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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비빔밥과 묵은지 볶음, 담백함으로 차린 한 끼

언니들의 '냉장고를 부탁해' - 집밥 수련 네 번째 이야기

by 민송


유명인의 냉장고가 통째로 스튜디오에 등장합니다.

카메라가 냉장고 구석구석을 훑고,

셰프들은 그 안에서 재료를 고른 뒤,

근사한 요리를 뚝딱 만들어 냅니다.

단 10분 만에요.


이것은 [냉장고를 부탁해]. 제법 오래된 예능 프로그램이지요.


이번 주 우리 함밥 이야기도 ‘냉장고를 부탁해’입니다. 이번 밥 모임은 백일 된 막내 아가네 집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아기를 데리고 외출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이모들이 출동하기로 했어요. 원래 미션은 그 집 냉장고를 털어 요리를 하는 것이었지만, 지난번 포트락이 너무 좋아서 오늘도 각자 음식을 하나씩 만들어 오기로 했습니다.


"어떡하죠? 민우가 아파요. 감기에 옮은 것 같은데, 저희 집에 오셔도 괜찮을까요?"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다른 엄마들에 대한 현진 씨의 배려였어요. 하지만 모두의 걱정은 아기의 컨디션에 있었습니다. 혹시나 열이라도 오르면 지난주처럼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하고, 민우의 상태를 지켜보았죠. 다행히 민우는 잘 이겨냈고, 예정대로 현진 씨네 집에서 모이기로 합니다. 아픈 아이를 케어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못 잔 현진 씨는 갈비탕을 하겠다고 했어요.

"핏물만 빼놔요, 나머지는 우리가 가서 할게요. 오늘은 '냉장고를 부탁해'니까."




전날 만들어 둔 육전을 챙기고, 영양 부추 무침을 해서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도착하니 다크 써클이 눈 밑까지 내려온 현진 씨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 한쪽이 짠했어요. 아들이 민우만 할 때의 제 모습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죠. 들어가자마자 현진 씨의 티셔츠부터 하나 빌려 입고, 슬링을 한 뒤 바로 민우를 안았습니다.

"민우야, 오늘은 이모와 함께 놀자."


냉장고를 부탁해, 아기도 부탁해


제가 아기를 돌보는 사이, 팀장님과 큰언니는 부엌을 접수합니다. 아침에 현진 씨가 올려놓은 갈비탕이 이미 끓고 있었고, 팀장님은 냉장고에 잠들어 있는 야채들을 꺼내 야채찜을 만들어 주셨어요.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한 명 한 명 음식을 들고 모였습니다. 다 모이니 어느새 또 잔칫상이 차려졌어요. 각종 밑반찬과, 육전, 수육, 두 가지 솥밥, 갈비탕, 야채찜까지. 우리의 두 번째 함밥이었습니다. 현진 씨를 비롯한 아기 엄마들이 한 끼라도 제대로, 맛있게, 천천히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두 번째 함께 하는 집밥



육전과 영양부추무침의 레시피는 여기에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ecoming-min/72





백색 비빔밥


백색 비빔밥


상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차린 두 번째 함밥을 하고 오니, 언젠가 꼭 함께 하고픈 메뉴가 생겼습니다. 바로 '백색 비빔밥'이에요.


흑백요리사에 나와 알려진 '통영식' 비빔밥입니다. 바닷가 지역의 음식답게 해산물이 듬뿍 들어갑니다. 나물은 볶지 않고 찜처럼 조리되고, 해산물의 감칠맛이 나물의 간까지 책임지는, 정말 깔끔하고 담백한 건강식입니다. 신기하게도 맛도 있어요.


모든 야채는 채 썰고, 해산물은 다집니다. 냄비에 들기름을 넣고 해물을 볶다가 분량의 물을 붓고 액젓과 간 마늘로 간을 하고 끓입니다. 바글바글 끓으면 야채를 그 위에 돌려 담아요. 뚜껑을 덮고 중불로 낮추고 찌듯이 조리하는 게 포인트인 것 같아요. 냄비 하나면 끝나는 요리입니다. 5-7분 지나면 불을 끄고, 따뜻한 밥 위에 야채들을 하나씩 담아요. 해산물은 토핑처럼 올립니다. 들기름과 통깨를 뿌려 먹으면 양념장이 필요 없을 만큼 맛있어요.


백색 비빔밥

[재료]
애호박 200g(1개)
무 200g (작은 무 1/2개)
당근 200g (중 1개)
콩나물 200g
조갯살, 새우살, 홍합살 등 300g
물 150ml
까나리액젓 1T
간 마늘 1T
참기름 또는 들기름 3T

[만드는 방법]
1. 야채를 모두 채 썬다.
2. 해물을 다져 들기름 또는 참기름 3T에 물 150ml를 붓고 까나리액젓 1T, 간 마늘 1T를 넣고 끓인다.
3. 바글바글 끓으면 채 썬 모든 야채를 돌려 담고 뚜껑을 덮어 불을 중불로 줄이고 5분~7분 정도 둔다.
4. 밥 위에 야채를 돌려 담고 아래 있는 해물을 떠서 가운데 고명으로 올리고 국물과 같이 곁들인다.
5.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통깨를 뿌려 비벼 먹는다.

- 레시피 출처 : 유튜브 채널 '애리부엌'




묵은지 볶음


묵은지 볶음


김장철이라 바쁘지만, 작년 김치나 묵은지가 남았다면 꼭 해 먹어야 할 메뉴가 있습니다.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만드는 묵은지 볶음입니다. 담백한 백색 비빔밥과도 딱 어울리는 반찬이에요. 어렸을 때 싫어했던 들기름 향이 요즘은 이렇게 향긋할 수 없네요.

먼저 묵은지 반쪽을 헹궈주세요. 오래된 묵은지는 찬물에 좀 담가 놓는 것도 좋아요. 물기를 꼭 짠 뒤, 먹기 좋게 썰어줍니다. 묵은지를 알룰로스, 마늘, 들기름, 연두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 놓을 거예요. (김치가 많이 시면 알룰로스가 더 들어가야 해요.) 알룰로스는 신맛을, 연두는 묵은 맛을 없애 준데요. 대파는 송송 썰어요. 프라이팬에 아보카도유를 뿌리고 대파를 넣어 파기름을 낸 뒤. 밑간 해 놓은 묵은지를 넣고 함께 볶아줍니다. 수분이 없어질 정도로 볶아지면, 넓은 곳에 펼쳐서 식혀주세요.


묵은지 볶음

[재료]
묵은지 반쪽
알룰로스 2T
들기름 3T
아보카도유 3T
마늘 1T
연두 1T
대파 1대

[만드는 방법]
1. 묵은지 반쪽을 먹기 좋게 썬다.
2. 대파 1대를 송송 썬다.
3. 썬 묵은지에 알룰로스, 마늘, 들기름, 연두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 놓는다.
4. 프라이팬을 달군 후 아보카도유 3T를 붓고 썬 대파를 넣어 파기름을 낸다.
5. 프라이팬에 무쳐놓은 묵은지를 넣고 함께 볶는다.
6. 수분이 거의 없어질 때까지 충분히 볶는다.
7. 넓은 곳에 펼쳐 식힌다.

- 레시피 출처 : 유튜브 채널 '애리부엌'




백색 비빔밥과 묵은지 볶음은 겨울에 딱 어울리는 한 끼였어요.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도, 아이도 모두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 역시 원래 떡볶이나 쫄면 같은 매콤한 음식을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고 건강을 생각하다 보니 미각이 조금씩 깨끗해지는 것 같아요. 이제 몸은 자연스럽게 자극적인 맛을 찾지 않습니다. 슴슴한 듯 하지만 깊고,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맛. 그런 음식들이 더 좋아졌어요. 아마도 그런 음식들을 먹으면 속이 편안하다는 의미도 되겠지요.


부모님께도 해드리고 싶고, 함밥 모임에서도 나누고 싶고, 아끼는 지인들을 초대해서 대접하고 싶은, 그런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음식에는 늘 이유가 있습니다. 양념의 꾸밈없이, 그저 심플하지만 몸과 입이 모두 즐거운 음식을 함께 먹고 싶어요. 이런 맛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 덕에 살 맛 나는 요즘이에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이어주는 이 신기한 인연이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부엌에서 행복이 만들어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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