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비빔밥 데이 - 집밥 수련 세 번째 이야기
풍성하게 차려진 상 위에 잘 비벼진 비빔밥과 따끈한 국이 놓였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 먹어요."
인사가 오가는 사이, 모두 각자의 취향대로 첫 숟가락을 뜹니다.
입안에 한입 가득 음식이 들어오자마자 미간부터 살짝 구겨졌어요.
다들 따뜻하고, 행복한 좋은 표정이었습니다.
분명 '나물 한 가지씩'만 준비하기로 했는데, 어느새 여러 밑반찬과 건강한 디저트까지 더해졌습니다. 각자의 집이었더라면 혼자 대충 때웠을 평범한 점심이, '함께'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푸짐하고 화사해질 수 있다니요. 감탄사와 웃음이 끊이지 않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잠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백일 된 둘째 아기를 안고 들어선 현진 씨는 아이를 담요 위에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밥상을 바라봤어요.
"아.. 이렇게 귀한 밥상을.. 누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본지가 언제인지.."
담담하게 내뱉은 그 한마디가 모두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다들 빨개진 눈으로 멀리 산을 바라보다가 서로에게 티슈를 건넸지요. 맛있게 비벼진 비빔밥 앞에서 우리는 울면서, 또 웃었습니다.
그날은 우리의 '첫' 함밥(혼밥의 반대, 함께 먹는 밥) 데이였고, 장소는 우리 집이었어요. 사적인 공간을 누군가에게 오픈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집은 아들의 꼬마 손님들이 늘 드나들고, 명절을 대비해 수저와 그릇도 넉넉히 준비된 곳이라, 함밥의 장소로 딱이었어요. 특히 아기가 누워있을 만한 장소가 확보되니까요.
이번 팀 미션은 '비빔밥'. 각자 나물 하나씩을 맡았고, 호스트인 저는 들고 오기 무거운 밥과 국을 준비하기로 했어요. 무슨 국을 끓일까. 국은 멸치육수만 있으면 금방 끓일 수 있으니, 멸치 똥부터 따면서 머리를 굴려봅니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잘 어울리는 국을 끓이고 싶었어요. 저는 날이 추워지거나 몸이 아프면 뭔가 뜨끈하고 묵직한 걸 찾게 되더라고요. 누군가는 남편처럼 얼큰한 국물이 생각나겠지요. 고민 끝에 두 가지를 끓이기로 했습니다. 깊고 고소한 버섯 들깨탕, 맑고 얼큰한 명란 순두부. 각자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게.
버섯 들깨탕
버섯과 들깨라니 이름만 들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죠? 어렸을 땐 버섯도 들깨도 별로였지만,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들기름에 버섯을 지글지글 볶다가 진한 멸치육수를 붓고, 새우젓과 멸치액젓으로 간을 맞춥니다. 대파의 개운한 아삭함을 더하고, 들깨가루와 찹쌀가루로 묵직함을 채우면 완성이에요.
걸쭉하고 뜨끈한 국물이 몸속 깊은 곳까지 데워주는 느낌입니다. 어렸을 때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제겐 '원래부터 좋아하던 맛'처럼 느껴져요. 밖에서 춥고 지친 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런 국물이에요.
버섯 들깨탕
[재료]
생표고버섯 4개 (마른 표고버섯은 불려서 사용)
느타리 또는 만가닥 버섯 150g
들기름 3T
멸치육수 600ml (없는 경우 물로 대체 가능)
애리부엌 멸치액젓 1T
애리부엌 육젓 1T (육젓이 없는 경우 추젓 1T 또는 멸치액젓 1T로 대체 가능)
들깨가루 6T
찹쌀가루 1T (수북이)
대파 1/2 대
[만드는 법]
1. 생표고인 경우 물에 씻지 말고 접은 면포로 깨끗이 턴다.
나머지 버섯은 씻어서 먹기 좋게 찢는다. (모든 버섯 가능)
2. 표고는 채를 썬다.
3. 냄비를 달구어 들기름 3T와 모든 버섯을 넣어 볶는다.
4. 잠시 뚜껑을 덮어 익힌다. (들기름이 거품이 일어날 때까지)
5. 뚜껑을 열고 멸치육수 (없을 땐 물) 600ml를 넣는다.
6. 육젓 1T, 멸치액젓 1T를 넣고 뚜껑을 닫고 끓인다.
7. 대파 1/2를 어슷 썬다.
8. 끓으면 대파를 넣고 들깨가루 6T, 찹쌀가루 수북이 1T를 넣고 불을 줄여 2~3분 더 끓인다.
tip. 팽이버섯은 볶지 말고 나중에 넣는다. (미리 볶으면 질겨져요.)
애리의 인생 레시피 p.176
명란 순두부
자극적인 맛이 당기는 날도, 맑고 깔끔한 맛이 필요한 날도 있어요. 그럴 땐 라면 대신 명란 순두부를 끓여보세요. 버섯들깨탕보다 훨씬 간단합니다. 재료만 준비해 두면, 냄비에 육수와 모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끝. 그런데도 신경 써서 끓인 맛이 나는 게 신기해요.
감칠맛, 매콤함, 순두부의 부드러움이 어우러져 숟가락을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랑 먹을 거라면 고춧가루를 생략해도 충분히 맛있어요. 맑게 끓여 애들 몫을 덜어놓고, 고춧가루를 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예요.
명란 순두부
[재료]
순두부 또는 연두부 500~900g
백명란 100g
멸치육수 600ml
고춧가루 1/2T
새우젓 (육젓 또는 추젓) 1/2T
다진 마늘 1/2T
다진 대파 3T
[만드는 법]
1. 냄비에 멸치 육수를 붓고 고춧가루, 새우젓, 다진 마늘, 백명란, 순두부 또는 연두부를 모두 넣고 끓인다.
2. 중간에 대파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애리의 인생 레시피 p.170
나물은 '하나씩'이라고 했지만, 다들 기본 두 가지 이상을 준비해 오셨어요. 손은 또 어찌나 큰지, 한 끼로는 다 먹기 어려운 양이었습니다. 남은 나물과 반찬은 통에 담아 각자 집으로 보내면 좋을 거 같았어요. 먼저 온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상을 세팅하고, 팀의 큰언니는 두 팔을 걷어붙여 커다란 양푼이에다 비빔밥을 비비기 시작했어요.
비빔밥이란 참 묘해요. 뭔가 하나가 부족해도, 일단 비벼놓으면 실패 확률이 거의 없는 음식이니까요. 참기름 주르륵 '마지막 한 방울'이면 완성입니다. 고추장을 넣지 않았는데도 간이 어찌나 딱 맞던지. 그날의 비빔밥은 정말 놀라울 만큼 완벽했어요.
남은 나물과 반찬은 골고루 나눠 담아, 그날 각 집의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든 한 끼가 또 다른 따뜻한 한 끼를 만들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자 밥상 인증샷이 마구 올라옵니다. 마치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았어요.
따뜻한 비빔밥 한 그릇이 우리를 울렸던 날.
그날 우리가 나눴던 마음은 일상 속의 작은 밥상 위로, 그리고 앞으로 남은 다섯 번의 함밥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겠지요. 어떤 음식들이 모이고 어떤 스토리가 이어질지 기대하며, 우리는 각자의 주방으로 돌아가 오늘도 밥을 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