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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집밥 수련 일지 시즌2 - '함께 나누는 집밥'을 시작합니다

by 민송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솥에서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갓 지은 밥을 소복이 담습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를 뚝배기째 상에 올리고,

아삭아삭 잘 익은 김치를 썰어 오목한 그릇으로 옮겨요.


밥, 찌개, 김치.

이 세 가지면 별다른 반찬 없이도 한 끼 뚝 딱 할 수 있는, 한국인의 집밥이에요.


저는 독립 후, 오랫동안 집밥을 해 먹지 않았습니다.

한식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 당시 제 인생에서 밥이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거든요. 두바이에서 지내던 시절, 부모님이 다녀가신 때를 제외하곤 쌀을 사본 적도 없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는 친구가 1인용 밥솥을 건네며 말했죠.


"민송아, 제발 이제 밥 좀 해 먹어. 건강해야지"


그래도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집엔 주로 과일이나 시리얼 같은 간단한 음식만 있었고, 제대로 된 끼니는 늘 밖에서 해결했어요.


그러던 제가, 가족이 생기며 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학 시절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남편이 안쓰러워 밥상을 차렸습니다. 그는 극강의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집밥의 가치를 잘 모릅니다. 지금도 그래요. 그럼에도 저는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은, 내 마음이면 되니까요.


우리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엄마가 만든 이유식과 유아식을 거쳐 지금은 함께 밥을 먹습니다. 예전엔 '맛있는 집밥'이 목표였어요. 잘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다 몇 년 전, 시아버님께서 폐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두 집의 밥상을 챙기기 시작했어요. 쉽지 않았습니다. 혹여나 맛이 없을까. 입맛에 맞지 않을까. 영양은 고루 들었을까. 늘 마음 한편이 무거웠어요. 두 배의 양을 만드는 일도 번거로웠지만, 그보다는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3년이 넘도록 이어진, 반찬 고민과 훈련 덕분에 요리 실력이 조금씩 성장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하고 맛있는 레시피를 찾아다니다 애리님의 레시피를 만났고, 덕분에 자신감도 얻었어요.


여전히 간을 맞추는 건 어렵지만, 저는 음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좋아합니다. 누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지요.

지난봄부터 여름까지, 집밥수련챌린지 1기에 참여하며 나만의 수련일지를 채워나갔습니다. 59가지 레시피를 모두 시도했고, 온 가족이 그 맛을 함께 나누었어요.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솔직히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책에 없는 새로운 레시피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직접 우린 멸치 육수 대신 코인 육수의 유혹에 다시 흔들리는 저를 보았거든요.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두 달 남은 올해가 이대로 흘러가버릴 것 같은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팀별 미션까지 더해진 2기가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냅니다.


집밥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만든 사람의 마음이 담긴 '밥'이라고 생각해요. 사 먹는 음식과 가장 다른 점은 정성과 사랑이겠지요.


먹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메뉴를 정하고, 재료를 고르고, 정성껏 만드는 밥. 간은 조금 부족할지라도, 마음만은 언제나 넘치게 담겨 있을 겁니다.


이런 음식을 먹고 어찌 건강해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나만의 집밥의 의미를 생각하며, 오늘도 나눔의 밥을 짓습니다.


'함께 하는 집밥'으로 집밥수련일지 시즌2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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