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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컹크 Nov 06. 2024

유럽생활 14년 차 인간관계

멀리 있는 가족과 잘 지내려면?

너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니?

가족들이 여러 번 물어봤다.

가족은 가족이지. 내 대답은 이랬고 지금도 이렇다.


서울에서 마드리드 (9,989 km)

서울에서 말뫼 (7,920 km)


멀리 사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시차가 7~8시간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처음 유럽에 도착했을 때와는 달리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나름 가까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0년 처음 마드리드에 도착했을 때에는 5유로짜리 전화카드를 사서 공중전화에서 부모님께 전화를 하다가 끊기고는 했다.

이후 20유로짜리 폴더폰을 사서 충전해서 쓰고는 했다.


이후 스마트폰이 얼리어댑터뿐만 아니라 대중화되었을 때, 스마트폰을 사서 카카오톡이라는 것을 깔았다.

생각해 보니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한 것이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이었다.

나는 2020년까지 스페인 번호밖에 없었다.


스페인에 사는 10여 년 동안 한국에 딱 2번(2014년, 2019년) 한 달씩 다녀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가족과 굉장한 불화가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부모님이 3번 다녀가셨고, 오빠는 2번, 한 번은 부모님이 정년퇴직하신 후 이탈리아 여행 가셨을 때, 내가 마드리드에서 하루 몰래 찾아갔었다.

사촌언니가 독일에서 박사과정할 때 내가 한번 찾아갔었고, 큰아빠 큰엄마도 마드리드에 부모님과 함께 한번 오셨었다. 막내이모와 막내이모부가 스페인 여행하시다가 마드리드에 오셨을 때, 내가 그쪽으로 가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한국에 살 때처럼 일 년에 두 번 설날, 추석 때마다 친척들을 만나고 가족들과 생일 때마다 또는 주말에 같이 모여서 밥을 먹고 그렇게 살지는 않았지만, 거리를 생각하면 그래도 꽤 소통을 하며 살았다고 생각한다.


마드리드에 살며 한국이 미친 듯이 그립고 한국음식을 못 먹어서 힘들어한 적은 딱히 없다.

한국음식은 은근히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스페인 음식도 맛있어서 그랬는지 딱히 불만은 없었다.

물론 한국 다녀오는 비용이면 유럽에서 여러 곳을 여행할 수 있기 때문에 유럽여행을 더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거나 심각한 일이 생겨서 갑자기 급하게 귀국을 해야 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없기를 바란다.


내가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효녀는 아니다.

"효" 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해서 이기적이라는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형편이 안 되는데 남들 시선 때문에 또는 한국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이라 여겨서 부모님께 좋은 선물 또는 용돈 드리기도 해 본 적이 없다.

나 혼자 살기도 빡빡한데,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20년 말 한국에 들어갔을 때, 한국번호를 개통하고 카카오뱅크도 열고 카카오쇼핑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스페인 번호로 카카오톡을 써서 그랬는지 모르고 살았다.

한국 번호로 카카오톡을 쓰니 카카오뱅크와 연동이 되었고, 카카오쇼핑으로 바로 주문할 수 있었다.

이 루트를 알고부터는 스웨덴에 와서도 때 되면 카카오쇼핑으로 선물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카테고리는 보통 어르신 선물, 명절 선물, 등등


2020년 말 한국에 들어갔을 때는 돈이 없어서 엄마가 10만 원을 던져주셨던 것이 생각난다.

취업준비는 안 하고 남자친구랑 같이 살겠다고 난리를 친다고 많이 싸웠다.

유학 보내놨더니 겨우 졸업하자마자 외국인이랑 같이 살겠다고 또 떠나겠다고 하는 나를 부모님은 이해해 주지도 반겨주시지도 않았다.


한국에서 취업하는 방법을 공부하라고 하셨다.

지금이 아니면 늦어서 취업이 안 될 수도 있다며, 한국 스타일의 취업루트를 배워야 한다고.

당시 스웨덴으로 돌아오기로 약속한 남자친구와 매일 영상통화를 하며 울고불고 보고 싶다고 난리를 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지만 그때는 그 정도로 사랑에 빠졌었다.


그래서 나는 스웨덴에 가서도 노트북 하나로 일거리를 조금이라도 딸 수 있는 번역일만을 미친 듯이 찾았다.

한 번역회사에서 프리랜서 계약서를 쓰자고 하였다.

이후 두 번역회사와 프리랜서 계약이 되어 스웨덴에 와서도 번역일을 조금 할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가족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알 것 같다.

유학 마치느라 고생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취업 잘돼서 뽀대 나게 살아야지!

한국에서 대기업에 취직하면 받는 연봉, 보너스, 복지 등등


작년 크리스마스에 부모님이 스웨덴에 왔다 가셨다. 한 40일 정도

현재 다니는 회사도 구경하시고,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다고 느끼신 것 같다.

물론 내가 더 잘되기를 항상 바라신다.


잘 된다는 것이 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그 스탠더드를 대충 알고는 있다.

그 스탠더드와 멀찌감치 거리를 두며 살았고 그렇게 사는 나는 유럽에 살아서 마음이 편하다.

물론 연봉이 중요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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