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가 되자,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영미 선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얘들아, 우리 팀 다 같이 나가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씩 하자!”
그녀는 활기차게 제안했다.
혜리 선배도
“좋아요! 밖에서 좀 쉬자!”며 찬성했고,
네 명은 회사 건물 아래에 있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카운터 앞에서 영미 선배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쏜다! 걱정 말고 시원하게 마셔!”
그녀는 카드로 네 잔의 커피를 결제했다.
커피를 받은 네 사람은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유리와 제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커피 한 잔마저 가볍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그때, 영미 선배가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캐나다에 가서 멋진 자연을 만끽할 사람은 정말 좋겠다! 삼겹살, 소주도 그립겠지만, 자연 경치 하나는 끝내주잖아.” 그녀는 웃으며 혜리와 유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 순간, 제우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요즘은 통역 앱이 워낙 좋아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도 외국 생활에 문제가 없어요. 보세요, 이거…”
제우는 폰을 꺼내 들고 통역 앱을 시범 삼아 열었다.
“인공지능이 말도 대신 해주니까, 외국인과 대화하는 게 진짜 쉬워요!”
제우는 두서없이 얘기하며 앱을 실행해 보여줬다.
영미 선배는 놀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와, 진짜 요즘 세상 너무 좋아졌네! 내가 어릴 때는 상상도 못했던 기술이야.”
혜리 선배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통역기 하나면 여행도 금방 가겠네요.”
그들 사이에서 흐르던 무거운 공기가 조금씩 가벼워졌지만, 유리와 제우 사이엔 여전히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유리는 말없이 가끔 미소를 지으며 커피만 마셨다. 분위기에 맞춰 웃기도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그러던 중, 제우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꺼냈다.
“아 맞다, 캐나다 출장 가는 도시에 한국 식당도 제법 많고, 한인 마트도 있어서 김치 사기도 편할 거예요.”
영미 선배는 깜짝 놀라며 제우를 바라봤다.
“아니, 조용히 앉아서 일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거 검색하고 있었어?” 그녀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제우를 꾸짖는 듯 말했다.
“본인은 안 가는데 동료 걱정까지 했네? 제우 씨, 엄청 친절한데?”
그 말을 들은 제우는 멋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긁적였다.
“아니… 그냥 혹시나 싶어서요.”
유리는 그런 제우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다시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퇴근하는 제우는 지하철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톡 알림이 울렸다.
유리였다.
“제우 씨, 아무래도 내가 캐나다에 가야 할 것 같아. 혜리 선배는 가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아서…”
그 뒤로 슬픈 이모티콘이 함께 보였다.
제우는 톡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상황이 점점 유리가 캐나다로 파견될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유리는 이어서 다시 톡을 보냈다.
“나, 가고 싶지 않아…”
제우는 톡을 읽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유리의 기분이 얼마나 복잡할지, 그가 위로해줄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어쩌면 한동안 유리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그래서 제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답장을 보냈다.
“내일 저녁, 시간 괜찮아?”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제우는 답장이 오지 않자 더 초조해졌다. 그러다 드디어 유리에게서 짧은 답장이 왔다.
“그래, 내일 보자.”
제우는 그 답장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톡을 보냈다.
“내일은 우리 집에서 같이 먹자.”
유리는 잠시 후 웃는 이모티콘 하나로 답장을 보냈다.
다음날 제우는 일찍 퇴근을 했다. 유리가 캐나다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특별한 저녁을 대접해주고 싶었다. 어떤 음식을 준비할까 고민하던 중, 문득 갈비찜이 떠올랐다. 갈비찜은 어머니들이 중요한 날 기운 내라며 해주는 음식이니, 유리에게도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유명한 갈비찜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 온 제우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갈비찜을 예쁜 그릇에 정성스럽게 담았다. 잘 익은 갈비에서 풍기는 진한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며 따뜻한 분위기를 더했다. 이어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올려 밥도 준비했다.
유리가 곧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자, 제우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갈비찜을 먹으며 유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유리씨를 좋아하는 건 맞는데, 이 감정이 얼마나 깊은 건지 모르겠어. 유리도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고…’
제우는 부엌에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다짐했다.
‘오늘 저녁만큼은 모든 것이 유리씨를 위했으면 좋겠어…’
바로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드디어 유리가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