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유성 한 조각
"그래도 커서 맞은 건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더라."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맞다.
나의 언니와 나는 연년생이었다. 내가 빠른 생일이었기에.
당시 언니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녀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녀는 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반장과 부반장, 걸스카웃 단장, 학생회장을 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교에 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반대로 나는 학업에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언니보다 머리가 좋다며 당연히 서울대에 갈 것이라 기대했지만,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안 하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앞서 밝혔던 것처럼 일평생을 나를 한 없이 못나고 부족한 자식으로 낙인찍었다.
하지만 저 대사로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따로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의 여름, 그 어느 날, 그날이 내가 아버지에게 맞았던 또 다른 날이기 때문이다.
그날엔 외갓집 사촌 동생 중 소희라는 아이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
소희는 나보다 4살이 어렸고, 나의 가족들이 나에게 저지른 행위들 중 같이 얽힌 문제도 많았다.
소희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풀어보고자 한다. 너무 긴 사연이기에.
여하튼 나는 몰랐지만, 어머니의 설명에 따르면, 그 당시 아버지는 상당히 불안한 상태였다고 한다.
갑작스레 급락한 언니의 모의고사 성적 때문에.
말했다시피 나의 언니는 명문대에 가기 위해 다른 우등생들 못지않게 열심히 공부했고, 학급의 반장, 부반장, 걸스카웃 단장 등 다양한 장을 맡으며 리더십 전형을 준비하기도 했다. 교내에서도 문과 학생들 중 전교 1, 2등을 다툴 정도였으니, 그 노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럼프는 피해 가기 어려웠던지, 그녀의 성적은 갑자기 떨어져서 전교 5등 밖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그리고 딸의 서울대 입학을 고대하며, 타지에서 주말 가족을 유지한 채 열심히 돈을 벌고 있던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그 소식이 그 무엇보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문제였다고 한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우리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었다. 소희도 함께 말이다.
소희는 큰 이모의 딸로, 소희 또한 큰 이모부 내외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소희를 안타까이 여긴 나의 부모는 소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종종 우리 집으로 데려와 그녀를 챙기고는 했다.
생각해 보면 언제나 그랬다.
나의 어렸을 적 사진들을 보면, 사촌들, 동네 친구들 등 다양한 아이들이 함께 찍힌 사진들이 많았는데. 그 사진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했던 말은 '~는 부모님이 신경 써주지 않아서', '부모가 워낙 애를 미워해서'였다.
그러니까 나의 부모는 다른 집에서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 집으로 데려와 밥을 먹이거나, 함께 여행을 데려가는 등 살뜰하게 챙겼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전혀 객관화가 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렇게 모순으로 똘똘 뭉친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나의 부모는.
어쨌든 일상처럼, 나의 가족은 사촌동생인 소희와 함께 삼겹살을 구워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와 다르지 않은 듯 대화를 나누다가, 나도 모르게 민감한 내용이 주제가 되어버렸다.
"언니 공부는 방에 들어가서 하면 되잖아."
다소 불만이 섞인 목소리. 이건 내가 했던 말이다.
"야! 난 거실이 공부가 잘 된다고. 다른 집들은 집에 수능생이 있으면 서로 대화도 잘 안 한다던데. 넌 그런 것도 몰라?"
이건 언니의 답변. 계속 똑같은 주장이었다.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면, 상황은 이랬다.
언니는 고등학교 3학년이 올라가기 전부터 자신이 고3이 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가족들에게 주지 시켰다.
그러더니, 자기는 거실에서 공부를 하는 게 잘 된다며,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한 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방 문도 제대로 닫지 못하게 했다. 자신은 넓게 트인 상태로 공부를 해야 잘 된다며.
그래서 나도 방 문을 제대로 닫지도 못했고, 어머니 또한 안방에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소리를 거의 안 들리게 하고 봐야 했다. 거실 TV는 이미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다. 반년 이상 말이다.
무엇보다 언니가 자신이 공부해야 할 책을 들고, 거실뿐만 아니라 자기 방, 안방, 나의 방까지 돌아다니며 공부했기 때문에 가족들에게는 그 어떠한 개인적인 공간도 허락되지 못했다.
언니의 고3 타이틀을 단 독재 하에 말이다.
이 얘기를 들었던 나의 상담 선생님들은 모두 한결 같이 똑같은 말을 했다.
"언니가 마음의 병이 깊었네... 지금은 일상생활은 되나?"
그들의 분석은 정확했고, 나의 언니와 관련된 이야기는 좀 더 후에 다루도록 할 예정이다.
어쨌든 언니의 고압적인 태도는 여름에 특히 더 심각해졌는데. 다름 아닌 에어컨 문제였다.
가족들 중에서도 언니는 유독 더위에 강했다. 반대로 나와 어머니는 더위와 추위 모두에 약했다.
그러니까 나랑 어머니는 에어컨이 없으면 힘든 사람들이지만, 언니는 에어컨이 공기를 탁하게 만든다며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한 마디로, 거실 정 중앙에 자신이 공부하려는 책들을 잔뜩 갖다 놓고 어지르는 것은 물론.
자신이 에어컨을 싫어하고 자연 바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여름 내내 모든 방의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창문도 젖혀 놓은 채 에어컨을 틀지 못하게 한 것이다. 가족 모두에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고3이 아니었고, 이제 막 고3이 되기까지 반년을 남겨둔 고2였다.
그래서 편하게 놀고 싶었다. 집에서 말이다. 하루쯤은, 이라는 마음으로.
물론 여기에는 소희의 영향도 있었다.
언니의 고3 선언 이후로 종종 놀러 오던 친척들도 우리 집에 오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놀러 온 소희는 우리 집에서 나와 같이 에어컨을 틀고 영화를 보며 놀기를 원했다. 밖은 더우니까, 나가기 싫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다. 자매 간의 투닥거림이.
"그니까. 그동안 언니가 원하는 대로 에어컨도 안 틀고 계속 그랬잖아. 오늘 하루 좀 논다는데 그것도 안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시험 망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언니야 말로 웃기지 마. 무슨 하루 방에서 공부한다고 시험을 망쳐! 아니면 독서실 가던지."
"야,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알아? 너처럼 맨날 노는 줄 아냐고!"
"그건 또 뭔 소리야! 내가 언제 맨날 놀았어!"
"그럼 네가 노는 게 아니면 뭔데? 너 학교에서도 맨날 너네 친구들하고 잔디밭에서 뛰어다니고, 매점 가잖아! 내가 그거 모르는 줄 알아?"
"언니가 내가 내 친구들이랑 놀건 말건 무슨 상관인데!"
"정신 차리라고! 너 공부 안 해? 너 대학 안 갈 거야?"
처음에는 집에서 잠깐 영화만 보겠다고 했던 대화의 시작은 점차 언니의 인신공격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다 보니, 종종 나의 반에 나를 보러 왔던 언니는 학교에서의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들 중 학교에서 소문이 안 좋게 돌기 시작한 친구가 발견되면, 내 반까지 쫓아와서는 그 친구랑 놀지 말라며,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하려 들던 언니였기에. 그녀의 그러한 인권침해적 발언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나의 부모 중 그 누구도 그녀의 그런 잘못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자매 간의 대화가 점점 과열되는 양상으로 흐르자, 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가 결국 중재에 나섰다.
어머니는 이미 나와 언니의 그런 갈등이 익숙한 듯 전혀 끼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마치 어느 유명한 영화의 대사를 흉내 내듯, 아버지는 본래 장난스러운 말투도 곧잘 사용하는 분이었기에. 그렇게 그 상황을 장난으로 무마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계속해서 쫓아다니며, 함부로 말을 뱉는 언니로 인해, 너무 오랫동안 마음이 곪아 버린 나는 그 억울한 심정을 쉽게 가라앉힐 수 없었다.
"뭘 그만해! 언니가 지금 말하는 거 봐바!"
"내가 뭘!"
"여기가 무슨 언니 혼자만의 집이야? 언니가 집주인이야? 왜 언니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내가 왜 내 집에서 에어컨도 못 틀고 영화 한 편도 편하게 못 보는데!"
"알았다, 고마해라! 주아도 그만하고! 수아도 그만하고!"
"아빠는 왜 맨날 그만하라고만 해!"
"야! 여기가 그럼 네 집이냐? 아빠랑 엄마 집이야!"
"그래, 아빠랑 엄마 집이야. 그러니까 둘 다 그만하고 밥 먹자."
마지막 말은 결국 엄마가 거들었다.
"언니, 그냥 우리가 나가서 놀자. 나 괜찮아."
소희도 나를 말리며 한 마디 했다. 억울한 건 나뿐인 것 같았다.
매번 그랬다. 소희는 나와 같은 주장을 펼치는 것 같다가도, 내게 총대를 메게 하고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꼭 나를 배신하는 사촌동생이었다. 나중에는 본인이 뒤에서 가장 많이 뒷담을 해댈 거면서. 그렇게 곧잘 나는 그녀에게 이용당하는 모양새가 되고는 했다.
사실 소희의 이런 비겁한 행동이 특정 심리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소희와 관련된 일화를 듣던 심리상담가들을 통해서. 그리고 그건 도저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분야의 문제라는 사실까지도. 그러니, 소희와도 긴 사연이 많았고, 그에 대한 에피소드도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그래, 너랑 소희가 나가서 놀아. 언니는 고3이고, 공부해야 하니까. 엄마가 집주인이니까 말하는데. 너네가 나가는 게 맞아."
쐐기를 박는 어머니의 말.
그 말에 득의양양해진 언니가 날 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언제나 그랬다. 언니와 내 다툼에서 단 한 번도 부모로부터 온전히 내 편이라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언니가 먼저 시비를 걸어도, 언니가 내게 막말을 해도, 혹은 언니가 일방적으로 날 때려도 말이다.
중학교 때. 내가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도, 현관문을 열자마자 내가 어찌할 새도 없이 나의 뺨을 후려친 어머니였으니. 그리고 그녀가 이때의 일화에 대해 결론짓길.
'그때 네가 늦게까지 안 와서 아빠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아빠는 몸살 때문에 막 열이 올라서 시달리는 와중에도 앓는 소리로 계속 수아 들어왔냐고 너만 찾는 거야. 근데 네가 공부하러 갔다는 친구 집에선 전화도 안 받고, 너는 안 오지. 그니까 엄마가 홧김에 널 때릴 수밖에.'
'….'
'그래도 네가 곧바로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숙이고 들어와서 다행이었지. 안 그러면 뺨을 계속 더 내리칠 뻔했으니까. 내가 뺨을 때린 사람은 너하고 너네 둘째 삼촌이 유일했나 그랬을 걸. 너네 둘째 삼촌도 가족들 다 모여 있는데 술 마시고 와선 깽판 쳤으니까.'
'….'
'맞을 짓 했지… 다들.'
그 시절 나는 휴대폰이 없었고, 인터넷은 전화선 하고 함께 사용하던 시대였다.
그러니까 덧붙이자면, 내가 내 친구 집에서 강제로 학교 교사인 친구 어머니로부터 과외를 받던 동안, 친구의 동생들이 돌아가며 인터넷을 하는 바람에. 우리 집에서 친구 집으로 아무리 전화를 해도 계속 통화 중이라는 소리만 들렸던 것이다.
그게 내가 맞은 이유였고, 어머니는 이때 내가 자신의 폭력에 즉시 굴복한 걸 칭찬으로 여겼다.
술 마시고 난동을 부린 삼촌을 제압하기 위해 뺨을 여러 차례 때려서 정신 차리게 했던 일화와 비교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때 그 친구의 집까지 나를 직접 데리러 와서, 집에 오는 내내 막말을 퍼부었던 언니는 이렇게 말했었다.
'야! 그니까 내가 너한테 말하는데 네가 막 혼자 집에 가면 어떡해? 그러니까 엄마한테 맞았지. 으이구. 맞아도 싸다 너는. 내가 너 혼날까 봐 먼저 들어가려고 했는데. 쯧쯧쯧.'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언니에게로까지 연결되는 폭력의 굴레.
나는 그들에게 단 한 번도 손을 올린 적이 없었으나, 그들이 내게 손을 올리는 이유는 항상 그 타당성이 의심되는 이유들이었다.
그러니 나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했던 것이다.
내 편이 아무도 없는 그 장소에서.
결국 나는 그 자리에 더 있기가 싫었고, 그래서 박차고 일어났다.
"아아, 그래 알았어! 내가 나가면 되잖아! 밥 다 먹었으니까 나갈게! 됐지!"
그러고는 내 방에 들어가 가방을 챙겼다.
집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어딘가 더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물건을 담고 있을 때였다.
"정수아!!"
'퍽!'
순식간이었다.
어느새 날 따라온 아버지가 내 이름을 거칠게 외치더니, 내가 아버지를 완전히 돌아보기도 전에 내 머리통을 내리쳤다.
"나가?! 네가 집을 나가!?"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머리에 갑자기 큰 충격을 느꼈기에 순간적으로 귀가 멍해지고 시야가 흐려지는 것 같았기에.
하지만 아버지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고, 어느새 달려온 어머니와 언니가 아버지를 붙들어 말리느라 바빠 보였다.
그저 아버지한테 크게 한 대 맞았을 뿐이지만, 내 세상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리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래서 더 아프지 않았던 것도 같다.
온몸에 아무 힘도 들어가지 않은 채 그저 세차게 때리는 소낙비를 맞듯, 그렇게 아버지의 폭력에 내 온몸을 맡겼기에. 포기는 언제나 가장 쉬운 선택이었고, 덕분에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이 그랬다.
이미 아버지의 폭력 앞에 나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나가!! 아예 나가버려!! 나가서 돌아오지 마!!"
"아빠, 안돼! 그만해!"
"여보! 수아야, 뭐 해! 빨리 나가! 소희랑 나가!"
이미 너무 세게 맞아 뚝 떨어진 고개와 어느새 아버지의 발에 의해서도 무자비하게 짓밟혔던 몸은 도저히 쉽게 들어 올려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선명했던 장면은 온몸으로 아버지를 위에서 짓누르며 말리던 언니와 어머니의 모습이었는데.
어느새 언니는 아버지 보다 키와 덩치도 커져 있었기 때문에 왜소한 체격의 아버지는 그러한 언니에게 눌려 어느 정도 제압이 되었다. 하지만 본인의 분노가 조절이 안 돼서 그런지. 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의 몸이 바닥에 완전히 엎어진 와중에도 어떻게든 나를 때리기 위해 몸을 한껏 바둥댔다.
그리고는 마치 기어 오듯이, 날 한 대라도 더 치기 위한 팔을 허공에 휘둘러 대며, 내 쪽으로 연신 팔을 뻗어대고 있었다. 더없이 힘차게 말이다.
자신의 딸에게 어떻게든 무자비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자의 작태란.
실로 오묘하고 가히 기이한 광경이었다고, 나는 기억한다.
그래서 더 편하게 가방을 챙길 수 있었다.
그 순간은 나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너무나도 차분한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네,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아버지를 필사적으로 말리는 언니와 어머니를 뒤로 한 채 빠르게 거실로 나와 보니, 우리가 같이 먹던 밥상 앞에서 덜덜 떨고 있는 소희가 보였다. 그날 소희는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말했다.
'이모부가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인 줄 몰랐어.'
그 말에 나는 그저 쓰게 웃어 보였다.
여하튼 나는 그 자리에서 빠르게 소희를 챙겼고, 최대한 신속하게 집을 나섰다.
"너! 집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마! 문 잠글 테니까! 알아들어!!"
"여보!"
"저거 못 들어오게 해! 절대 열어주지 마!"
등 뒤로 내리치는 천둥 같은 아버지의 고함을 들으며, 집의 현관문을 닫았다.
그 후 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겉보기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보였지만, 이미 내 정신은 나의 몸을 떠난 지 오래였기에.
결국 늦은 밤이 되어서야, 언니로부터 '아빠가 들어오래.'라는 문자를 받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집에 돌아갔을 땐 안방은 굳게 닫혀 있었고, 누가 봐도 그 안에 아버지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언니는 나를 보며 혀를 찼고, 내 방에 홀로 들어온 어머니는 침착하게 방 문을 닫은 채 나를 여느 때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나무랐다.
"네가 잘못했어."
"…."
"주아가 싫어해서 말은 안 했는데. 지금 네 언니 모의고사 성적이 안 좋아. 그래서 아빠가 예민한 상태야."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니까. 아빠는 네가 집을 나간다고, 가출한다고 말하는 줄 알았대. 그래서 더 화가 난 거야. 가뜩이나 예민한데."
"엄마랑이 나보고 나가랬잖아. 나가서 놀라고. 그래서 나간다 한 거잖아."
"어쨌든. 평소엔 안 그러더니 왜 오늘따라 고집을 피워. 소희도 있는데. 아빠가 소희 앞에서 얼마나 창피했겠어."
"…."
"어쨌든 네가 잘못했으니까. 내일 아빠한테 잘못했다 하고 풀어. 알았지?"
마치 나를 위해 선심 쓰듯 알려주는 방법인 듯 조근조근.
타이르듯 말하지만, 결국 그 결론은 또다시, ‘어쨌든’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네 잘못이다.'라고 끝을 맺는.
아무리 내게 불공평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심지어 내가 맞았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의 영혼은 그렇게 쉬지 않고, 계속해서 갉아 먹히고만 있었다.