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의 증상이 다양하다고 해도 가까운 사람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챕니다. 엄마의 경우에는 기억력 감소보다는 대화할 때 대명사를 많이 쓰다가 비슷한 말로 바꾸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은 냉장고에 넣어 두었니?’라고 물어보고 싶은 것을 처음에 병원에 갔을 무렵에는‘아이스크림은 거기 넣었니?’ 하시다가 나중에 병명이 나올 무렵에는 ‘과자 거기에 넣었니?’ 하셨달까요. 특히 수면 관련 심한 잠꼬대나 잠에서 깨었을 때는 헛것을 보시는 듯했고, 우울해지셨습니다. 제가 엄마께 가족력이 있고 수면장애가 있으니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자고 권유했습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르신들은 특히 치매 관련 검사를 받기 싫어하시므로 진단을 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선은 큰 거부감 없이 검사를 받으시는 것이 중요할 텐데 오히려 증상이 심하지 않았을 때 검사를 시작해서 건강검진 받듯이 정기적으로 꾸준히 받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치매센터에서 지역별로 운영하는 치매안심센터에서 선별검사를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매안심센터는 치매어르신이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고 방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치매 예방을 위한 뇌 운동이나 다른 클래스를 제공하는 곳이 많아서 치매 진단 이전이나 증상이 없을 때에도 방문하여 여러 정보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www.nid.or.kr/support/c_service.aspx )
국가에서 제공하는 치매 조기 진단 검사
치매 조기 검진 대상자
문제는 간이 검사인 선별검사(CIST)의 결과가 항상 확실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선별검사의 결과가 정상으로 나왔다고 해서 병이 없다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엄마께서 처음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으셨을 때 인지검사 결과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언어 능력이 평균치 정도였고 다른 부문들은 모두 평균치 이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모 두 분이 이미 장기간 치매 관련 병력이 있는 가족력과 섬망이 있으신 것도 설명하고, 자세히 운동기능, 후각 테스트, 뇌 MRI 등의 검사를 한 후 경도인지장애로 진단을 받으신 것입니다. 저는 치매센터의 선별검사로는 경도인지장애 판단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인지검사 결과표를 대상자의 교육 정도에 따라 보정을 하긴 하지만 이 검사도 일종의 시험과 비슷한 성격이 있어서 비슷한 인지 능력이 있다면 원래 시험을 잘 보던 사람이 점수가 높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증상이 심하지 않거나 거의 없을 때부터 정기적으로 검사를 한다면 시간의 추이에 따른 변화를 관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엄마도 다른 분들께 제가 모시고 대학병원에 갔었던 때를 말씀하시곤 합니다.
“얘가 제정신인가 했죠, 하도 뭐라 뭐라 하면서 가자고 하니까 한 번 갔어요. 인지검사도 너무 쉬워서 나보고 이런 것까지 풀라고 하는구나 싶어서 기분도 나빴어요. 처음에 검사받고 뇌 영양제를 처방받아서 먹고 이후에는 언니도 같은 선생님께 진료를 받아서 어차피 언니 약 받으러 가야 하니까 겸사겸사 갔죠.”
루이소체 치매로 진단을 받을 무렵에도 예민한 몇 분을 빼고는 주위에 가까운 분들도 엄마의 인지능력이 저하됐다는 것을 잘 모르셨습니다. 몇 년간 크게 변화가 없었지만 그래도 저는 엄마께서 일찍 병원에 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증상을 추적해서 더 안 나빠진 거일수도 있고,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고 검사를 한 데이터가 쌓여서 적절한 시기에 진단과 투약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엄마 마음의 장애물을 오히려 쉽게 넘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상이라고 확신하셨기 때문에 두려움도 덜하셨다고요.
이모의 경우에는 더 어려웠습니다. 엄마께서 병원 입원 중에 이모의 독립생활이 어려워지고 특히 식사하시고 투약하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제가 며칠 만에 집에 들렀더니 식사도 하시지 않고 2주일 치를 받아온 약이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있는데 매일 잘 복용하고 계시다기에 오늘 약이라도 드시라고 했더니 분명히 좀 전에 먹었다고 화를 내셨습니다. 방안에는 이불이 항상 펼쳐져 있고 구겨진 휴지가 여기저기 널려져 있어서 위생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평소에 함께 나가면 집을 찾지 못하셔서, 다행히 외출을 하시진 않지만 혹시라도 밖에 나가면 돌아올 수 없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제가 출국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엄마께서는 퇴원 후 맞벌이를 하는 언니네에서 요양을 하기로 해서 이모가 계실 곳을 급히 알아봤습니다.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해서 요양원 입소는 가능하지 않고 요양병원으로 모셨는데 입소하는 날에는 비번이어서 상담을 못한 요양원 상주 의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김XX 씨가 어디가 불편하시다는 거죠?”
그러니까 의사 입장에서는 이모가 이상이 없으신데 친척들이 요양병원으로 보냈다고 생각한 거였습니다. 현재 이모를 모실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이모부는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더니 제 말을 믿지 못하는 듯 이모부의 증상이 무엇인데 조현병으로 단정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정신과전문의의 진단이라고 말하고, 당시에는 제가 이모부를 자주 본 것은 아니라서 음식에 독이 들었을까 봐 앞에서 먼저 먹어보라고 하거나 완전히 거부하셔서 영양실조로 입원했었고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정신과 전문의를 만났을 때 의심과 심한 망상, 감정이 없고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증상을 더 들었습니다. 의료진이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보호자가 어르신의 상태를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후로는 이모나 엄마의 증상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모는 한국의 워터파크를 필리핀이라고 믿었을 때에도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요양병원을 방문한 담당자가 보기에는 독립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죠. 이모의 말에는 논리구조가 있고 단어 선택도 정확한 편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면담을 하는 사람도 각 개인의 특수상황을 고려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생각합니다. 방문일에 유난히 이모의 상태가 좋았을 수도 있고요. 이후에 이모의 상태를 이해한 요양병원 의사에게 소견서를 부탁하고 다시 등급 신청을 한 후에 4등급을 받아서 드디어 가까운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기건강검진을 할 때 자세한 치매안심 검사를 비용을 추가하여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평소 건강에 관심을 많이 갖고 병원에 가는 것에 부담감이 없으시다면 나이가 드셔서 인지검사도 포함이 되었다고 설명해 드리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 친구는 본인이 이상을 느낀 몇 년간 검진 결과가 정상으로 나왔다가 어느 해 갑자기 단기기억 상실 정도가 매우 심해진 다음에야 감별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답니다.
노화에 따른 기억력, 시력, 청력 저하 등과 치매와는 다르지만, 자식이 부모님께서 멍해지는 경우가 많고 표정이나 몸동작이 굳어지는 듯하고, 예전과는 다르게 무언가 벽 같은 느낌이 든다면 진행이 어느 정도 됐느냐의 문제이지 경도인지장애나 치매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에는 괜찮다는 부모님의 말씀보다 내가 보는 증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