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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Nov 05. 2024

치매때문에 대학병원에 간다고요? (1)

잘 듣는 약이 좋은 약이 아닐 수 있습니다.

대형병원은 집 앞 의원보다는 거리도 멀고, 대기시간도 매우 긴 편입니다. 우리나라 의사들의 진료환자 수가 많아서 진료 시간이 짧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특히 진료실 밖에서의 증상에 관한 자세한 이해가 필요한 치매는 평균적으로 진료시간이 다른 과보다 길어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약시간을 훌쩍 넘겨 한 시간 가깝게 상담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의사의 문제가 아니고 구조적인 문제이며 오히려 상담을 충실히 해주는 의사가 고맙습니다.


하지만 계속 살펴야하는 치매어르신과 함께 오래 이동하고 대기해야한다는 것은 분명히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대형 병원에 따라서는 진료를 받고자하는 환자가 많아서 초진이나 검사를 위해 수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처방약이 바뀌는 경우 환자가 약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피며 투약량을 조절해야하는데 처방이 바뀌는 경우도 3개월 내로 진료 예약이 불가한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치매 증상이 있으신 어르신이 초진 예약에 3~6개월이 걸리고 초진 후 진단/감별 검사를 위해 다시 6개월 이상 대기해야 한다면 진단에만 1년 넘게 걸리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의료대란으로 MRI 판독에만 한달 넘게 걸리는 병원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기간을 단축시키려면 대학병원에서 운영하는 건강검진센터에서 치매와 뇌 MRI를 찍고 진료과와 연결될 수 있겠지만, 전문의가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검사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도 있고,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용도 매우 비싸집니다.


그럼에도 저는 엄마께서 대학병원에서 계속 진료를 받고 계시는 것이 만족스럽습니다. 어떤 병원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의사를 만나는 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경험한 바로는 평균적으로 대학병원이 몇 가지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장기적으로 의료기록이 쌓인다는 점과 다른 과와 협진이 용이하다는 점입니다. 만약에 다른 기저질환이 있다면 한 병원에 다니면서 차트가 공유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엄마께서 경도인지장애로 진단받기 10여 년 전쯤 같은 병원에서 두통이 심해 뇌 CT를 찍었던 기록이 있었습니다. 신경과에서 다시 인지장애 검사를 하고 뇌 MRI를 찍었을 때 똑같은 검사는 아니지만 예전하고 달라진 부분들이 보여서 주치의가 진단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보호자가 긴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단점이 있지만 어르신 혼자 큰 병원에 다니시는 게 부담이 없다면 대학병원을 꾸준히 다니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 당뇨로 인한 잦은 요로감염이 신우신염으로 이어지고 패혈증까지 가는 상황이 반복되었을 때 처음에는 응급실에서 기저질환과 복용약을 물어보는데도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 혼자 동네 병원에서 처방을 받으셨기 때문에 저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입원 시 협진을 통해 비뇨기과, 내분비내과, 신경과 등에서 초진 및 협진을 받고 이후 정기적으로 처방을 받으니 모든 과의 의사들이 환자의 상태를 한 눈에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같은 신경과 내에서도 엄마의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료시 상담을 하였을 때 수면 관련 전문의에게 협진 요청을 하여 비교적 빠른 시간에 수면다원검사를 통한 양압기 처방이 가능하였습니다. 대학 병원 시스템 안에 있으면 무엇보다 응급상황 시 대처가 수월하고 약 처방을 모두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중대 기저질환이 없다면 대학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곳에 좋은 의사가 있다면 환자를 더 자주 더 자세히 살펴볼 수도 있겠죠. 


또 다른 장점은 신약의 사용입니다. 2024년 현재 알쯔하이머병 신약인 레컴비의 사용이 허가되었고 2025년부터 처방이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구체적인 조건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투약조건이나 부작용 관리 등의 이유로 아마 초기에는 3차 병원 위주로 투약이 이루어질 것이라 여겨집니다.(https://www.dailymedi.com/news/news_view.php?wr_id=911050) 엄마의 경우에는 이미 척수검사를 통한 진단을 마친 상태이고 내년까지 간이인지평가(MMSE) 점수가 유지된다면 신약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치의가 설명해주셔서 기대도 하고 있습니다. 


약의 처방도 조심스럽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증상이 급격히 호전된다면 과잉 처방일 경우가 많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지인의 아버지께서 손이 떨리는 증상을 자식에게 숨기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인지검사 등을 권하면 다른 병원으로 가고 약을 약하게 쓰면 또 다른 병원으로 가서 증상을 멈추는 좋은 약을 처방해달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 몸에 영향이 큰 다양한 약을 고용량으로 드시고 계셨습니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증상 완화를 위해서는 약을 많이 드시는 게 분명 도움이 되겠지만 제가 앞서 저의 목표로 세웠던 엄마와 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 것에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저는 환자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천천히 약을 쓰는 의사를 더 선호합니다. 물론 동네 병원에도 이와 같이 진료하는 의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저의 경우는 연구자의 관점에서 세심하게 진료하는 좋은 주치의를 큰 병원에서 만났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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