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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Nov 09. 2024

치매 때문에 대학병원에 간다고요? (2)

보호자의 보호자

대학병원 신경과 전문의가 써준 진단서의 권위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어려운 문제가 겨우 해결된 적이 있습니다. 이모가 국공립요양원에 입소하신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모가 조현병이 의심되므로 그날로 당장 모시고 나가서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엄마께서 정신없이 병원을 알아보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마음이 다 쪼그라들었습니다. 주변 정신병원에 전화를 거니 진단도 없이 입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급하게 다니던 대학병원 신경과에 이틀 후 응급진료 예약을 하고, 다음 날 예전에 이모부께서 입원하셨던 개인 정신병원에 입원이 가능한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거리는 멀지만 그래도 믿음이 가고 이모도 보호자로 계속 보아왔으니 우선 엄마와 제가 방문해서 의논하기로 했습니다. 정신과 의사에게 상황을 얘기했습니다. 오랜 기간 입원했던 이모부와 보호자였던 이모와 엄마를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조현병인 것 같다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상태가 호전되면 다시 요양원으로 오라고 합니다. 이 병원에 입원이 가능할까요?”

“김XX 씨는 조현병은 아닌데요. 제가 예전에 봤을 때는 분명 조현병이 아니었고 치매가 있으셨죠.”

“전에 계시던 요양병원에서도 그런 말은 없었는데 새롭게 생긴 게 아닐까요?”

“조현병은 70세 이후에 발병하는 경우는 없어요. 대부분 10대에서 30대에 발병하는데 드물게 이후에 발병하는 경우는 있어도 지금 연세는 아닙니다.”

“치매 관련된 약은 신경과에서 받고 있고, 내일 대리 진료를 하기로 했어요. 혹시 진단서를 써주실 수 있을까요?”

“내원하지 않은 환자에게 진단서를 쓰기는 어렵고 보통 진단서는 병증을 설명하지 조현병이 아니라고 쓰지는 않아요. 다니시던 신경과에서 처방과 진단서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이런 면담을 한 후 엄마와 함께 요양원에 갔습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답답하기만 하고 방법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체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자와 이모가 계신 층의 간호사분이 회의실에 오셨습니다.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자가 주로 이야기를 했는데 굳은 표정이었습니다.


“지금 김XX 씨 상태가 말이 아니에요. 당장 모시고 나가서 정신병원에 입원하신 후 상태가 호전되면 오세요.”

“저 그런데 예전에 이모부가 입원하셨던 정신과전문의가 이모를 기억하셔서 상담했는데 조현병이 아니라고 하시던데요. 70대에 발병하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근처 정신병원 몇 군데 전화를 해봤는데 병명도 확실치 않은 치매 환자를 무조건 받기는 어렵다고 해요. 요양원에서 나가셔도 갈 곳이 없습니다.”

“그건 보호자가 알아서 하셔야죠. 다른 분들은 다 그렇게 하세요. 지금 김XX 씨 한 명한테 도대체 몇 명이 매달려있어야 하는지 아세요?”

“그럼 내일 대학병원 신경과 진료 예약이 되어 있는데 진료 상담 후에 추가 약 처방이나 다른 방법을 의논하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이모 증상을 알려주시면 내일 여쭤보겠습니다.”


공립요양원에서는 상태 기록지를 주었습니다. 신경과는 치매 진행이 많이 되어 어르신이 직접 움직이기 어려운 경우 대리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다음날 신경과 주치의를 만나 요양원과 정신과전문의에게 들은 상황을 설명하고 이모 상태를 기록한 서류를 건네었더니 모두 치매의 증상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계신 곳에 치매 증상이 있으신 분들은 없나 보죠?”

“4등급부터 입소 신청 가능하니 치매로 등급을 받으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오래 대기하는 국공립요양원입니다. 추가 약 처방을 해주실 수 있나요?”

“어떤  증상이던 관리는 가능해요. 그런데 증상이 점점 악화된다는 가정 하에 약은 점점 증량될 거예요. 약을 너무 세게 쓰면 신체 활동성이 줄어들고 일찍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조금씩 양을 늘리면서 몸이 적응하는 기간 후에 상태를 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드시던 약 중의 하나는 양을 조금 늘려보죠. 처방을 바꾸고 갑자기 증상이 호전된다면 과잉 처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단서도  써드리겠습니다.”

주치의는 고민하면서 진단서를 썼습니다.

“이렇게 진단서를 써드렸는데도 정신병원 얘기가 계속 나오면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저는 항상 모든 의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몸 상태나 엄마, 이모의 몸 상태에 대해서 나 말고도 누군가 이렇게 함께 고민해 준다는 것만 가지고도 돌봄의 어려움이 반으로 줄어드는 느낌이었습니다. 또 보호자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기  때문에 공감받고 지지받는다는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바로 진단서와 추가 처방 약을 들고 요양원을 방문하여 약의 증량에 관하여 들은 말을 전하니 전날 강압적이던 태도가 확 누그러졌습니다. 나가면서 한마디 하는데 그때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보호자들은 나가서 약 조절을 해서 들어오세요. 어쨌든 알겠습니다. 추가 약 드리면서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요양원에서도 조현병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고 문제 행동을 해결해야 하는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공립요양원에서 치매의 증상을 이유로 퇴소를 강요할 수 없으니 정신병이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상황을 알았더라면 다르게 해결해볼 수 있었을  텐데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어서 더 힘들었습니다. 어쨌거나 가실 곳 없는 이모를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이었는데 주치의의 진단서가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나중에 친분이 있는 사회복지사와 대화하면서 요양원의 입장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은 이후에 사설요양원과 비교하는 포스트를 쓰면서 설명하겠습니다.


이모와 엄마의 주치의가 같았는데 이모가 소천하신 후에 엄마 진료 때문에 주치의를 만나서 제가 감사드렸습니다.

"선생님, 김XX 씨가 지난 달 소천하셨습니다. 그동안 신경 써주시고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이 마지막에 감사 인사를 전하기가 어려울 텐데 제가 대신 말씀드려요. 보호자의 보호자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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