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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컹크 Nov 19. 2024

무뎌진 내 마음

People come and go

생각해 보니 나는 정이 많다. 혹은 많았다.

하지만 어렸을 적부터 전학생까지는 아니지만 학교 들어갈 때마다 또는 가는 곳마다 나는 모르는 사람 천지인 상태였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5살 때까지 과천에서 살았고, 6살에 가족이 분당으로 이사를 가서 초등학교는 분당에서 다녔다. 중학교 배정까지 받은 후, 서울로 이사를 갔다.

오빠가 다니던 중학교고 학원 친구들도 몇몇 같은 중학교에 배정받아서 딱히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서울로 이사 간 후, 중학교 입학식에서 나는 전학생과 다름없는 마음이었다.


중학교 3학년때는 또 근처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서 1년 동안 마을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항상 학교 근처에 살던 나는 나름 힘들었다.

항상 늦잠을 자던 나는 전교생 중 나 혼자만 이사 간 동네 고등학교에 지원을 해서 거기로 배정을 받았다.


나는 또 고등학교 입학식에 전학생과 다름없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필터를 일찍 배웠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적응은 하고 살아야 하니.


대학교는 누구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관문이니 뭐 비슷했던 것 같다.


하지만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 또 비슷한 마음이었다.

전학생 필터를 2,3배 더해야 했다.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기 시작한 만 20살.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은 쉽게 믿을 수 없다.


나는 보통 떠나는 입장이었다.

한국에서 떠났고, 스페인에서 떠났다.

또한 나는 남는 입장 있다.

남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하는 마드리드에서 그것을 배웠다.


어렸을 때, 한국에서 이사 다니며 배운 필터가 통하지 않기 시작한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만 18세가 되면 법적으로 성인이니 어쩌고저쩌고 하던 나는 정작 성인들이 부딪혀야 하는 차가운 세상에 좌절했다.


나 자신을 커버할 줄 몰랐고, 그렇게 가고 싶던 스페인에 살며 좌절했다.

정이 많았던 순수했던 나는 점점 인사 잘하고 뻔한 스몰토크를 잘하는 외국인으로 스페인에 살고 있었다.

나는 점점 딱히 남들의 인생에 관심이 없어졌다.


그런 나에게 몇몇 스페인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또는 내가 superficial 하다고 했다.

내가 스페인어는 잘 하지만 완전 스페인 사회에 합되지는 않았다 또는 한국인이지만 한국 감성이 없다 등등

여러 코멘트를 들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난 그런 코멘트에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할 만큼 했다고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친구도 만나지 않고 내 할 일만 똑 부러지게 하며 살아서 잘 사는 케이스는 아니다.

소름 돕게도 한국에서 학창 시절 성적표, 평균 85점

내 인생은 항상 어딜 가나 그 정도였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내가 어디에 살든 어차피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따라 움직일 테고 나랑 인연이 된다면 만났다 헤어질 텐데.


그렇게 꽤 무뎌진 마음으로 살다 보니 오히려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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