가는 길에 현진 씨 집을 지나니, 맛있게 만들어 배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와인에 푹 익힌 수육을 만들고, 곁들일 부추, 양파, 오이를 손질했어요. 야채는 야채대로, 수육은 수육대로 통에 잘 담아놓고, 기름을 걷어낸 국물은 졸여서 소스로 함께 준비했어요. 어떻게 먹으면 좋을지, 작은 메모도 붙여 냉장고에 넣어두었습니다.


와인삼겹살


와인 삼겹살 레시피는 여기에 있어요.

https://brunch.co.kr/@becoming-min/65


다음날 외출하며 현진 씨네 집 앞에 살포시 두고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늘 즐거운 시간 되세요."

잠시 후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어요.

"천사가 몰래 다녀가셨어요."

그날 저는 와인 삼겹살 덕분에 잠시 '천사'가 되었습니다.

저녁 무렵, 식사 준비로 분주할 때에 팀장님께서 들르셨어요. 그날 만든 레몬 간 것과 큰 언니께서 가져오신 반찬까지 한가득 들고 말이에요. 우리 집에도 천사가 온 거죠. 되돌아온 따뜻함에 마음이 데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주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함밥의 의미가 이런 걸 까요?


5주차 함밥




이제 우리 집 남자들을 위해 제가 천사가 될 차례입니다. 요즘 부쩍 힘들어 보이는 남편을 위해 특별식을 준비했어요. 얼큰한 돼지고기 새우젓 두부찌개와 굴솥밥입니다. 솔직히 굴솥밥은 남편보다는 시부모님이 더 좋아할 법한 메뉴예요. 남편은 초딩 입맛이라 굴을 즐기지 않거든요. 의외로 10살 아들이 더 좋아했어요. 양념장에 슬쩍 비벼주니 싹싹 긁어먹더라고요.


돼지고기 새우젓 두부찌개


돼지고기 새우젓 두부찌개


짬뽕국물처럼 진하고 얼큰한 국물이 생각나는 날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추위에 떨었거나, 스트레스가 잔뜩 쌓인 날이 그렇죠. 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은 특히 겨울을 힘들어합니다. 퇴근 후 몸을 확 데워줄 매콤한 찌개를 끓여야겠다 싶었어요. 이 메뉴는 저자의 아버지께서도 살아생전 가장 좋아하셨던 음식이라고 합니다. 매운 음식을 즐기면 레시피 그대로, 저처럼 은근히 올라오는 매운맛을 좋아하시면 고춧가루양을 살짝 조절하면 될 것 같아요.


돼지고기와 양파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줍니다. 두부는 깍둑썰기, 대파도 송송 썰어서 준비합니다. 양념들이 많은데 바로바로 들어가야 하니 병째 꺼내어두면 좋아요.


달궈진 냄비에 아보카도 오일을 두르고 돼지고기를 넣어줍니다. 이때 굴소스를 반스푼 넣고 굴소스 향을 날려요. 불을 낮춘 뒤, 뚜껑을 덮어 익히다가 양파를 넣고 함께 볶아주세요. 고춧가루, 간 마늘, 생강즙, 새우젓(추젓)을 넣고 볶아요. 돼지기름과 고춧가루가 만나서 자연스럽게 고추기름이 나옵니다. 까나리액젓과 연두도 넣어주세요.


고기가 익고 양파가 투명해지면 물을 붓고, 두부와 새우젓을 넣어요. 끓기 시작하면 마지막으로 대파를 넣습니다. 이때 고추기름이 있으면, 한 스푼 넣으세요. 풍미가 더 살아난데요. 저는 대파까지만 넣었는데도 충분히 감동적인 맛이었습니다. 끓을 때 올라오는 거품은 잘 걷어내 주시고, 고기가 충분히 익게 불을 낮춘 뒤 10분 정도 뭉근하게 끓여줍니다.


진하고 매콤한 국물은 겨울이면 더 맛있나 봐요. 똑같은 레시피로 봄에 만들었을 때 보다 이번에 끓여주니 반응 자체가 달라요. 남편은 매워하면서도 너무 맛있다며 숟가락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맛있는 밥 한 끼가 잠시나마 하루의 피로를 싹 잊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돼지고기 새우젓 두부찌개

[재료]

돼지고기 400g (기름기가 있는 목살, 삼겹살, 또는 앞다리살)
양파 중간 크기 1개 (200~250g)
두부 400~500g (찌개용 부침용 모두 가능)
엑스트라버진 아보카도 오일
굴소스 1/2T
고춧가루 3T
간 마늘 1T
생강즙 1t
까나리액젓 1T
새우젓 2T
연두 1T
대파 2대
물 700~800ml (두부 양에 따라 조절)

[만드는 법]

1. 냄비에 엑스트라버진 아보카도 오일 또는 라드유를 두른다.
2. 1cm 정도로 얇게 썬 돼지고기에 굴소스를 둘러 익힌 후 굴소스 향이 날아가면 손질한 양파를 넣고 볶는다.
3. 고춧가루, 간 마늘, 생강즙, 까나리액젓, 연두를 넣고 더 볶는다.
4. 고기가 익고 양파가 투명해지면 물 700~800ml를 붓는다.
5. 두부와 새우젓을 넣는다.
6. 팔팔 끓기 시작하면 채 썬 대파를 넣고 불을 줄여 10분 이상 뭉근하게 끓인다.

애리의 인생 레시피 p. 165



굴솥밥


굴솥밥


겨울은 굴의 계절입니다. 굴국, 굴밥, 굴전, 굴무침, 굴튀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어요. 그중에서도 굴솥밥은 굴을 가장 부담 없이, 또 가장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메뉴라 좋아합니다. 굴과 찬밥만 있으면 뚝딱 만드는 초간단 솥밥이지만, 맛은 결코 간단하지 않아요.


분량의 재료로 양념장을 먼저 만들어 둡니다. 그리고 재료를 준비할 거예요. 생굴은 옅은 소금물에서 살살 씻어줍니다. 터지지 않게 2~3번 반복해요. 무는 채 썰고, 쪽파는 송송 썰어 주세요. 저는 부추가 있어서 쪽파 대신 부추를 사용했어요. 찬밥은 데워서 고슬고슬한 상태가 되면 조리하기 좋아요.


달궈진 냄비에 버터를 넣고 굴을 볶습니다. 이때 굴은 다 익히지 않고 겉면만 익을 정도로 살짝 볶은 뒤 그릇에 덜어놓아요. 그 냄비에 바로 무채를 넣고 까나리 액젓도 넣고 볶아주어요. 무가 투명해지면 그 위에 찬밥을 펼치고 그 위에는 아까 익혀놓은 굴을 올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쪽파를 듬뿍 올린 뒤 뚜껑을 닫고 중 약불에 5분 정도 둘게요. 다 되면 밥을 잘 섞고, 참기름과 통깨를 뿌리면 완성입니다. 그대로도 맛있고 양념장에 비벼 먹으면 계속 입으로 들어가니, 진정한 밥도둑이에요.

굴솥밥

[재료]
생굴 250g
찬밥(햇반 가능) 300g
무 200g
버터 20g
쪽파 60g
애리부엌 까나리 액젓 1T

[양념장]
고춧가루 1T
멸치육수 3T (없으면 정수 물로 대체 가능)
알룰로스 2T
진간장 3T
멸치액젓 2T (까나리 액젓 가능)
참기름 1T
통깨 1T
다진 청양고추 1T
식초 1/2T

[만드는 법]
1. 생굴은 옅은 소금물에 2번 정도 터지지 않게 헹군다.
2. 무는 가늘게 채 썬다.
3. 쪽파는 송송 썰어 놓는다.
4. 냄비를 달궈서 버터 20g을 넣고 굴을 겉면이 익을 정도까지만 살짝 볶아 건져낸다.
5. 그 자리에 무채를 넣고 까나리 액젓 1T를 넣어 눋지 않게 불을 줄여 볶는다.
6. 무라 살짝 투명해지면 찬밥 300g을 넣고 그 위에 볶아 놓은 굴을 올리고 쪽파를 올려 뚜껑을 닫고 중 약불에 5분간 둔다.
7. 저어서 먹기 전에 참기름 1T와 통깨를 뿌린다.

- 레시피 출처 : 유튜브 채널 ‘애리부엌’




김장은 여전히 자신이 없어요. 해마다 김장철이 돌아오면, 마음 한편이 무거워집니다. 이제는 친정 엄마께 얻어먹는 것도 죄송스러워요.

"내년에는 꼭 내가 해봐야지"

매년 다짐하지만, 올해도 그냥 지나가나 봅니다. 언젠가는 김장도 하게 되겠지요. 맛있는 김치를 담가 엄마에게 보내드리는 것이 제 작은 꿈입니다.

지금의 저는 깍두기와 겉절이만 간신히 흉내 내는, 조금은 부족한 주부예요. 그래도 매일 차리는 밥상만큼은 늘 최선을 다합니다. 애쓰는 남편에게 말로 못하는 응원을 좋아하는 반찬으로 조용히 건넵니다. 아이를 향한 엄마의 걱정과 우려는 잔소리 대신 영양 가득한 밥으로 대신합니다. 맛에는 자신 없어도 정성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어요. 두 번의 집밥 수련을 통해 배우고 익혀온 건강한 레시피들 덕분입니다.

지금은, 일단 밥으로 가족들에게 천사가 되어보려 합니다. '엄마'하면 매일 먹는 따뜻한 집밥이 떠오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집밥 수련과 함밥을 통해 천사들을 만나게 된 것도 참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일까요.

왠지 올겨울은 예년보다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더 단단하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천사가 오고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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